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 마련해달라"
234팀이 만들어낸 클린하우스의 작은 변화

클린하우스를 지키는 삼춘들의 겨울나기

제주시의 한 주택가에 위치한 클린하우스에서 도우미 일을 하는 김모(73)씨는 출근 시간인 오후 5시보다 1시간 앞서 일과를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나와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집에 있는 시간이 무료해 손주들 손에 용돈이라도 쥐어주려 일을 시작했다. 벌써 5년째다. 이제는 버려진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달인이 다 됐다.

기자가 클린하우스를 방문한 날은 플라스틱을 배출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배출 요일을 착각해 종이류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김 씨는 요일별 배출제를 설명하고 처리 불가한 종이류를 자연스럽게 클린하우스 틈 사이에 보관했다. 그중 두꺼운 종이 상자는 날리는 눈을 막아주는 가림막이 됐다.

그는 “오랫동안 클린하우스 일을 해와서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나 비가 올 때 몸을 피할 수 있는 작은 공간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클린하우스 도우미 김모(73)씨가 쓰레기통 사이 한쪽에 간이 쉼터를 만들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클린하우스 도우미 김모(73)씨가 쓰레기통 사이 한쪽에 간이 쉼터를 만들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클린하우스에는 추위를 피해 잠깐 앉아 숨을 돌릴 곳조차 없었다. 김씨는 누군가 버리고 간 의자를 재사용해 쓰레기통 사이 한쪽에 자리를 만들었다. 그마저도 매서운 바람이 클린하우스 틈 사이로 들어와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 김 씨는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클린하우스 주변을 돌면서 스스로 열을 만들어냈다.

잠시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손을 씻으러 갈 곳도 마땅치 않았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클린하우스 주변 상가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온몸에 쓰레기 냄새가 배 주변 상인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씨와 같이 생활쓰레기 배출 거점인 클린하우스에서 일하는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 도우미는 제주시 600명, 서귀포시 157명이다. 2016년부터 원활한 쓰레기 배출과 도시 미관 관리를 위해 재활용품 요일별 배출제 도우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클린하우스 도우미 김씨가 분리 배출을 돕고 있다. ⓒ제주의소리
클린하우스 도우미 김씨가 분리 배출을 돕고 있다. ⓒ제주의소리

하절기는 오후 6~10시까지, 동절기는 오후 5~9시까지 하루 4시간 근무하게 된다. 제주 생활임금을 기준으로 삼아 시급 1만1075원을 받고 있다. 55세 이상의 고령자에게는 가점이 부여돼 클린하우스 도우미의 연령대는 60~70대가 가장 많다.

행정은 여름에는 냉토시와 해충퇴치 약품 등을 배부하고, 겨울에는 방한 조끼와 핫팩 등 방한용품을 배부하고 있다. 도우미들의 쉼터가 따로 없어 읍면동 주민센터의 화장실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악천후가 예보될 경우에는 근로를 자제하라는 연락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클린하우스 도우미들의 사정은 녹록지 못했다. 배부받은 물품들로 여름의 해충을 쫓거나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읍면동 주민센터는 클린하우스에서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아 쉼터와 화장실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악천후에 나오지 않으면 급여가 깎일 뿐만 아니라 다음날 정리해야 할 쓰레기의 양이 더 많아진다고 했다.

클린하우스 도우미 김씨가 분리 배출을 돕고 있다. ⓒ제주의소리
클린하우스 도우미 김씨가 분리 배출을 돕고 있다. ⓒ제주의소리

작은 변화를 이끌어낸 클린삼춘 캠페인

지난 5월 지역문제해결 프로그램인 카카오 임팩트 3기에 참여한 234팀은 이러한 클린하우스 도우미들의 고충에 주목했다. 클린하우스 도우미들의 근로 여건과 인식 개선을 위해 ‘우리동네 클린삼춘’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클린삼춘’은 클린하우스와 제주어로 성별을 불문하고 아랫사람이 어른을 부를 때 통용되는 호칭인 삼춘이 결합된 이름이다. 

234팀은 삼도1동을 시작으로 클린하우스 벽면에 ‘존중해줍서양’ 스티커를 부착해 클린삼춘들을 존중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 활동을 진행했다. 

234팀이 제작한 삼도1동 클린삼춘쉼터 지도. ⓒ제주의소리
234팀이 제작한 삼도1동 클린삼춘쉼터 지도. ⓒ제주의소리

또 클린하우스 주변에 있는 카페와 편의점, 식당 등과 협력을 맺어 ‘클린삼춘쉼터’도 마련했다. 현재까지 총 10곳의 가게가 클린삼춘쉼터로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클린삼춘쉼터에서는 클린삼춘들이 편하게 방문해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있다.

6개월간 진행된 ‘우리동네 클린삼춘’ 프로젝트는 클린삼춘들의 근로 환경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할 때만 해도 클린삼춘들은 어려움에 익숙해져 쉼터가 필요하지 않다고 반응했지만, 234팀의 최종 간담회에서 클린삼춘들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작업복을 입고 어디 가기가 부끄러웠는데 프로젝트 덕분에 마음 편히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잠시나마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234팀의 김성관 씨가 클린하우스에 부착된 ‘존중해줍서양’ 스티커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234팀의 김성관 씨가 클린하우스에 부착된 ‘존중해줍서양’ 스티커를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우리동네 클린삼춘’ 프로젝트는 제주시 생활환경과와 협력을 통해 삼도1동을 넘어 제주시 전역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234팀은 넓어진 프로젝트의 영역만큼 클린삼춘들을 위해 함께 할 쉼터와 팀원을 모집하고 있다.

234팀의 김성관 씨는 “프로젝트의 의도를 알아주시고 쉼터를 제공해준 업체와 업주분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이어나갈 ‘우리동네 클린삼춘’ 프로젝트에 많은 협력과 도움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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