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융합과학연구원 문보경 연구원, 고교학점제 편성·실태 분석 연구 결과 발표
19개 일반계고 담당 교사 면담...제도 안착 위해 고교학점제 지원센터 강화 필요

“막상 해보니까 과목을 늘렸다고 애들이 진짜 내실 있게 수업하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수업이 진로 선택 과목인 경우는 소홀히 알고, 수능 반영되는 것만 열심히 골라서 하고 이런 경우들이 발생해서….”

“1학년 때는 중학교 때까지랑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 달라서 애들이 내신 시험 성적 보고도 되게 충격받는데요. 그 와중에 선택과목을 빨리 9월까지 정해내라고 하니까 너무 힘들어해요.”

“이제 어떻게 우리 학교 특성에 맞는 (교육과정) 코스화를 할 것인가? 그런 고민은 있어요.”

2025년부터 제주 포함 전국 고등학교에 ‘고교학점제’가 도입된다. 직업계고등학교(직업계고)는 일찌감치 도입했고, 일반계고등학교(일반계고)는 고교학점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 고교학점제를 경험한 제주지역 고교 교사들은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제도가 안착하려면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융합과학연구원 제주교육정책연구센터가 지난 10일 발표한 ‘2023 하반기 교육정책 연구보고서’에는 고교학점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연구가 담겼다. ‘고교학점제의 교육과정 편성·운영 실태 분석’(연구자 문보경)은 제주 지역 일반계고 19곳에서 고교학점제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담당 교사와 면담을 통해 생생한 조언·숙제들을 담았다.

제주융합과학연구원 제주교육정책연구센터가 10일 발간한 '2023 하반기 교육정책 연구보고서' / 사진=제주융합과학연구원 누리집

고교학점제란?

초·중등교육법 제48조에 보면 고교학점제를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이수를 위한 학점제’로 설명한다. 여기에 ‘고교학점제를 운영하는 학교의 학생은 취득 학점 수 등이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한다’고 덧붙인다.

고교학점제의 목적 역시 ‘고등학교의 교과 및 교육과정은 학생이 개인적 필요·적성 및 능력에 따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해져야 한다’는 해당 법률에 근거한다.

교육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해 2021년부터 단계적으로 과정을 밟고 있다. 2025년부터 고등학생은 학년마다 192학점씩 이수해야 한다. 수업은 학교 지정과목과 학생 선택과목이 있으며 평가는 ‘성취평가제’로 운영한다. 

제주지역 일반계고 가운데 고교학점제 연구학교인 제주사대부고를 제외하면 모두 준비학교로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길게는 2018년부터 짧게는 2022년부터 고교학점제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며 2025년 전면 적용을 준비 중이다.

교육부는 교육부 나름대로 제도 도입과 지원에 나서는 한편, 제주도교육청 역시 지난해 3월 제주도의회와 함께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고교학점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으며, 여기에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를 설치·운영 중이다.

‘D-1년’인 올해는 ▲교과 순회교사 채용 ▲학부모 대상 고교학점제 교육 ▲고교학점제 도약지구 사업 지원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 직업계고는 보다 일찍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해부터 6개 특성화고에서 고교학점제를 운영 중이다. 일반계고 특성화과는 2025년 일정에 따라 전면 도입한다.

고교학점제 도입 일정. / 사진=제주융합과학연구원 누리집

“교사가 아닌 학생 중심”...교육과정 패러다임의 변화

연구진은 제주지역 일반계고 19곳이 고교학점제를 시범 운영한 내용을 분석하면서, 동시에 해당 학교 별 고교학점제 담당 부장교사 혹은 담당교사와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23곳 가운데 일반 학급이 2학급 이하인 학교와 IB교육과정 운영 학교를 제외하고 19곳으로 추렸다. 면담 대상은 동지역 30학급 이상·이하, 읍면 지역 학교까지 세 가지 특성으로 나뉘었다.

교사들이 느낀 고교학점제가 가져온 학교 현장의 변화는 네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학교 교육 과정에 다양한 주체의 참여 ▲교사의 교육과정에 대한 전문성과 책임감의 향상 ▲교사 다 과목 지도의 보편적 인식 ▲학생 진로 선택 시기의 조기화 등이다.

연구진은 “고교학점제는 기존 교사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에서 벗어나, 학생 중심 교육과정 운영이라는 교육과정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왔다”며 “학교의 교육과정을 교육과정 담당자만의 업무로 해석하기 보다는 교과협의회 단위의 협의 과정과 학교교육과정운영위원회, 전문적학습공동체와 같은 교육과정 워크숍, 고교학점제 연수 등을 통해 교육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문화가 형성됐다”고 면담 결과를 설명했다.

특히 “교사들은 교육과정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습득하게 됨은 물론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었다는 책임감으로 교육과정 운영에 내실을 가져오는 성과가 있었다”고 장점을 들었다.

대입, 진로 선택, 학교 규모...속속 나타나는 과제들

그러나 변화에 따른 어려운 점, 문제점, 과제 등이 더 많이 노출됐다.

연구진은 “학생 선택권의 확대가 최우선시되면서 마치 이에 따른 교사들의 다 과목 지도는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고 받아들여야 하는 풍토가 자리잡히게 됐다”면서 “다 과목 지도의 보편화에 따른 교사들의 피로감 누적과 수업에 대한 질 보장의 우려가 인식됐다”고 꼽았다.

특히 중학교 졸업 후 고교에 입학하자마자 6개월 안에 진로 관련 교과를 선택하는 과정은, 학생들에게도 교사에게도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지적이다.

학교가 어느 지역에 위치해 있는지에 따라 미묘한 차이도 발생했다. 동지역 학교, 그 중에서도 과학중점학교는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수학·과학 교과가 정해져 있기에, 필수 이수 체계에 따라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그렇기에 “고교학점제에 역행하고 학생들의 선택권에 제한이 있음에도 과학중점학교의 교육과정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대학 진학 결과가 좋기 때문에 인식을 바꾸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현실적인 분석이다.

대입에 대한 민감도는 동지역 학교가 더 높게 분석됐는데, 필연적으로 교과 편성 역시 입시에 맞춰 반응했다.

여기에 공립학교와 사립학교 간에 온도차도 확인됐다. “사립학교는 매년 학생 선택으로 전공 교사의 시수가 유동적인 고교학점제의 특징을 적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변화하는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의 대부분은 기간제 교사가 대체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짚었다.

읍면지역 학교는 ▲대입 준비학생 이외에 다양한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한 과목 편성 필요 인식 ▲소인수 과목(수강 인원이 적은 과목) 편성 확대 ▲소규모 학교는 현실적으로 교육과정의 다양화 포기 등이 나타났다.

이밖에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며 호응을 얻고 있는 공동교육과정, 공강 운영의 고민, 학교 별 자율적 교육과정 운영의 가능성 발견 등의 공통된 특징도 꼽힌다. 학교마다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교과의 내실화, 이와 동시에 다양화보다 심화과목 편성을 통한 내실화를 함께 고민하는 분위기 역시 감지된다. 

특히 제주도교육감이 승인한 고시 외 과목은 지난해 12월 기준 단 3개에 불과해 0개인 강원·세종의 뒤를 이은 전국 최하위였다. 연구진은 “아직 지역 실정을 반영한 고시 외 과목으로 개발하는데는 소극적”이라며 “타 지역의 과목명만을 가져오기보다는 제주지역의 특성과 학교 실정에 맞는 내용요소와 성취수준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면 도입 1년 남은 고교학점제, 시사점은?

연구진은 자료 분석, 면담 등을 바탕으로 제주지역 고교학점제 운영을 위한 시사점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먼저 “교육과정 변화에 따른 학교 전체의 변화를 연구·선도학교 업무 담당자들의 업무로 인식되는 것, 다 과목 지도 교사의 피로감과 수업의 질 보장의 어려움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교 1학년 학생들에게 너무 빨리 선택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교사들의 많은 우려가 있었다”며 “고교학점제에 대한 이해가 고교 교사 뿐만 아니라 중학교, 초등학교 교사 대상으로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읍면 지역 학교는 많은 환경적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고교학점제 지원센터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고교학점제 지원센터의 역량이 강화됨에 따라 읍면 지역 학교 역량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고교학점제 지원센터의 역할을 중요시했다.

여기에 “교사에 따라 공강, 집중이수제, 학교 자율적 교육과정 등에 대한 오해로 인해 활발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명확한 매뉴얼이 없거나 다양한 활용 사례가 공유되지 않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있다”면서 더 많은 고교학점제 운영 사례가 현장에 공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연구진은 “사립고 교사들은 공립고와 사립고의 교원 수급으로 인한 고교학점제 운영 차이를 사립고 고교학점제 운영의 한계로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설립 유형에 따른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운영 지원과 같은 운영 차이 극복을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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