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91) 장이지, ‘편지의 시대’, 창비, 2023.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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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넷과 각종 첨단 미디어를 매개로 한 의사소통 없이 일상을 살기는 어렵다. 가뜩이나 ‘e-메일’ 대신 ‘편지’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오래되고 낡아 퇴색된 통신 수단으로 간주하기 십상이다. 통상 ‘편지’ 쓰기는 필기 도구와 종이류를 이용해야는데, 이것은 전자 통신 기기를 매개로 하는 글쓰기의 방식 면과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정녕,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편지’와 연관된 문화는 퇴행적일 수밖에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운명인가.

2.
그래서일까. 장이지 시인의 시집 ‘편지의 시대’를 펼치기 전 생뚱맞고 의아스러웠다. 편지의 시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고 하는 표현이 솔직할지 모른다. 요즘 누가 편지를 쓰는가 말이다. 아날로그식 글쓰기보다 전자식 키보드판을 두들기고 심지어 음성 인식의 글쓰기가 대세를 이룬 지금-여기에서 편지가 아우르고 있는 글쓰기에 익숙한 사람이 드물지 않은가. ‘오래된 새로움’으로서 간혹 편지의 매혹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편지의 시대가 뒤안길로 스러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 문득, 장이지 시인이 우리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면……. 

뉴런들 사이에서 떠도는 아직 쓰지 않은 편지, 수십억 은하의 실타래 위에 이미 있었네 암흑 속으로 팽창하는 우주에서 안드로메다처럼 당신은 내게 다가오고 있었네 우리가 하나였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서로에게 전해졌네 당신이 느끼는 것을 나도 우주적으로 느꼈네 당신이 돌담을 넘어 숲 저편으로 사라진 뒤 구름이 쌓이고 눈이 대지를 휩쓸고 눈사람이 녹아 없어지고 천변만화의 구름이 뿔뿔이 흩어졌다가 뭉치고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편지를 썼네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썼네 당신에게선 아무 소식도 없고 하루는 비 내린 장독대에서 노랑할미새가 깃털을 고르고 있었네 마당귀 고인 물을 굽은 등으로 나도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까마득한 우주에서는 엇갈리는 유성들
— ‘우주적’ 전문

시적 화자 ‘나’는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암흑 속으로 팽창하는 우주에서” “우리가 하나였을 때” 달리 말해 “우주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때 편지를 이미 썼고 지금도 남몰래 쓰고 있다. ‘나’의 편지에 대해 누군가의 “아무 소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까마득한 우주에서는 엇갈리는 유성들”이 흡사 “뉴런들 사이에서 떠도는 아직 쓰지 않은 편지”처럼 자기존재의 ‘있음’을 타전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편지는 ‘우주적’으로 전해지고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적’ 속성을 띠고 있는 편지를 인간의 세속성과 거리를 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이 편지에는 삶과 죽음의 다양한 문양과 중층적 층위가 “천변만화”의 언어로 채워져 있으며, 이 모든 것의 심연에는 사랑의 감응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들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편지쓰기는 장이지 시인에게 시쓰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3.

당신에게 쓰는 시는 언제나 나를 다치게 하네 쓰면 쓸수록 나는 죽음에 다가가네 수많은 통점으로 뒤덮인 글쓰기, 편지, 당신에게 쓰는 시……나의 수많은 기절!//(중략)//사랑의 폐광에서 내가 채굴한 당신의 이름, 날카로운 펜으로 새긴 문신/나의 첫 줄, 첫 줄이자 마지막 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검지로 문질러보네/아, 익숙해지지 않는 질감의 고통
— ‘사랑의 폐광’ 부분

“당신에게 쓰는 시……수많은 나의 기절!”이란 시구절에서, ‘나’가 쓰는 ‘편지=시’의 정체를 짐작해볼 수 있을까. 말줄임표가 동반하는 휴지와 침묵은 ‘나’의 ‘편지=시’의 언어가 ‘나’만의 “사랑의 폐광에서” “당신의 이름”을 채굴하기까지 겪은 내적 상처와 고통을 나타낸다. 흔히들 편지쓰기의 첫 줄에 누군가의 이름을 쓸 때, 지금까지 먼 곳에 있던 희부윰한 타자의 존재성은 아주 선명히 “날카로운 펜으로 새긴 문신”처럼 ‘나’에게 “익숙해지지 않는 질감의 고통”을 안겨온다. 타자를 엽서나 편지와 같은 종이류의 물질을 매개로 조우하는 일은 그 이름을 그저 표기하는 것 이상의 존재론적 질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타자의 이름을 쓰는 행위는 글자의 자음과 모음의 한 획을 쓰는 물리적 글쓰기 행위를 넘어 타자와 연루된 삶의 지평에서 매순간 죽음의 형식을 띤, 용도 폐기된 폐광의 곳곳에서 흔적으로 남아 있는 사랑의 이름을 복원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 존재론적 고통에 미친다.

이 존재론적 고통은 ‘편지의 시대’를 에워싸는 주요한 시적 정감의 세계이듯, 불에 타는 편지의 심상에 겹쳐지는 것은 흥미롭다.

한번도 편지를 불태워보지 않고 어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새까만 어둠으로 앉은 남자가 방금 몸살을 하며 빠져나온 추문(醜聞)의 소년을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자기의 허물을 몰래 불태우지 않고 어른이 될 수는 없습니다
— ‘허물’ 전문


어떤 사랑도 기록할 수 없다면 사랑을 쓸 수 없다면 저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각자 태워버린 편지는 되돌아올 수 없어도 우리 사이에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는지 얼마만큼의 하늘이 있어서 전화해도 받을 수 없는지 쓰고 싶어요 (중략) 사랑이 지나갈 때 벚꽃처럼 보이는 재, 불타버린 편지가 어디까지 그뒤를 밟다가 부서져 흙이 되는지 흙이 되어 꽃이 되는지 쓰고 싶어요 사랑을 쓸 수 없다면 저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에요
— ‘불타버린 편지’ 부분


편지를 태우기 전 거듭 읽는다 당신이 부탁한 대로 거듭 읽어 외운다 편지는 불타고 재와 연기가 난무한다 매캐한 위치에서 홀로 나는 당신을 이해해보려 하지만 당신은 내 곁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오, 나의 당신, 귀 안에 느껴지는 당신의 필압(筆壓), 나는 당신의 편지를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 타버린 편지는 난분분히 어두운 목소리 되어 창백한 해를 살라먹는다
— ‘외워버린 편지’ 부분

타자의 삶과 연루된 ‘나’의 존재가 어른으로 성숙하기 위해 편지 불태우기는 통과제의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편지를 불태움으로써 “추문의 소년”은 추문으로부터 해방돼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편지 불태우기 과정에 수반하는 성(聖)과 속(俗)의 상징의례를 겪는 데에는 사랑의 감응력이 북돋울 “살아도 산 것”, 곧 존재로서 삶의 충일감 속에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적 화자인 ‘나’에게 편지를 불태운다는 것은 편지를 거듭 읽는 내내 절로 외워지는 것이고 이것은 이성과 감성의 차원을 넘어 ‘나’의 존재로 육박해온 “당신의 필압(筆壓)”이 함의하듯, 이쯤되면 편지는 ‘나’와 당신의 매개물로서 기능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전존재와 분리될 수 없는 육화된 물활(物活)적 존재로서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편지 불태우기의 통과제의로서 ‘어른 되기’가 갖는 존재론적 고통은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4.
장이지 시인의 ‘편지의 시대’를 새해 음미하면서 생각해본다. “편지의 시대는 이미 끝났”(‘슬픈 습관’)다고 섣부른 예단을 한다. 하지만, 시집에서 언급되는 숱한 영화 속 인물들이 저마다 삶의 미로에서 슬픔과 환희, 고통과 행복, 외로움과 위안, 소멸과 흔적 등의 난경을 살면서 그것들의 서사를 스크린에서 악전고투하며 재연(再演)하듯, 시적 화자 ‘나’는 존재론적 고통의 사위에서 바로 그 때문에 그토록-저토록-이토록 신비한 사랑의 감응력이 미치는 ‘편지의 시대’를 ‘러브레터=시’로 써내려갈 터이다.   

(생략) 나는 얼마간 남자이고 얼마간 여자이다 얼마간 바람이고 흙이다 결코 한겹일 수 없는 미지(未知)이다 잠 못 드는 밤 나는 내 안의 먼 피를 떠도는 긴 사랑의 편지를 홀로 읽는다 이토록 붐비는 사랑이라니 이토록 사무치는 인연이라니……
— ‘롱 러브레터’ 부분

그렇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는 “이토록 붐비는 사랑이라니 이토록 사무치는 인연이라니”에 이어지는 말줄임표 속 “결코 한겹일 수 없는 미지”의, 다중 차원에서 존재하는 누군가들 사이 “아직 오고 있는 편지”(‘운메이(運迷)’)가 있기 때문이다.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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