[BOOK世通, 제주 읽기] (287) 홍채영, 수학과 그림 사이, 궁리출판, 2018.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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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사칙연산, 기하학, 확률·통계, 미적분, 함수. 수학의 주요 영역이다. 우리 일상에서 수학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다. 숫자를 통하여 시간과 날짜를 접하고,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또한 계산기가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다. 기하학 등의 분야 또한 그 결과를 알면 그만이지 과정을 알 일은 아니다. 이렇듯 우리 일상에 붙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수학. 이 수학을 붙잡고 인생 일대의 고민에 빠졌던 10대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수포자, 즉 ‘수학을 포기한 자’로서 국어와 영어에 집중하며 대학입시 관문을 통과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수학이 안겨주는 고통은 악몽의 단골 메뉴였다. 

20대 이후 수학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남의 나라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시련은 다시 찾아왔다. 필자의 전공인 예술학의 한 분류인 예술심리학에서 또 다시 수학을 만난 것이다. 황금비율을 비롯해 회화와 조각, 사진 등에서 나타나는 피보나치 수열 등 조형미의 근원을 찾는 일은 기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홍역을 치른 후 수학은 영영 내 곁을 떠난 것 같았으나, 40대 초반 들어 대전에서 만난 박사님들을 통하여 수학은 다시 내게 돌아왔다. 대전의 그 많은 박사님들은 죄다 이학, 공학 전공자들이었다. 

과학자들은 수학을 기초 언어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때부터는 문제를 풀거나 답을 구할 필요 없이 사물이나 사건의 이치를 이해하는 과정의 문제로 수학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전에서 만난 수학은 우주와 생명의 이치에 도달하는 깨달음의 과정으로서 과학적 사유의 일환이었다. 10여년 전 요즘 출판과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하여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잘 알려진 박문호 박사의 강의를 종종 들었다. 그의 강의는 칠판에 판서를 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인데, 이때 종종 수학이 등장하곤 했다. 

그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수학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것이어도 그것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수학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과 과정으로서 수학의 세계를 펼쳐주는 박문호 박사의 서사는 수학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곤 했던 나의 마음 문을 열게 했다. 이를 기본으로 물리와 화학, 생물학과 천문학의 세계를 통하여 우주와 생명에 대한 총체적 이해의 국면으로 인도해 주었다. 

과학도시 대전에서의 경험은 한 인간으로서의 지적 체험과 이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인간의 일상과 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수학은 문명의 기초이자 첨단에 위치하고 있다. 예술이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에서 동시대 첨단의 언어이듯이 수학 또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성립하는 순간부터 하나의 전일적인 인지 체계로 자리잡았다. 수학은 동서를 막론하고 배움의 기초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선비의 공부 과목을 규정한 동아시아의 여섯 가지 교육 과목, 즉 육예(六藝)와 자유민의 기술을 7과 학문으로 규정한 유럽의 리버럴아츠(liberal arts)가 그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육예(六藝)라고 하여,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등을 기본과목으로 삼았다. ‘예는 예용(禮法), 악은 음악(音樂), 사는 궁술(弓術), 어(御)는 마술(馬術), 서는 서도(書道), 수는 수학(數學)이다. 유럽의 리버럴아츠(liberal arts)에는 인문과학 분야의 ‘문법(grammar), 수사학(rhetoric), 논리학(logic)’ 등 3학과(trivium)와 자연과학 분야의 ‘천문(astronomy), 음악학(music), 산술(arithmetic), 기하학(geometry)’ 등 4학과(quadrivium)가 들어있다. 참고로 육예와 리버럴아트의 상대개념은 공예(工藝)와 메카니컬아츠(mechanical arts)로서 육체노동과 물질생산과 관계된 영역이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학은 지식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던 셈이다. 동아시아나 유럽의 고대와 중세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지식의 세계에 수학은 확고부동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과 수학의 관계 또한 문명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원초적인 차원에서 맞닿아있다. 대학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한 저자 홍채영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예술과 수학을 가르치면서 양자간의 통섭과 융합의 관점을 키웠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문명사적인 유물과 현대미술에서 산수와 기하학, 고차방정식과 미적분을 찾아내는 일은 미술만을 전공한 사람은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수학에는 이야기가 없을까? 그림책을 보듯이 수학 이야기를 펼쳐 보일 수는 없을까? 수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수학을 역사와 예술의 관점에서 다시 풀어보자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숫자의 역사에서 미분과 적분, 함수에 이르는 주제들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로 펼치게 해주었다. 수학을 찾아 수학을 탐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술을 통하여 수학을 접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성장기에 12년동안 수학을 배우면서도 도통 문제 의식을 갖지 못해 어렵게만 느껴졌던 수학을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게 해주는 일이다. 

저자 홍채영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적 대목들을 들춰 수학과 예술의 밀접한 관계를 예시한다. 고대 그리스의 도기화에서 수의 역사를 살피고, ‘밀로의 비너스’에서 방정식의 역사를 캐낸다. 마사초의 ‘성삼위일체’에서 기하학, 카라바조의 ‘카드놀이 사기꾼’에서 확률·통계를, 모네의 ‘인상, 해돋이’에서 미적분을 그리고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함수 이야기를 들춰내는 저자의 눈길과 손길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회화에서 15세기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던 원근법을 수학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을까요? 놀랍게도 한참이나 뒤늦은 17세기 즈음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수학적 발견이 미술에 영향을 미쳤지만 원근법은 회화에서 시작해서 수학에 영향을 미친 이론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수학과 예술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발전했다. 근대 이후 서세동점의 국제질서를 만들어내면 제국주의 시대를 가능하게 한 동아시아와 유럽의 힘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중의 하나는 기술의 격차일 것이다. 기술의 격차는 과학의 격차이다. 전근대시기까지 동아시아는 세계 최고의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엄청난 기술력과 생산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어 유럽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했다. 산업혁명과 정치혁명을 비롯한 유럽의 혁신은 르네상스라는 문명혁명으로부터 나왔다. 

르네상스의 최대 덕목은 융합이다. 과학과 기술의 융합 근저에는 수학과 예술의 융합이 있었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근대 이후 유럽의 수학과 예술의 융합은 과학과 기술로 확대재생산되었다. ‘리버럴아트와 테크놀러지의 교차점’을 이야기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생각은 이미 근대 초기 유럽에서 수학과 예술의 융합으로부터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 이 책 ‘수학과 그림 사이’가 들려주는 새삼스럽지만 놀라운 사실이다.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현(現) 광주시립미술관장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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