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다른 내일’] (5) 자기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애착’

변화와 혁신을 넘어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없다. 다른 내일을 위해서는 다른 생각, 다른 전략, 다른 시스템, 다른 실행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혁신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현 대표와 함께 제주의 ‘다른 내일’을 독자와 함께 모색해 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격주로 만나볼 수 있다. / 편집자 주

지난 칼럼들에서 자율적 주체들의 상호 작용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복잡적응계 개념을 소개하였다. 복잡적응계를 활성화해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창조적 주체가 필요하다. 창조적 주체를 육성하는 것이 혁신의 출발점이다. 매슬로우는 욕구단계설을 통해 창조적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전반적인 과정을 설명하였다. 매슬로우는 심리적으로 건강한 양육 환경이 혁신적인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건강한 양육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간의 뇌 크기가 가지는 딜레마

유인원에서 인류로의 진화 과정은 뇌의 용량이 점점 커지는 과정이었다. 뇌의 용량이 커질 수록 인간의 인지 능력은 향상되었고,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같은 진화의 방향은 한계가 있었다. 출산을 하는 여성의 골반 크기는 제한돼 있다. 인간의 뇌 용량이 더 커진다면, 출산 과정에서 산모와 아이가 모두 목숨을 잃을 확률이 커진다. 뇌 용량이 더 커지는 것은 오히려 인류 생존에 부정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인간의 뇌는 돌봄과 협력이 필요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세 가지 방향으로 진화했다. 

첫 번째는 신체 구조에서 머리는 크게, 팔다리는 상대적으로 작고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다. 신생아의 머리 크기는 신체의 1/4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 번째는 태어난 뒤, 오랜기간 두뇌를 성장시키는 방향이다. 신생아의 두뇌 크기는 성인 두뇌 크기의 25% 수준인 350cc 정도에 불과하다. 만 3살까지 성인 뇌의 90%까지 성장하고, 만 15세 전후에야 뇌의 발달이 완성된다. 

세 번째는 공동체의 협력적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언어 능력, 믿음, 인간 친화 지능, 자기 성찰 지능 등을 통해 인류는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모든 동물들 중에서 성체 대비 가장 미숙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태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나면 독자적인 생존 활동이 가능하다. 인간은 걷는 데에만 1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1세부터 3세까지 기본적인 운동 능력과 두뇌 발달이 진행된다. 3세 이후에는 사회적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아정체성을 만든다. 인간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동물이다. 돌봄은 인류 번영의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된 것이다. 또한 인간은 돌봄을 통해, 사회화에 필요한 태도와 역량을 형성하게 된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은 이러한 발달 과정을 욕구 단계로 표현한 것이다. 

애착, 물질적 필요보다 강력한 본능적 욕구

해리 할로우 (harry harlow)라는 심리학자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가장 유명한 실험이 원숭이 애착 실험이다. 철사로 만든 우유병을 가지고 있는 원숭이 모형과 따뜻한 담요로 만든 우유병이 없는 원숭이 모형이 있다. 모형 사이에 새끼 원숭이를 넣어 그 행태를 관찰했다. 그는 새끼 원숭이가 생존을 위해 우유를 가진 원숭이 모형 가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새끼 원숭이는 담요로 만든 원숭이 모형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오랜 기간 양육이 필요한 영장류에게 태어난 후 우선 필요한 것은 물질적 필요보다는 부모와의 정서적 친밀감이었던 것이다. ‘애착(attachment)’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실험이었다. 

인간은 3세까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기본적 욕구인 생존, 안전, 공동체, 인정 욕구을 충족하게 된다. 이 시기에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인 친밀감을 ‘애착’이라고 표현한다. ‘애착’은 신체적 정서적 발달과정과 사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애착 형성이 자기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영국의 아동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애착’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다. 4세 전에 부모와 떨어져 생활했던 아이들을 추적 관찰하였다. 홀로 자란 아이들은 거칠고, 자기 주도성이 떨어지고, 과도한 공격성을 보일 때가 많았다. '존 볼비'는 애착이 인간의 발달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분석했다. 

아이는 부모와의 반복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성격과 태도를 형성한다. 애착을 통해, 자신은 사랑받는 존재라는 자기 인식이 생긴다. 부모와 사랑과 돌봄은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연결된다. 애착 관계가 불안정할 경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게 된다. 어릴 적 형성된 태도들은 무의식 속에 각인된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 동료, 연인, 자녀 등 모든 사회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신체적 접촉과 따뜻한 사회적 관계는 옥시토신이라고 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옥시토신은 불안을 감소시키고, 공감 능력과 사회적 지능을 발달시킨다. 이를 통해 타인과 신뢰에 기반한 행동을 한다. 애착이 잘 형성되면, 옥시토신 분비가 촉진되고, 자신과 사람에 대한 신뢰가 더욱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애착은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지능을 발달시키는 원동력이다.

낯선 상황 실험

메리 에인즈워즈의 낯선 상황 실험 (출처 : Bing imange creator) 
메리 에인즈워즈의 낯선 상황 실험 (출처 : Bing imange creator) 

존 볼비의 동료인 메리 에인즈워스 (Mary Ainsworth)는 낯선 상황 실험을 통해, 아이들의 애착상태를 유형화했다. 낯선 방에 엄마와 아이가 들어간 뒤 낯선 사람이 방으로 들어간다. 이후 엄마 혼자 방을 나와 아이와 분리된다. 낯선 사람과 아이만 남겨진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가 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반응을 관찰한다. 

이런 관찰을 통해서, 아이의 반응에 따라 안정형 애착과 불안형, 회피형, 혼란형 4가지 애착유형으로 분류하였다. 만들어 내는 기준은 자기와 타인에 대한 신뢰도이다. 성인들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애착 유형을 알아낼 수 있다. 아래 인터넷 주소를 통해, 자신의 애착 유형을 테스트할 수 있다. (http://typer.kr/test/ecr)

4가지 애착 유형 :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혼란형 

성인애착유형 구분
성인애착유형 구분

첫 번째는 안정형 애착이다. ‘자기 긍정-타인 긍정’ 성향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기본 욕구들을 안정적으로 해결해 주는 상황이다. 아이들은 낯선 상황에서도 부모를 안전기지로 삼아, 새로운 환경을 탐구하는 태도를 가진다.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도 낯선 사람과 친밀하게 지낸다. 자신은 사랑스런 존재이고, 타인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불안형 불안정 애착이다. ‘자기 부정-타인 긍정’ 성향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행위가 늦어지는 경우이다. 아이들은 울거나 떼를 쓰는 감정적인 행동으로 부모의 돌봄을 이끌어 낸다. 부모의 돌봄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약한 존재로 인식한다. 불안형 애착은 낯선 상황, 낯선 사람과의 만남, 부모와의 분리 상황에서 불안한 감정 표현을 보인다. 

세 번째는 회피형 불안정 애착이다. ‘자기 긍정-타인 부정’ 성향을 가지고 있다. 부모가 아이를 방치하거나, 돌볼 여력이 없는 경우이다. 아이는 감정 표현을 해도 부모가 반응하지 않는 걸 지속적으로 경험한다. 아이는 홀로 생존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화된다. 자신은 강하고, 타인은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낯선 상황, 낯선 사람, 부모와의 분리 상항에서 정서적 반응없이, 홀로 있는 모습을 보인다. 

네 번째는 혼란형 불안정 애착이다. ‘자기 부정-타인부정’ 성향을 가지고 있다. 부모에 의해 학대를 받거나, 부모의 양육 태도가 일관되지 않은 경우이다. 낯선 상황, 사람, 부모와의 분리에서도 일관되지 않은 반응을 보여준다. 자신과 타인에 대해서 긍정과 부정이 불규칙하거나 과도하게 나타난다.

물질적 돌봄에서 정서적 돌봄으로 전환을 고민해야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안정형 애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육아와 돌봄을 물질적 문제로 환원해서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경제적 지원 정책만으로는 건강한 양육환경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돌봄은 정서적 상호작용이다. 신뢰와 호혜에 기반한 사회 작용을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제주가족친화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수눌음돌봄 사업은 이런 관점에서 매우 인상적인 사업이다. 3가구 이상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공동 육아와 돌봄 공동체로 활동하는 것을 지원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의 협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애착 유형은 안타깝게도 대물림 현상이 강하다. 회피형 부모 밑에서는 회피형 아이로, 불안형 부모에게서는 불안형 아이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의 성향에 따라 반응하면서, 부모의 성향을 학습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청년자율예산 사업으로 부모들의 건강한 가족 관계 형성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의 정서적 건강을 지원하는 것은 애착을 형성하는 매우 효과적인 접근법이 될 수 있다. 

제주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수눌음돌봄과 부모학교 포스터
제주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수눌음돌봄과 부모학교 포스터

따뜻한 정서적 돌봄을 지역 사회 내에 촘촘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의 공공적 돌봄 서비스는 취약계층에게 뿐만 아니라 누구나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돌봄은 사람에 의한 정서적인 상호작용이다. 돌봄에 참여하는 사회복지 관계자들을 안정적으로 지원한 것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것은 개인과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중요성에 걸맞는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 불안정한 애착 유형은 개인에게는 정상적인 사회 활동에 악영향을 미친다. 불안정한 애착 유형이 많은 사회에서는 신뢰에 기반한 사회적 협력이 어려워진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고, 사회의 생산성과 창조성을 저하시킨다. 다음 칼럼에서는 애착 유형이 개인과 가정을 너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깊게 다룰 예정이다.  


# 글쓴이 김종현은?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
사회적기업 섬이다(閃異多)를 창업, ‘닐모리동동’, ‘우유부단’, ‘제주관덕정분식’ 등 제주가치에 기반한 창의적인 로컬푸드 브랜드들을 만들었다. 이후 청년들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는 ‘제주더큰내일센터’를 기획, 초대 센터장으로 근무하였다.
현재 그는 사회적기업 섬이다의 대표이사로, 도시재생 로컬크리에이터, 청년활동 등 다양한 혁신 산업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