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 창작 오페라 ‘제주의 기적 맥그린치’ 갈라 콘서트

지난 16일 열린 창작 오페라 맥그린치 공연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지 기자
지난 16일 열린 창작 오페라 맥그린치 공연 모습. ⓒ제주의소리 한형진 기자

지난 16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열린 창작 오페라 ‘제주의 기적 맥그린치’(오페라 맥그린치) 갈라 콘서트는 시작 전부터 관심을 불러 모았다. 

전쟁 총성이 막 멈춘 1954년부터 제주에 머물며, 척박했던 도민 삶을 개선하는데 헌신한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1928~2018), 일명 임피제 신부를 소재로 삼았다. 맥그린치 신부가 선종한지 5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여전히 많은 도민들이 고인을 기억하고 있다. 당연히 맥그린치 신부 인생을 무대에서 재현하는 공연은 주목받기 마련이다.

여기에 창작 오페라 ‘순이삼촌’을 탄생시킨 주역이 다시 뭉쳤다는 점도 중요한 대목이다. 제주아트센터 공연 기획자로 재직했던 김태관(현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장)과 성악가 강혜명은 2020년 11월 오페라 순이삼촌 초연을 성사시켰다. 당시 김태관은 기획총괄로, 강혜명은 예술감독·연출·각본을 담당한 바 있다. 이번 오페라 맥그린치에서는 각각 제작기관 대표와 예술감독으로 계속해서 핵심 역할을 맡았다.

오페라로 풀어낸 맥그린치 신부의 제주 사랑

이번 공연은 완성이 아닌 일부를 소개하는 갈라 콘서트(gala concert)다. 그럼에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투입했고 곡은 13개를 준비했다. 공연은 2015년 맥그린치 신부가 아일랜드 대통령상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행을 명받는 젊은 맥그린치 신부를 등장시키며 제주 활동을 예고한다.

성당 건설을 고심하던 중 반가운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 사연을 시작으로 ▲통시(돼지우리)에서 돼지가 탈출해 속상한 아이들 ▲일자리를 위해 제주를 떠나는 소녀 순임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이 숨지면서 통곡하는 순임 아버지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는 맥그린치 ▲성이시돌의원에서 암 환자를 돌보는 메리 스타운톤 수녀(엔다 수녀)를 차례로 등장시킨다.

그리고 중년의 맥그린치 신부가 스스로를 “파란 눈의 제주 사람 임피제”로 소개하며 인사를 건네고, 맥그린치 신부가 강조했던 성서 내용을 전체 출연진이 합창으로 부르며 공연은 막을 내린다.

갈라콘서트 무대는 안쪽부터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채웠고 나머지 공간에서 출연진이 오고갔다. 출연진은 노래에 집중했고 연기는 여건 상 최소한으로 임했다. 맨 안쪽 스크린에는 생전 맥그린치 신부와 고인이 활동했던 한림 지역 거점들을 사진으로 띄웠다. 앞서 언급했듯 이번 공연은 미완성 상태로 보여주는 자리다. 무대, 극본, 연기 등 상당수 요소를 결정짓듯이 판단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감정에 기댄 가사,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부족한 서사

그럼에도 선보인 곡들을 통해 작품을 어떤 서사로 끌고 가는지는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갈라콘서트에서 불린 오페라 맥그린치 음악 13곡 가운데 상당수는 가사에서 감정이나 상태를 간접적으로 전한다.

젊은 맥그린치는 한국으로 향하기 전에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낯선 타국에서 “기억되지 못할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주님 말씀을 세상 끝까지” 따르겠다고 다짐한다. 제주 한림에 부임하고 나서는 “당신 뜻 이루도록 지혜를 허락하고”, “아픔을 헤아려 희망, 용기를 허락해 달라”고 신께 기도한다. 통시에 모인 한림 아이들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다”, “같이 세상을 밝히자”고 노래한다.

순임은 “꿈을 위해 떠난다”면서 “철썩이는 제주 한림의 푸른 바다”를 노래하다가 “지긋지긋한 가난”을 언급하고 “아름다운 한림”을 다시 노래한다. 순임 아버지는 “차디찬 죽음의 벽”,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비를 용서 마라”, “참담한 고통 심장을 에이고” 같은 가사로 눈물 짓는다.

곧이어 맥그린치가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지 장면에서는 “그대 마음 움직이길”, “돌이킬 수 없는 시간”, “깊은 원망 흐르고”, “심장 칼로 에이는 듯”, “절망을 희망으로 물들이기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여기에 “주님 사랑 속에 삶을 영위하고”, “사랑을 저희 가운데 머물게” 해달라는 엔다 수녀까지 더한다. 이렇게 오페라 맥그린치 가사는 전반적으로 비유에 쏠려 있다.

비유적 표현은 감성에 보다 다가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전체에 걸쳐 반복된다면 관객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특히 순임, 순임 아버지, 맥그린치까지 이어지는 아리아 3곡이 두드러졌다. 순임이 부산에 어떤 일을 하러 떠나는지 어떤 이유로 숨졌는지 가사 안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뒤따르는 맥그린치 아리아 역시 한림 주민들에게 무엇이 필요하며, 어머니를 제외하고 누구에게 무엇을 요청하는지 구체적인 내용 없이 감정 호소 일변도로 흐른다.

이야기 진행을 위한 구체적인 정보는 노래가 아닌 일반 대사 안에서 짧게 등장한다. 맥그린치와 마을 주민이 성당 건축용 목재에 대해 나누는 대화, 순임과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 정도다. 감정에 기대는 가사와 함께 서사의 공감대를 느끼는 가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나마 노년 맥그린치의 마지막 아리아는 성서 내용, 구체적인 명칭, 비유 등이 가사 안에 비교적 균형 있게 녹아들었다.

극본 역시 방향성에 있어 더 많은 고민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맥그린치 신부 이야기 가운데 가장 극적인 매력을 뽐낼 수 있는 대목은 바로 한림에서의 활동이 아닐까 싶다. 돼지 몇 마리에서 시작해 대단위 목장으로 키워내고 이후 한림수직, 신용협동조합, 성이시돌의원 등으로 이어지는 사연은 ‘실패’, ‘극복’, ‘성장’, ‘희망’이라는 요소들이 자연스레 녹아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충분히 만들어낼 소재인데, 정작 무대에서는 초기 성당 설립만 다루는데 그친다.

물론 작사와 극본에 대한 걱정은 향후 완성할 본 공연에서 얼마든지 보강 가능하기에, 지금 언급은 기우에 그칠 수 있다. 비율이 깨진 사진을 그대로 화면에 내보이거나, 가사를 외우지 못해 화면을 힐끗 거리는 출연진, 아이들과 순임을 동년배로 맞춘 어색한 설정 등의 문제도 본 공연에서는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맥그린치 신부가 무엇을 남겼는지 무대에 담아야

오페라 맥그린치 작사는 순임 아리아와 청소년 중창곡은 한림 출신 양민숙 시인이 맡고, 나머지는 강혜명 예술감독이 맡았다. 작사를 포함해 본 공연에서는 전문성을 살리는 분업이 더 필요해 보인다. 

오페라 맥그린치 작곡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음악위원장 이상철 신부가 전담했다. 오페라 맥그린치 음악에서 느껴지는 ‘거룩’, ‘장엄’, ‘비애’, ‘비장’의 분위기와 묵직함은 다양한 서사의 색을 담아내지 못하는 극본 영향과 함께, 음악인이면서 성직자인 이상철 신부 위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오페라 맥그린치가 “임피제 신부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이웃사랑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공연이라면, 일부 성직자와 한림 출신 중·노년층만 추억을 곱씹는 공연으로 머무르지 않으려면, 완성도를 담보한 ‘재미’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여기서 재미는 관객을 울리고 웃기고 감동시키는 총체로서의 재미다. 오페라 순이삼촌이 원작 속 비극을 극대화했다면, 오페라 맥그린치는 여러 재미를 녹여낼 수 있는 소재가 충분하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제주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서로 사랑하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맥그린치 신부의 유지는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우리들의 실천·의지·연대도 강조하고 있다.

제주도의회가 연말에 진행한 제주도 내년 본예산 심의에서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 기획공연 예산은 복수 의원들에 의해 증액됐다. 오페라 맥그린치 본 공연을 2024년에 만날 수 있다는 전망은 심의 전부터 나왔다. 오페라 맥그린치가 남녀노소 고른 관객에게 환영 받고, 지역 예술인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으며, 맥그린치 신부를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박수를 받는 작품으로 제작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정식 공연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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