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194) numb

numb [nʌm] ɑ. 마비된
툭허믄 ‘참사’, 툭허믄 ‘탄핵’
(툭하면 ‘참사’, 툭하면 ‘탄핵’)

참사는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연상시키기에, 아무리 비유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장된(exaggerated)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제주의소리
참사는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연상시키기에, 아무리 비유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장된(exaggerated)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제주의소리

numb의 인도유럽어족 어근(root)은 nem으로, “이미 사로잡혀 있는(=taken, seized)”을 뜻한다. ‘더 이상 움직이거나 느낄 수 없다는 무감각함이나 무기력함(=deprived of motion or feeling, powerless to feel or act)’을 이르는 말이다. 보통은 ‘toes numb with cold(추위로 곱은 발가락)’에서처럼 형용사로 쓰이지만, ‘My lips were numbed with cold(내 입술은 추위로 감각이 없어졌다)’에서처럼 동사로 쓰일 수도 있다. 

“비참하고 끔찍한 일(a miserable and terrible accident)”을 뜻하는 ‘참사(慘事:disaster)’란 말이 있다. 특히, 다수의 인명 피해(loss of many lives)가 발생한 불행한 재난 사고를 두고 참사라 한다. 사건과 사고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는 정부 기관 등의 기록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고, 일반인들(ordinary people)이 보기에 비참하고 끔찍한 사고를 명명할 때 통칭으로 사용되곤 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 등이 그 예다. 

그러던 ‘참사’가 이제는 스포츠나 예능 같은 분야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충격적이거나 예상밖의 장면이 나오게 되면 별 생각없이 참사라 하고 있다. 물론 비유적으로(figuratively) 사용하는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도 아니고 언론이 앞장서서(with the press leading the way) ‘도하 참사’나 ‘고척돔 참사’라고 하는 것은 좀 과하다. 일반적으로 참사는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연상시키기에, 아무리 비유적인 표현이라 하더라도 지나치게 과장된(exaggerated)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요즘에는 “탄핵(impeachment)”이란 말도 남발된다. 대통령 탄핵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장관 탄핵, 판사나 검사 탄핵까지 심심찮게 거론되는 건 누가 봐도 다분히 정략적(politically motivated)이다. 물론, 국회는 일반법원에 의해서 소추(legal action)가 어려운 고급공무원(high-ranking public officials)의 직무상 중대한 비위 또는 범법행위에 대해 얼마든지 소추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을 교체하는 선거(election)가 있고 모든 공직(public office)에 임기(term)가 정해져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탄핵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 건 낯부끄러운(shameful)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인들만 낯부끄럽지도 않은 듯 툭하면(at the slightest) 탄핵이란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서점가의 카피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만 그런 게 아니고 언어도 그렇다. 사람이 언어를 만들지만 언어가 사람을 만들기도(Man makes language and language makes man) 한다. 이를 두고, 대개는 긍정적인(positive) 영향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부정적인(negative) 영향도 그 못지않게 많다. ‘참사’나 ‘탄핵’과 같은 말이 과다사용(overuse) 되다 보면, 참사란 말을 들어도 “또 참사이려니” 하고 탄핵이란 말을 들어도 “또 탄핵이려니” 하면서 온 국민이 무감각해진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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