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90) 쇼펜하우어(홍성광 역),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을유문화사, 2013/2020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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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1851년에 펴낸 ‘소품과 부록’을 번역한 것으로, ‘소품’에서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을 ‘부록’에서 ‘인생론’을 추려서 실은 것이다. 2023년 한해를 철학자가 쓴 행복론과 인생론을 읽으면서 마무리하는 것도 좋겠다 싶다. 

자기계발서를 곧잘 읽었던 필자는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이 책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과 함께, 스토아 철학자들이 쓴 책 중에서 (지난번에 소개했던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말고도) 세네카의 ‘행복론’이나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등을 추천한다. 또 권하고 싶은 책에는 톨스토이의 ‘인생독본’과 그라시안 신부가 쓴 ‘세상을 보는 지혜’가 있다. 불교 수행자들이 쓴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책도 꽤나 진지하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은 필자가 좋아하는 책들을 모아놓은 책장에 꽂혀있다. ‘북세통’ 원고 덕분에 이번에 다시 꺼내 읽었다. 이 책에서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내면에 삶의 중심을 둘 것, 고통과 무료함을 멀리하고 명랑함을 간직할 것, 주체적으로 살고 독자적 사고를 할 것을 여러 면에 걸쳐 권고한다. 

내면의 중요성

쇼펜하우어는 프랑스의 극작가 상포르가 쓴 문구로 ‘행복론 –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을 시작한다. 이 짧은 문구에 쇼펜하우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얻기란 쉽지 않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행복을 얻기란 매우 어려우며,
다른 곳에서 얻기란 아예 불가능하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운명은 다음 세 가지에서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인간을 이루는 것(인격, 건강, 힘, 아름다움, 기질, 도덕성, 예지와 예지의 함양), 인간이 지니고 있는 것(재산과 소유물),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명예, 지위, 명성).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다음 문구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인간의 내면적 모습과 인간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 요컨대 인격과 그것의 가치가 행복과 안녕의 유일한 직접적 요인이다. 다른 모든 것은 간접적인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은 우리가(적어도 필자가) 헛되게 추구하는 행복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사람들은 내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을 추구하며 행복을 찾는다. 쇼펜하우어는 우리 내면의 것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을 이루는 것, 인간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다. 향유의 원천을 자기 자신 속에서 더 많이 발견할수록 인간은 더 행복해진다. 

쇼펜하우어는 소망하던 일이나 열망하던 동경의 배후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권고한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열망하던 것을 얻더라도 결국에는 공허한 것임을 알게 된다. 노년기야말로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시기라고 했다. 

쇼펜하우어는 ‘정신의 가치’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하나, 필자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함이 무척이나 아쉽다. 쇼펜하우어는 볼테르의 말로 경고한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정신을 갖지 못한 자는 자신의 나이에 겪는 온갖 재난을 당한다.”

쾌락의 소극성과 고통의 적극성

쇼펜하우어가 에피쿠로스가 인간의 욕구를 세 가지로 나눈 것을 올바르고 훌륭한 구분이라며 극찬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요구를 ① 자연적인 동시에 필연적인 것, ② 자연적이기는 하지만 필연적이지 않은 것, ③ 자연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나누었다. ①에는 음식의 섭취와 같은 욕구가, ②에는 성적인 욕구가, ③에는 사치와 부귀영화, 명예와 명성에 대한 욕구가 대표적이다. 

부는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고 명성도 마찬가지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자연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은 욕구로 인해 우리는 고통을 받는다. “현자도 가장 떨쳐 버리기 힘든 것이 명예욕”이라는 타키투스의 말처럼, 우리는 ③의 욕구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욕구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말이다. 우리는 명예 때문이 아니라 명예가 가져다주는 이점 때문에 명예를 사랑한다(엘베시우스).

에피쿠로스와 쇼펜하우어의 주장이 금욕적이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에피쿠로스가 마음의 평정과 같은 남다른 쾌락을 추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주장이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고통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쾌락을 ‘동적인 쾌락’이라고 불렀고, 고통이 없는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쾌락을 ‘정적인 쾌락’이라고 칭했다.

그는 재해를 소극적인 것으로 설명하는 대부분의 형이상학 체계를 어리석다고 여겼다. 현실적인 조언 하나를 빠뜨리지 않는데, 현실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행에 대해 상상력을 억제하고 실제로 불행과 고뇌를 겪을 때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자들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주체적 삶과 독자적 사고

쇼펜하우어는 남의 이목을 지나치게 의식하는(물론 핵개인화의 MZ 세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을 들려준다.

“각자 현실적으로 자신의 견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지 타인의 견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행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독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사물을 자신을 직접 파악하고 이를 말하려 한다. 그에게는 면밀히 숙고한 것만이 정말로 아는 것이다. 독자적 사고는 모든 사고나 표현에 독창성이 있게 한다. 

쇼펜하우어는 ‘독자적 사고’를 방해하는 ‘독서’를 경계한다. 자신의 사고의 샘이 막혀 버렸을 때 독서를 해야 하며, 자신의 생각이 남의 생각에 끌려다니는 독서를 해선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몰두할 수 있는 작업을 하라고 권고한다.

어떤 생각을 해낸 사람에게만 가치 있는 생각이 많다.

나가며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한해를 되돌아보면 필자는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것과는 상반된 삶을 살았다. 외면을 중시했고, 내면을 소홀히 했다. 쾌락에 치우쳐 고통을 외면했다. 타인의 이목에 여전히 매였고, 독자적 사고를 방해하는 매체에 의존했다. 

2023년을 마무리하고 2024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더 중요하게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봐야 할 나이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은 (‘철학자가 쓴 자기계발서’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 어떤 책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안내서가 된다. 물론 책의 내용을 따를 수 있을까, 어떻게 따를 것인가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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