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학부모 아카데미] 35년 교직 경력 금산간디학교 이범희 교장
“어른 역할은 아이 잠재력 싹 틔우는 것, 부모·교사·학생 모두 의무 있어”

틈만 나면
박일환

너는 어떻게 된 애가 
틈만 나면 게임을 하고
틈만 나면 피시방엘 가고
틈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 보니?

하지만 엄마는 모른다
학교와 학원에 매여 사는 내가
틈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어쩌다 틈이 났을 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를.


제주도교육청 민간위탁 사업으로 [제주의소리]가 주관한 ‘2023 학부모아카데미’가 30일 오전 제주 복지이음마루에서 열렸다. 이번 강연은 금산간디학교 이범희 교장을 강사로 초청했다. 

이범희 교장은 용인시 흥덕고등학교 교장, 경기도교육청 교원정책과장, 성남교육지원청 교육장 등을 거치며 35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그리고 올해 4월부터 대안학교인 금산간디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범희 교장은 수업혁신 연구모임 ‘참여소통교육모임’ 회장을 맡는 등 공교육 안에서 보다 나은 교육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온 교육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이번 학부모아카데미에서 시(時), 산문, 음악, 영화 등을 예로 들면서 참가자들과 감성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주력했다. 예비 중학생 부모가 참가 대상이었지만, 강연은 어린이집 자녀부터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까지, 모두에게 유익한 ‘교육의 본질’을 폭넓게 공감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이범희 교장은 “교육은 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논리정연한 것도 아니다. 나이로 하는 것도 아니고 직급도 아니다. 바로 삶에서 삶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부모로 살아가는 것, 교사로 살아가는 자체가 학생들에게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30일 학부모아카데미 강사로 참여한 금산간디학교 이범희 교장.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30일 학부모아카데미 강사로 참여한 금산간디학교 이범희 교장.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당신은 학부모인가? 부모인가?

이범희 교장은 일명 ‘교권 붕괴’로 요약되는 현재 한국 교육계 문제가 새로운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앞서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부모의 극성으로 인한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우리보다 먼저 출산율 감소 등의 사회 문제를 겪은 일본에서 똑같은 문제가 벌어졌고, 이어 홍콩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등장한 신조어가 바로 ‘괴물 부모(monster parents)’다.

이범희 교장은 가수 하덕규의 노래 ‘가시나무’를 소개하면서 “나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학부모가 돼야 하는 또 다른 내 모습에 씁쓸해하기도 한다”고 격려했다.

그러면서 부모들이 먼저 스스로를 되돌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요구하는 사람인가? 해결하는 사람인가?”라며 “학교 교사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교사 위치라면 과연 요구들을 해낼 수 있을까.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면 입장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듯이, 늘 자신을 성찰하고 경계하려 노력할 때 좋은 부모로 존재한다”고 충고했다. 

예시를 들면서 “만약, 어린이집 학부모가 있다면 선생님에게 이렇게 당부해보자. 자녀 알림장은 아주 간단히 써도 되니, 그 시간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잠깐이나마 숨 돌리면서 아이들과 잘 놀아달라고 말해보자. 어느 요청, 부탁보다 선생님들이 나서서 아이들을 사랑할 것이다. 부모가 교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때 아이는 건강히 큰다”고 밝혔다.

익숙한 자녀도 낯설게 보며, 입장을 이해하자

이범희 교장은 교육적인 관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서로 배우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오래 전, 나무 그늘 아래에서 교사와 학생 구분 없이 각자가 잘하는 것을 공유하는 모습이 참된 학교라고 소개했다.

그는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교사고 어른이지만 다른 무언가를 배운다면 그때는 학생이 된다”면서 “원두커피 내리는 방법, 그림 그리는 방법과 위독한 환자를 위한 치료법은 비중이 현격하게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부 부모는 커피 내리기와 환자 치료법을 똑같이 여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자녀의 소소한 잘못은 눈 질끈 감고 넘길 수 있는 용기야 말로 부모에게 필요한 능력”이라며 “아이를 볼 때 늘 같이 있어서 다 아는 것 같지만 새롭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에게 꼭 필요한 능력 가운데 하나는 아이들의 소소한 변화를 독수리처럼 찾아서 칭찬해줄 수 있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교장 시절에 아이들이 다 가고 나면 빈 교실 의자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 좁은 자리에 하루 종일 앉아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며 “오늘 여러분에게 두 가지 숙제를 주겠다. 자녀 학교의 담임 교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 문자를 남겨보자. 그리고 자녀에게는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안아주며 인사해보자”라고 당부했다.

주변에 휘둘리는 부모가 아닌 자신만의 철학 갖춘 부모

이범희 교장은 공자가 남긴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격언을 강조했다. 회사후소는 그림 그리는 일은 밑 작업을 한 다음이라는 의미로, 바탕을 먼저 갖추라는 취지다.

이범희 교장은 “유명세에 학원을 옮기며 주변 말에 따라가지 말자. 부모는 확실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녀들이 제일 힘들 때가 부모가 이리저리 휘둘릴 때다. 아이들이 ‘우리 부모의 교육 철학은 이것’이라고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산간디학교에서 사용하는 부모 지수 테스트를 소개했다. 

▲아이 친구들과도 친하다. 
▲10초 안에 아이 친구 다섯 명의 이름을 말할 수 있다.
▲아이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이가 최근에 무슨 일로 마음이 상했는지 파악하고 있다.
▲아이의 감정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아이의 재능과 소질을 말할 수 있다.
▲아이의 장점을 3가지 이상 말할 수 있다. 
▲아이의 현재 고민거리를 알고 있다.
▲아이와 함께 독서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는다. 
▲아이의 기를 살려주는 말을 자주 한다.
▲아이와 30분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친구와 동생 앞에서 아이를 꾸짖거나 벌주지 않는다.
▲아이들 앞에서 부부 싸움이나 말다툼을 하지 않는다. 
▲아이의 담임선생님 이름을 알고 있다.
▲아이와 식사할 때는 TV,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내 기분에 따라 가족의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이범희 교장은 “농경사회와 산업사회까지는 암기-강의 위주의 교육, 표준화되고 객관화된 지식 전달 능력을 중시했다. 그러나 지식정보 사회와 창조기반 사회로 나아가면서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력, 서로 다른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심된다”고 달라진 인재상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한말부터 국내에 도입된 학교 시스템은 일제강점기,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학교의 모습과는 상당부분 거리가 멀어졌다”면서 ▲실적주의(상급학교 진학이 최고 중요) ▲물량주의(퍼붓기와 받아먹기 식의 강제 학습) ▲형식주의(교육 내용의 형식적 이수 중시) ▲일방주의(학습자의 교육요구 배제, 무시, 제한)라는 성격을 지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범희 교장은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교육이 바뀌는 건 쉽지 않다. 새로운 교육감을 뽑는다고, 교장이 새로 왔다고 확 바뀌진 않는다”면서 “다만 학부모가 바뀌면 많은 부분 바뀔 가능성이 있다. 학부모를 배제하고 좋은 학교를 만든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가 용기 있게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학부모가 지지해준다면 교육이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연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강연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학교 교육의 핵심...관계 익힘, 개념의 인식

이범희 교장은 “부정적인 지표들이 넘치는 대한민국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도 그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교육은 사회 지표와 분리할 수 없다. 그냥 공부만 잘하라고 말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부분도 짚었다.

그러면서 학교 교육에서 반드시 잡아야 할 두 가지 핵심으로 ‘관계 익힘’과 ‘개념의 인식’을 꼽았다.

그는 “인간은 관계로 성장한다. 서로 연결된 관계의 매듭 안에서 주체가 결정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도움과 역할로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역할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범희 교장은 “좋은 교육의 권리에는 의무가 내재돼 있다. 교사에겐 수업을 열심히 연구하고 실천하는 의무가, 학생은 그 학습에 교사에게 예의를 갖추고 성실히 임할 의무가 있다”며 “그리고 학부모는 학생 뿐 아니라 학교와 교사를 존중하고 학생을 독려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오늘 날 사춘기 청소년 자녀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김현수 작가의 책 ‘사춘기 마음을 통역해 드립니다’(미류책방)를 추천했다.

덧붙여 “부모된 사람들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부모된 사람들의 가장 큰 지혜로움은 자신들의 삶이 자식들의 사랑거리에 되게 하는 것”이라는 격언을 강조했다. 

이범희 교장은 흥덕고 교장 재직 당시 기억에 남는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흥덕고에 있을 때 매일 아침 등굣길 교문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면서 ‘교문 앞 스토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매일 수업 시간마다 조는 어느 학생에게 물어보니 치킨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다더라. 하루 날을 잡고 그 치킨 가게를 찾아갔다. 맥주도 한잔 시켜 마시면서 사장에게 학생의 아르바이트 시급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배달 가는 학생의 오토바이 뒤에도 타서 따라도 가봤다. 얼마 뒤 그 학생을 다시 만나니 실제로 시급이 조금 올랐다고 하더라. 그럼에도 수업 시간에 조는 버릇은 고쳐지질 않았는데 하나 달라진 점이 있었다”면서 “이제는 손에 볼펜은 쥐고 잔다”고 말했다.

또한 “흥덕고는 여러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모인 학교였는데 교사 전체를 소집해 학생 규제를 개편했다. 딱 세 가지는 절대 안되고, 나머지는 모두 허락했다. 세 가지는 폭력, 교권침해, 흡연이었다. 만약 학생이 담배 피는 모습을 교사가 한 번 적발하면, 적발한 교사와 흡연자 학생이 한 시간 동안 운동장 뛰기로 했다. 두 번째 적발이면 두 시간 뛰기, 그리고 세 번째 적발이면 지리산 천왕봉을 다녀오기로 정했다. 물론 운동장에 뛰러 나오는 아이들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이 변화를 7월 초에 시작했는데 10월에 지리산행 관광버스 좌석이 꽉 찼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아이들이 지리산에 간다고 담배를 끊겠나. 오히려 거기서도 핀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올라가서 교사의 손을 잡아주고, 아침 등굣길에 ‘교장선생님 무릎은 괜찮냐’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면서 “교육의 비법은 없다. 작은 변화를 찾아서 인정할 때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한다”고 예를 들었다.

이범희 교장은 “부모와 교사의 역할은 사막에 내리는 소낙비와 같다. 아이들이 가진 잠재적 씨앗을 틔우는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이 스스로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하라. 아이를 위한다면 교사들과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더 큰 효과가 있다”면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교육은 말이나 글, 논리, 나이, 직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와 교사의 삶에서 학생의 삶으로 전이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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