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영리하면서 탄탄하고 놀라운 무대였다.

17~18일 공연한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날개)는 부종휴(1926~1980, 전 김녕초등학교 교사)와 그의 어린 제자들이 만장굴을 발견한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다. 다만, 옛 이야기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부에 묶여 사는 지금 10대의 현실과 연결한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이 새장 속에 갇혀 사는 아기 새가 아닌 힘찬 날갯짓으로 창공을 활보하는 존재로 성장하길 노래한다.

‘날개’는 이런 확고한 주제를 청소년과 성인 출연진의 뛰어난 노래 연기, 감정을 흔드는 영리한 작곡으로 뒷받침한다. 여기에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쓰며 쌓아올린 작품 완성도는 제작사인 호은아트의 저력을 제주 공연 예술판에 각인시키기 충분했다.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장면. / 사진=호은아트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장면. / 사진=호은아트

70여년 전 젊은 교육가의 뜻...시대를 초월하다

‘날개’는 2023년 한국과 1946년 해방 직후 제주를 오가는 구성이다. 부모, 교사 등 지금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정해진 대로 시키는 대로” 커주길 바란다. 똑같은 교복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서 ‘수연’(배우 김반디)은 사소한 주변이라도 유심히 관찰하는 아이다. 수연은 집안에서 우연히 부종휴와 꼬마탐험대 책을 발견하고, 작품은 1946년 제주로 향한다. 

새로 부임한 교사 부종휴는 교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라고 포부를 전한다. 부종휴가 품은 열정에 제자들도 부응하면서 탐험 끝에 만장굴을 발견하지만, 굴 안에서 시체를 발견하는 등 어려움도 겪는다. 

탐험대원 아이가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부모들은 극렬하게 반발하며 부종휴는 연신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부종휴는 미래 세대가 개척 정신으로 세상을 마음껏 날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동시에 나라를 빼앗긴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작품은 과거와 현재 인물들이 만장굴 안에서 함께 모여 부르는 합창으로 막을 내린다.

‘날개’는 부종휴와 꼬마탐험대 활동이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해석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잇는 데 공을 들인다.

학생들을 격려하며 부종휴가 노래하는 장면에서 투명 막 뒤편으로 부종휴 책을 품은 수연을 등장시키며, 개척 정신이 시대를 거슬러 이어짐을 연출했다. 또한 지금 교사는 보도블록 사이 꽃을 보다가 지각한 수연을 혼내며 우유 정리 봉사를 시키지만, 부종휴는 반 학생들 이름을 하나하나 모두 불러주며 희망과 미래를 전한다. 1946년 꼬마탐험대원과 2023년 수연이 함께 노래하고, 꼬마탐험대원 김두전과 노년 해설사 김두전이 마주보며 노래하는 등 시공을 뛰어넘는 연출은 서사를 감동적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수연과 엄마 간 관계 역시 작품 안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엄마는 부종휴 꼬마탐험대 출신 아버지처럼 한때 모험심 가득한 아이였지만, 지금은 딸 수연이 안정적으로 커주길 바란다. 고민하는 엄마를 향해, 부종휴 꼬마탐험대 출신의 노년 해설사는 “자신은 탐험대 활동했던 힘으로 지금껏 살아간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아이를 새장 속이 아닌 세상 속에서 키우라고 당부한다. ‘새장이 아닌 세상’이라는 주제를 극 전체에서도 모녀 관계에서도 보여주는 셈이다.

수연이네 할머니가 제주에서 ‘미깡’ 농사를 짓는데, 알고보니 외가 쪽이 제주 출신이었고 할아버지가 부종휴 꼬마탐험대 출신임이 공개되며 제주로 향하는 설정도 이야기를 보다 설득력 있게 만드는 노력이다.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장면. / 사진=호은아트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장면. / 사진=호은아트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장면. / 사진=호은아트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장면. / 사진=호은아트

노래와 연기의 조화...무대에 ‘날개’를 달다

‘날개’ 출연진은 성인 6명과 청소년 14명이다. 성인 주연 배우는 한정우, 왕하성, 곽수아 등 대학로 뮤지컬에서 활약 중인 배우들이 채웠다. 2021년 뮤지컬 ‘메리 메리’로 제주를 찾았던 한정우는 모처럼 다시 제주 관객 앞에 섰다. 부종휴 역을 연기한 한정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인 노래 실력으로 무대를 이끌어 간다. 왕하성과 곽수아는 각각 노년 해설사와 수연 엄마 역을 맡아 중반 이후부터 본격 등장한다. 처음에는 두드러지지 않는 위치지만 극 안에서 주어진 역할을 보여줄 때 멋진 노래 연기를 통해 확실한 존재감을 뽐낸다. 강지훈, 강제원 등 섬 안에서 공연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젊은 제주 배우들도 매끄럽게 녹아들었다.

청소년 출연진은 제주 초등학생들로 구성했다. 영평초, 월랑초, 백록초, 동홍초, 교대부설초, 도련초, 아라초, 한라초에 재학 중인 청소년 출연진은 탄탄한 실력을 펼치며, 검증된 주연 못지않은 인상을 남겼다. 실력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한라산 등반 직전이다. 녹음된 반주 없이 부종휴 역의 한정우와 꼬마탐험대 8명이 앞서 부른 노래의 한 소절을 짧게 다시 불렀는데, 무반주임에도 흐트러짐 없는 매끄러운 호흡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이렇게 역량을 가진 출연진과 함께 ‘날개’ 음악은 단연 돋보이는 요소다. 모험, 용기, 희망, 미래, 도전 같은 이미지에 걸 맞는 감미로운 곡을 선보인다. 2~3분 길이의 비교적 짧은 곡들이 비중을 차지하고, 선율 변화를 통해 감정을 고조시키며, 곡 하나마다 완결성을 지니는 등 최근 뮤지컬 작품 경향에 잘 부합한다는 느낌을 줬다. 수연, 부종휴 등이 부른 핵심 구절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작곡·작사를 포함해 전반적으로 곡 분위기가 비슷한 흐름이지만, 그럼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는 곡 자체가 가진 매력 덕분이다. ‘날개’ 음악이 영리하게 만들었다는 인상을 주는 이유다. 

과거와 현재 인물이 함께 부르는 합창이 다수 포진해 감성을 자극한 특징도 주목할 만 하다. 짧은 의성어 대사를 반복해서 사용하거나, 동요 ‘어린 음악대’ 도입부를 사용하는 등 기억에 남게 하는 구성이 눈에 띄었는데 객석을 채운 청소년 관객층에도 주효했다. 18일 오전 공연은 제주지역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참여했는데, 공연 내내 뿐만 아니라 끝나고 나서도 여운을 즐기는 반응을 손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날개’는 부족한 예산을 감안해 책상, 텐트, 바위 정도를 제외하면 무대는 대부분 영상으로 처리했다. 중간막을 자주 사용하면서 다소 산만한 인상을 주지만, 오히려 막 자체를 메시지를 전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음악과 노래 연기, 그리고 깔끔한 동선 설정으로 인해 단점을 충분히 상쇄시켰다. 과거 꼬마탐험대와 수연 모녀가 속한 현재 탐험대가 만장굴에 함께 있는 극 막바지에서도 이런 특징은 잘 드러난다.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장면. / 사진=호은아트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장면. / 사진=호은아트

뮤지컬 창작 역량 확실히 알린 (주)호은아트

작품 안에서 ‘부모’ 역할은 과거 현재를 불문하고 자녀를 억누르는 역할로 고정돼 있다. 물론 과거엔 해방 직후라는 시대 배경을 언급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정도고, 현재는 수연 엄마가 극 말미 해설사의 조언을 듣는 설정으로 보완하지만 부모 자녀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 시켰다는 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부모들이 ‘왜 우리가 안정을 강조하는지’ 조금 더 납득할 수 있는 보강이 필요하진 않을지 의견을 더한다. 

극 초반 수연이 부종휴와 꼬마탐험대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과거로 전환하는 진행도 갑작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물론 이런 사족은 장점 덕분에 크게 부각되진 않을 만큼 ‘날개’는 빼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올해 제주 안에서 시도한 뮤지컬 창작 시도 가운데 가장 깊은 인상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주)호은아트는 창작 뮤지컬 ‘꿈은 움직이는거야’(2021), ‘황금 백서향의 비밀’(2022) 제작과 공공기관 협업, 청소년 뮤지컬 교육 등을 통해 공연 장르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제주 극단들도 뮤지컬 창작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저마다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주)호은아트는 제작진과 출연진을 포함해 제주 안팎 인력을 연결하면서 창작 역량을 이번 ‘날개’로 증명했다.

2022년 초연 당시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는 부종휴라는 인물의 업적을 조명하는데 상당한 공을 쏟았다. 올해 새로운 제작자로 나선 (주)호은아트의 ‘날개’는 ‘청소년’, ‘뮤지컬’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시는 2024년 말까지 ‘부종휴와 꼬마탐험대’ 저작권 계약을 맺은 상태다. 1년 뒤에 다시 도민 앞에 설 ‘날개’와 (주)호은아트의 또 다른 작품에 기대를 품어본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