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시장의 명암] ③정책 완성도 하락 
기초단체 부활만 반복 ‘제도개선 절실’

제주는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기초자치단체를 없애는 행정체제 개편을 단행했다. 4개 시·군이 사라진 자리는 2개 행정시가 대신했다. 기초의회와 법인격이 없는 전국 유일의 지방자치단체 기관의 탄생이었다. 지난 17년간 행정시장을 역임한 인원만 20여 명에 이른다. 취임 초기마다 공약과 정책이 쏟아졌다. 시민들의 기대도 높았다. 반면 임기 2년의 임명직, 사무 위임이라는 구조적 한계 속에 냉혹한 평가와 마주하게 됐다. [제주의소리]는 송년을 맞아 행정시장의 탄생과 역할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 주]


“시간이 부족했다”

고경실 전 제주시장이 2018년 6월 퇴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건넨 말이다. 고 시장은 자신의 소회를 밝히는 과정에서 이 말을 세 차례나 반복했다.

제주시 부시장과 제주특별자치도 국제자유도시본부장,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사무처장까지 지낸 고위 공직자 출신이지만 임기 2년의 행정시장이라는 구조적 한계는 뛰어넘지 못했다.

고 시장은 이 자리에서 “하나의 정책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정책을 잘 풀어내서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기에는 2년의 시간이 부족했다”고 토로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11조에 따라 행정시장의 임기는 2년이다. 다만 연임은 가능하다. 반면 역대 21명의 시장 중 연임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행정시장은 임명직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인사권자인 선출직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입장에서는 선거 공신을 위한 자리로 비춰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역대 행정시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18개월이다. 취임후 업무 파악과 행정사무감사 등의 일정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업무 수행 기간은 1년 남짓이다.

이 기간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 후 결과물까지 얻기는 사실상 어렵다. 신규 역점 사업을 구상하더라도 예산 구조상 이듬해 사업비를 확보해 집행하는 물리적인 제약도 있다.

예산을 확보해도 임기 종료와 함께 시장의 얼굴이 바뀌면 사업은 자연스레 동력을 잃게 된다. 담당 국·과장마저 바뀌면 사업의 연속성은 더욱 보장받기 어려워진다.

2016년 6월 김병립 전 제주시장도 퇴임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기결정권이 없는 시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과거 4개 시·군 체제를 언급했다.

제주도의회 부의장을 지낸 김 전 시장은 2010년 민선 5기 우근민 도정과 2014년 민선 6기 원희룡 도정에서 두 차례나 시장을 지낸 유일한 인사다. 누적 임기도 3년으로 가장 길다.

김 전 시장은 “예산 등 자기결정권이 있어야만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며 “기초의회 없이는 자기결정권도 없다.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답이다”라고 말했다.

행정시는 제주특별법 제10조에 근거해 지방자치법상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다. 법인격이 없어 기초의회를 둘 수 없다. 이에 독자적인 조례 제정권과 예산 편성권도 행사할 수 없다.

행정시장은 제주특별법 제11조에 따라 ‘도지사의 지휘·감독을 받아 소관 사무를 맡아 처리한다’고 규정돼 있다. 법률상 업무도 지자체 사무 위임에 그쳐 독자적인 정책에도 한계가 있다.

도지사 선거까지 출마했던 고희범 전 제주시장도 2020년 6월 퇴임 자리에서 “인구 50만명을 대표하는 시장이지만 법인격 없는 행정시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하소연했다.

고 전 시장은 “법인격이 없는 행정시장은 다른 지역 군수가 할 수 있는 일조차 못한다”며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도 달라질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기초단체가 필요하다. 만약 어렵다면 행정시 기능 강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세수의 일부를 행정시가 편성하도록 하는 등의 권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행정시장을 경험한 상당수 시장들의 소회도 비슷하다. 정책의 연속성 결여는 예산 낭비와 함께 업무의 전문성과 책임성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행정시장 직선제도 법인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위해서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권마다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주는 특별자치도 출범 17년을 맞아 또다시 기초단체 부활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도민 여론 수렴과 함께 법률 개정이 수반돼야 한다. 

제도개선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제주는 또다시 행정시의 명암과 마주해야 한다. 현행 법률 체제에서 행정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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