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② 기메의 명칭과 성격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제주만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제주 무속’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무속에서 사용하는 ‘기메’는 종이 장식이나 신체 등 굿에서 쓰이는 종이 무구를 지칭한다. 종이 무구를 많이 사용하는 건 제주굿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의소리]는 권태효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민속학자 강소전이 집필한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전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종이 예술작품 기메의 매력을 재발견하면서, 제주굿의 가치도 널리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① 기메 조사의 필요성
② 기메의 명칭과 성격
③ 기메의 형태와 전승
④ 기메의 종류
⑤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제작 세계
⑥ 주요 기메의 제작 방법 및 과정
⑧ 제주굿과 기메의 활용과 실제
⑨ 기메와 신화(본풀이)의 연계 양상과 의미
⑩ 제주굿 기메의 가치와 활용


기메의 명칭과 범위

기메의 전체적인 면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메의 명칭과 범위에 대해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메라는 명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온전히 해명하지 못하였다. 기메의 범위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다소 모호한 점이 있었다. 사실 그동안 기메에 대한 연구가 별로 없었다.(앞서 밝힌 바 있듯이 기메와 관련한 대표적 연구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현용준, 「제주도 무의의 ‘기메’ 고 : 무속 신체형성의 일면」, 『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 집문당, 2002. 이 논문은 『문화인류학』 제2호(한국문화인류학회, 1969)에 발표되었던 것이다. / 강소전, 「제주도 굿의 무구(巫具) ‘기메’에 대한 고찰 :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기능보유자 김윤수 심방의 기메 제작사례를 중심으로」,『한국무속학』 제13집, 한국무속학회, 2006. / 국립문화재연구소,『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巫具 : 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 민속원, 2008. / 강소전, 『제주의 무구』, 제주대학교 박물관, 2014. 이 가운데 필자가 「제주도 굿의 무구(巫具) ‘기메’에 대한 고찰」(2006)이라는 논문과 『제주의 무구』(2014)라는 책에서 기메의 명칭, 범위, 성격, 기능, 전승, 기메 형태와 종류 등에 대해서 정리한 바 있다. 그런데 『제주의 무구』 같은 경우 해당 발간물이 관련 무구전시회의 도록 역할을 하였고, 지면에 제약이 있어 기메 관련 여러 사항에 대해 자세히 다루기 어려웠다. 이번 기회를 기메에 대해 다시 한 번 논의를 전개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는다.)

제주도 무속의 여타 분야에 견주어 기메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은 늦은 편이다. 명칭과 범위를 이해한 뒤에야 본격적인 양상을 살필 수 있겠다. 

① 기메 명칭

기메는 제주굿에서 주로 종이를 이용하여 만드는 무구를 두루 일러 부르는 명칭이다. 제주도의 굿판에는 제장 주위에 종이 장식물들을 걸어 놓는다. 가장 규모가 큰 ‘큰굿’일 경우에는 사방으로 다양한 장식물들이 있어 굿판의 분위기를 더욱 자아낸다. 그뿐만 아니라 굿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심방이 여러 종이류 무구들을 들고 깃발처럼 휘두르거나, 손에 들고 춤추거나, 등에 달아매거나, 얼굴에 가면처럼 쓰기도 한다. 종이류 무구 자체를 신체神體로 인식하기도 한다. 기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면 굿을 한층 의미 있게 느낄 수 있다.

기메의 대체적인 모양을 바탕으로 그동안 기메라는 명칭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현용준이 가장 먼저 명칭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는 ‘기메’는 ‘기’旗에서 온 말 같으나, ‘메’가 무엇인지는 미상未詳이라고 하였다.(현용준, 「제주도 무의의 ‘기메’고 : 무속 신체형성의 일면」, 『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 집문당, 2002, 178쪽.) 그러면서도 기메를 ‘귀매’鬼魅라고 표기한 적도 있었다.(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0, 49쪽, 261번 각주.) ‘기’인 경우 기旗와 귀鬼 가운데 고심하였던 것 같다. ‘메’인 경우에는 ‘메’와 ‘매’가 음상이 비슷하고 매魅가 마침 무속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말이라고 보아 그러한 해석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매魅라고 한다면 ‘기’도 귀鬼로 이해해 보고자 하였을 것이다. 근래 들어 기메에 대한 관심이 시작될 무렵 일부에서는 기메를 ‘기매’旗魅라고 한자로 표기하여 해석하였다.(제주신화미술제운영위원회, <제1회 제주신화미술제> 전시회 도록, 2005, 52쪽.) 현용준의 견해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기메라는 명칭은 ‘메’라는 제주방언의 쓰임새를 생각한다면 기旗의 형상을 한 사물을 뜻하는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강소전, 「제주도 굿의 무구(巫具) ‘기메’에 대한 고찰 :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기능보유자 김윤수 심방의 기메 제작사례를 중심으로」, 『한국무속학』제13집, 한국무속학회, 2006.) 제주도 무속에서 기메의 주된 모양이나 쓰임새를 보았을 때 ‘기’는 기旗로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개별 기메 가운데는 ‘―기’라고 부르는 것도 여러 종류이다. 그렇다면 ‘메’가 어떠한 말인가를 해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메가 제주굿의 용어이니 제주방언의 양상에서 도움을 얻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즉 제주방언에서 그림자를 뜻하는 ‘굴메’나 맵시라는 말인 ‘메치’ 등을 생각해 본다. 그림자나 맵시는 모두 일정한 형상을 나타낸다. 이처럼 일정한 형상을 나타내는 어휘에 ‘메’가 거듭 쓰였다. 그렇다면 기메 역시 기旗의 모양을 한 사물이라고 이해하기 충분하다. 제주굿에서 이 ‘메’와 관련한 어휘가 나타나는 사례도 살펴본다. ‘본메(본메본짱)’, ‘메치기상’, ‘메치메장’ 같은 사례들이다. ‘본메(본메본짱)’는 서사무가인 본풀이에서 신들이 서로 만나 알아보고 인정할 수 있도록 증거가 되는 사물을 뜻한다. ‘본메’는 심방의 조상이자 무구인 ‘멩두’를 제작할 때 본이 되는 ‘멩두’를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멩두’는 신칼, 산판(천문, 상잔, 산대), 요령을 말한다. 강소전, 「제주도 심방의 멩두 연구: 기원, 전승, 의례를 중심으로」, 제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참고.)

‘메치기상’과 ‘메치메장’은 각각 죽은 뱀의 모습을 그린 것과 익사하여 찾지 못하는 시체를 짚으로 꾸민 가시체를 뜻한다.(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신구문화사, 1980, 719쪽.)이들 무속 어휘들 모두 일정한 모양 혹은 형상을 의미하는 용례들이다. 일반적인 방언이나 무속 어휘 사례에서도 그 사용 양상이 다르지 않다.

한편 기메라는 명칭을 말할 때 흔히 ‘기메전지’라는 말도 자주 등장한다. 기메전지가 어떤 말인가에 대해 역시 현용준이 먼저 해석을 시도하였다.(현용준, 「제주도 무의의 ‘기메’고 : 무속 신체형성의 일면」, 178쪽.) 즉 ‘기메’와 ‘전지’의 복합어이며, 이때 ‘전지’는 ‘지전’紙錢이 음운도치로 변하였다고 보았다. 게다가 기메전지는 달리 ‘기메기전’이라고 부른다고도 하고, 여기에 보이는 ‘기전’도 지전으로 ‘지’가 ‘기’에 유추 동화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정리하면 기메전지 혹은 기메기전은 모두 기메와 지전을 함께 일러 부르는 명칭이라는 설명이다. 만약 그렇다면 기메전지는 기메와 지전이라는 서로 다른 유형의 종이 무구를 통칭하는 명칭이 될 것이다.(현용준, 「제주도 무의의 ‘기메’고 : 무속 신체형성의 일면」, 178쪽.)

기메전지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메전지를 기메와 지전의 복합물이라고 하는 기존 현용준의 해석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과연 음운현상이나 문법규칙에 따라 최종적으로 변화한 용어에 그치는 것인지 의문이다. 따라서 기메전지나 기메기전의 경우에도 제주도 무속 양상을 바탕으로 그 용어의 유래를 거듭 점검하는 일이 요구된다.

기메전지라는 용어는 제주굿에서 중층적인 의미를 간직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전지’는 전지全紙이거나 전지前紙일수도 있다. 전지全紙는 주로 종이를 오려 만드는 기메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전지全紙는 ‘자르지 않은 온장의 종이’이니 재료적 속성을 명칭에 부가한 것일 수 있다. 전지前紙는 기메의 설치 방법과 연결하여 추리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대부분 제장 장식용 기메는 사실 제장 전면에 달아매는 것이다. 특히 신들이 좌정한 곳의 앞을 가리고 주위를 장식하는 용도도 주로 쓰인다. 설치 양상을 따지면 전지前紙로도 충분히 인식될 표현이다.

기메전지는 제주굿 무가에서 기메의 명칭과 관련하여 빈번히 나타난다. 흔히 ‘기메전지 놀메전지’라고 하여 대구對句를 이루며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놀메’는 이제까지 흔히 기메에 맞춘 조운구調韻句로 해석하였다.(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436쪽.) 따라서 기메전지나 놀메전지나 같은 뜻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놀메’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는 필요하다. 제주방언의 쓰임새에서 기메와 관련지을 수 있는 ‘놀’은 ‘놀다’飛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 기旗의 모양을 한 기메가 여럿이고, 굿에서 심방이 이 기들을 들고 휘날리며 춤추기 때문이다. 즉 ‘놀메’는 휘날리는 기메의 모습에서 형성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기메기전’이라는 명칭은 사실 드물어 잘 듣기 어렵다. 현용준이 보고한 용례가 있기는 하다.(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 49쪽.) 하지만 거의 40년 전인 1984년에 이루어진 심방 집의 신굿 자료집에서도 그 용례를 찾기 어렵다.(국립무형유산원, 『제주도 동복신굿』, 국립무형유산원, 2019.) 그런데 이 신굿 자료집에서는 ‘기메지’라는 용어가 더러 나타난다. 기메가 주로 종이로 만들어졌으니 ‘기메+지紙’라는 말도 쓰는 것으로 보인다. 기메지는 주로 ‘당반지’라는 기메의 한 종류와 연동하여 언급되는 양상이다.(국립무형유산원, 『제주도 동복신굿』 1권, 224쪽과 225쪽 등을 참고할 수 있다.) 당반지와 음절을 맞추어 발화하였을 것이다.

김윤수 심방 제작 육고비(김윤수 심방 기메 전시회,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2005)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김윤수 심방 제작 육고비(김윤수 심방 기메 전시회, 제주칠머리당영등굿전수관, 2005)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② 기메 범위

기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범위를 적절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동안 기메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애매한 점이 없지 않았다. 종이로 주로 만들지만 종이 외에 다른 재료도 다양하게 쓰이고 그 모양도 한결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메의 범위를 규정지을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기메전지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기메와 지전의 관계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재료를 기준으로 하면 기메는 일단 종이로 만든 무구를 가리킨다. 종이는 주로 가위로 오려서 만드는 것이다. 때로 칼로 파서 만들 수도 있다. 종이만으로 완성되는 기메도 여럿이다. 그런데 기메의 재료는 종이가 중심이기는 하지만 종류에 따라 천류, 대나무, 현금 지폐 등 여러 재료가 함께 어우러져 완성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종이만으로도 완성되는 유형의 기메에 견주어, 이렇게 복합적인 완성체 자체도 역시 기메라 부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전자의 사례에 견인된다면 후자는 ‘기메+추가재료’이기 때문이다.(국립문화재연구소,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巫具 : 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 민속원, 2008, 370쪽.)

기메의 모양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점도 기메의 범위를 가늠하는 데 고려해야 한다. 기메라는 명칭을 생각한다면 자연히 기旗의 모양을 한 것이 중심이 된다. 기의 모양을 한 종류도 10여 가지가 넘어서 기메 명칭의 의미에 충실하다. 그런데 제주굿에서는 기의 모양을 하지 않은 종이류 무구도 기메로 인식하고 있다. 제장을 고정적으로 장식하는 용도이거나 제차를 진행할 때마다 소품 도구처럼 쓰는 다양한 종이류 무구도 통칭하여 기메라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인형이나 꽃 같은 모양이나 얼굴에 탈처럼 쓰는 모양의 것도 있다.

제주도 무속신앙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따라 논의를 종합해 보면, 제주굿에서 기메의 범위는 좁게는 주로 종이류를 이용하여 기旗의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용준은 이러한 기류 모양을 두고 ‘순수한 기메류’라고 분류한 바 있다.(현용준, 「제주도 무의의 ‘기메’고 : 무속 신체형성의 일면」, 178∼179) 이를 바탕으로 제장의 장식품이나 신체의 형상화와 관련한 것들도 주로 종이류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라면 역시 기메라고 확장하여 인식하고 있다고 하겠다. 결과적으로 기메의 범위는 기旗라는 모양보다는 종이라는 재료에 더욱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종이를 중심으로 하고 경우에 따라 몇 가지 부가적인 재료를 더해 심방이 굿판에서 직접 만드는 무구가 기메의 범위에 해당한다. 부가적인 재료가 있더라도 그 완성체 자체를 기메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한편 앞서 기메전지라는 명칭을 생각한다면 지전은 엄밀히 말해 기메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지전은 말 그대로 종이 돈이다. 굿판에서 신에게 바치는 ‘인정’으로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기메는 이 지전을 함께 덧붙여 그 모양을 완성하는 경우가 있다. 명칭 자체가 ‘―지전’이라고 하는 기메도 있다. 그러다 보니 기메와 한데 일러 지칭되고 다루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기메와 지전은 동일한 종이 무구이지만 엄밀하게는 구분해야 한다. 다만 일부 기메의 제작 과정에서 일정한 교집합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에 한정에서 다루기로 한다.

이밖에 큰대와 소지所志의 경우도 기메의 범위에서 살필 수 있다. 큰대는 큰굿에서 제장 밖에 세우는 대를 말한다. 큰대는 매우 복합적인 상징물의 총합이어서 그 자체를 기메라고 분류하기는 어렵다. 다만 큰대의 장식물 가운데 일부는 기메가 포함되고 있다. 소지 역시 기원사항을 담은 종이여서 기메와는 다르다. 그러나 기메에 따라서는 소지가 제작 과정에서 포함되거나, 또 나중에 기메로 쓰였던 종이를 소지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큰대와 소지 역시 기메와 관련될 경우에 함께 언급한다.

이 글에서 제주굿의 기메로 다루는 범위에 포함되는 개별 기메들은 모두 40여 개 종류 가까이에 이른다. 즉 살장, 첵지, 당반지, 솔전지, 발지전, 통기, 오방각기, 올레기, 큰대의 기메(번기, 어신기, 소통기, 기리여기, 줄전기), 삼불도송낙, 칠원성군송낙, 할마님 철쭉대, 시왕기, 멩감기, 대명왕처서기, 영게처서기, 영게기, 적베지, 돌레지, 성주기, 성주꼿, 칠성, 허멩이, 육고비, 청너울, 요왕선왕기, 영감 탈, 전상 탈, 조왕기, 칠성기, 마뒤기, 삼멩감송낙, 감상기, 영기, 몸기, 고리동반 너울지, 영집, 요왕 질대 등이다.(이 글의 후반부 <제주굿과 기메의활용 실제>의 ‘산신맞이와 기메’에서 언급하는 산신고비전, 산신기, 산신군병처서기 등의 기메도 있으나 일단 여기 목록에서는 제외한다. 이 기메들은 제주도 동남부 옛 정의현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기메로 알려졌는데, 추후 산신맞이라는 의례에 대한 자세한 고찰이 이루어지면 다시 다루기로 한다.)

기메의 성격과 기능

기메의 성격과 기능에 대해서 살피는 것은 제주굿에 왜 기메라는 종이류 무구가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즉 굿판에서 기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고, 또 굿판에서 기메가 어떠한 양상으로 활용되는지 알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기메가 무구의 한 종류로써 어떻게 제주굿의 특
징을 드러내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준다.

① 기메 성격

기메의 성격은 제장을 장식하는 측면과 신의 형상을 드러내는 측면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제장장식물祭場裝飾物이라는 성격이다. 후자는 신체상징물神體象徵物이라는 성격이다. 물론 제장장식물과 신체상징물이라는 두 성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굿의 각 절차를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데 보조도구로 꼭 필요한 기메가 더러 있기는 하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기메는 제장장식물과 신체상징물이라는 두 가지 성격적 특성을 보여준다.

제장장식물이라는 성격은 제장을 장식하는 데 기메를 두루 활용한다는 뜻이다. 제주굿의 제장은 마을 당굿일 경우에는 신당이고, 생업 공동체의 굿에서는 대개 일터이며, 개인의 집굿에서는 그야말로 거주하는 주택이다. 그런데 기메는 사실상 개인 집에서 굿을 할 때 주로 쓰는 무구이다. 물론 다른 굿판에서도 소수의 기메가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기메의 성격은 ‘ᄉᆞ가칩굿’이라 하는 사가私家의 굿에서 실질적으로 그 진면목을 드러낸다. 개인 집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굿에서 본격적으로 기메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제주굿에서는 굿의 규모에 따라 제장을 꾸미는 방식이 달라진다. 집굿에서 가장 규모를 크게 하여 벌이는 굿을 ‘큰굿’이라 한다. 큰굿의 제장 설립은 집의 마루에 ‘소당클’(사당클)을 설치하고, 집 바깥에는 ‘큰대’를 세우는 방식이다. ‘당클’은 제장 마루의 네 벽 상단에 선반을 달아매어 신들을 좌정시키는 곳이다. 큰굿에서는 거의 모든 기메가 사용되는데, 주로 이 당클을 중심으로 제장장식물 성격을 가지는 기메들이 설치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집안의 출입문과 창문, 바깥의 큰대와 대문에도 일부 기메들로 장식한다.

신체상징물이라는 성격은 신체를 상징하는 일정한 형상물로써 기메를 제작한다는 뜻이다. 제주굿에서는 신들이 모두 ‘일만팔천’에 이른다고 한다. 그 신들 가운데 인간의 삶에 일정한 영향을 준다고 여기는 일부의 신들을 위한 특정한 의례 절차가 만들어졌다. 해당하는 신들을 위한 절차에서 신의 형상을 표현하는 어떤 상징물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사실 대부분 기메들이 신체상징물 그 자체이거나 일부 연관성을 드러낼 정도이다.

기메의 신체상징물 성격은 해당 굿의 목적을 알려주는 지표이다. 어떤 굿을 하는가에 따라 필요한 기메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큰굿인 경우 종합의례이기 때문에 여러 유형의 신들에게 각각 기원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그 절차에 맞게 신체상징물로써 인식되는 기메가 필요하다. 만약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규모를 작게 하여 벌이는 ‘족은굿’이라면 그 목적에 맞는 신체상징물 기메만 있으면 된다. 해당 굿의 절차를 진행하면서 관련 신체상징물 기메를 적절히 활용하여 그 성격을 극대화한다.

기메의 성격은 제주도 서사무가 ‘본풀이’와 매우 밀접하다. 본풀이는 ‘본本을 푼다’는 뜻이다. 즉 신들의 내력을 풀이한다는 말이다. 제주도는 신화의 고장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도 여러 유형의 많은 본풀이가 전승되고 있다. 학계에서는 본풀이를 두고 ‘일반신본풀이’, ‘당신본풀이’, ‘조상신본풀이’ 등으로 일찍부터 구분한 바 있다. 기메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일반신본풀이라는 유형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반신본풀이는 개인의 집굿에서 주로 구연되는 것이고, 관련 제차를 시연하는 데 기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을 드러낸다. 제주의 본풀이는 기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풀이를 근원으로 삼아 기메를 인식하고 제작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제장장식용 성격의 기메들은 많은 신들이 좌정하는 굿판의 신성함을 한껏 돋우어 드높인다. 신체상징물 성격의 기메들은 대개 특정한 본풀이와 관련되어 해당 신의 모습을 제장에 극적으로 드러낸다. 제주도 무속신앙에서 본풀이를 인식하고 상상한 실체가 굿판의 기메로 대거 표현되는 것이다.

② 기메 기능

기메의 성격을 바탕으로 기메가 가지는 기능도 살필 수 있다. 기메의 기능을 제장 설립, 신격 좌정과 현현顯現, 제차 진행 도구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이러한 점들은 제주도 무속신앙의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곧 기메는 무속적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표
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기메의 제장장식물 성격은 곧 기메가 제장 설립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으로 작용한다. 기메는 굿의 규모가 크든 작든 일반적으로 제장을 설립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무구이다. 심방이 서서 춤추고 소미들이 무악기를 연주하는 ‘산굿’(선굿)이라면 최소한의 장식용 기메는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심방 일행은 굿판에 도착하면 제물 준비와 함께 가장 먼저 기메 제작을 시작한다. 제장 설립은 흔히 제주굿 무가에서 ‘제청설립’祭廳設立이라고 표현한다.(‘제청설립’이라는 말은 사가의 굿이 집안 마루(대청)에서 이루어지는 데 따른 것이다. 이 글에서는 굿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제장’이라고 통칭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사가의 굿판에서 주로 다양한 기메가 사용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당굿이나 생업의 일터에서 하는 굿에서도 일부 기메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치발입’旗幟拔立이라고 하여 깃발을 세워야 비로소 제장을 꾸미는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제장을 설립하는 기능은 일상생활이나 생업활동의 공간을 의례가 벌어지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의미를 나타낸다. 곧 속俗의 공간을 성聖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또한 태초의 ‘굿법’을 기억하며 비로소 굿을 할 만한 공간을 완성하는 일이다. 옛날 옛적 최초로 심방이 된 ‘유정승 따님아기’가 굿을 하러 갈 때 ‘기메선생 놀메선생 자리선생 당반선생’ 등이 함께 하여 제장을 설립하는 임무를 완수하였다.(국립무형유산원, 『제주도 동복신굿』 1권, 30쪽.) ‘기메선생 놀메선생’은 기메를 오리고, ‘자리선생’은 신자리를 펼치며, ‘당반선생’은 당반堂盤 즉 당클을 매어 신들의 좌정처를 마련한 것이다. 제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이러한 신들의 내력을 통하여 신성을 획득한다.

기메의 신체상징물 성격은 기메를 통하여 신의 좌정을 이끌고 신의 현현을 증명하는 기능을 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신체를 상징하는 기메는 곧 신 그 자체이다. 물론 그 모양은 사람 형상과 비슷한 것도 있고, 다소 추상적인 모양일 수도 있다. 기메에 따라 직접적으로 신체를 상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신체와 관련한 요소가 포함되는 것이 많다. 굿판의 단골 신앙민들은 신체상징물 기메를 통하여 신들의 모습을 매우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기메의 시각적 모양은 굿판의 참석자들을 굿에 몰입하게 만든다.

신격 좌정과 현현을 기메가 감당하게 된 사정은 제주도 무속 전통의 경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제주도 무속에는 사실상 무신도巫神圖가 없다. 집굿에서든 당굿에서든 무속의 여러 신들을 형상화하는 시각적인 회화류가 일반적이지 않다. 물론 제주도에서 신당과 관련해서 2개의
무신도가 파악되기는 하였다.(제주시 용담동의 옛 ‘내왓당’이나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의 본향당과 관련하여 당신을 형상화 한 무신도가 존재한다. 이외에 제주도 당신앙에서 다른 사례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전체적인 당신앙 양상을 생각하면 이 무신도들도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가 하면 심방들이 갖추어 입는 무복의 종류도 다양하지 못하다. 신격의 좌정과 현현을 매 절차마다 무복을 바꾸어 드러내지 않는다. 일부 제차의 경우 무복 차림에 약간 변화를 주어 신의 현현을 표현하는 모습이 있지만, 제주굿 전반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이를테면 당신을 청하는 ‘본향듦’ 제차를 사례로 들 수 있다. 심방이 ‘퀘지’(쾌자) 차림의 무복을 한 가운데 왼팔에 ‘풀찌거리’라는 완장을 차고 상체에는 ‘동저치’라는 물색을 둘러매는 것이다. 여기에 ‘감상기’라는 기메와 ‘신칼’을 이용하여 활로 화살을 쏘는 시늉을 한다. 이러한 행색을 갖추면 본향당신이 제장에 들어오는 것으로 인식한다.)

무구로써 기메의 현실적인 기능은 결국 굿의 제차를 진행하는 데 일정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제장장식물이거나 신체상징물이거나 혹은 이 둘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기메라 하더라도 관련 굿 제차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한 도구로 쓰인다. 해당 제차에 맞게 관련 기메를 분별하고 하나하나를 적절히 사용해야만 굿의 의미를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심방은 각 기메의 의미와 쓰임새에 대해 잘 알아야 만 굿판에서 비로소 맡은 소임을 다할 수 있다.

기메의 기능 역시 대체적으로 본풀이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기메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제주도 무속의 대표적인 무구인 ‘멩두’와 ‘연물’도 그 근원을 <초공본풀이>라는 본풀이에 두고 있다. 멩두는 심방의 무업 조상으로 인식되는 무구이며 ‘신칼’, ‘산판’, ‘요령’을 일컫는다. 연물은 무악기이며 ‘북’, ‘설쒜’, ‘대양’, ‘장구’ 등이다. 멩두와 연물 모두 그 유래가 <초공본풀이>에 드러난다. 기메를 포함한 여러 무구들이 서사무가 본풀이와 이렇게 특별한 관계를 보이는 양상은 제주굿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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