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61) 노루도 본래 있던 장소에 들어가면 죽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노리 : 노루
* 본 바둑 : 원 바닥, 원래 있던 곳
* 들민 : 들면, 들어가면

노루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좀처럼 떠나려 않는다고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노루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좀처럼 떠나려 않는다고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노루는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좀처럼 떠나려 않는다고 한다. 애초의 서식처를 영역, 즉 생활권으로 여기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사냥꾼에게 먼 곳으로 쫓겼다가도 이내 본래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밤낮 산에 사는 사냥꾼이 노루의 그 습성을 모를 턱이 없다. 노루가 돌아오는 길목을 지켰다가 잡히게 된다. 마치 연어가 떼지어 모천회귀하기 위해 굽이쳐 흐르는 태화강 가, 목을 지켜섰다가 포식하는 곰의 사냥 방식과 흡사하다.

사람에게도 이사했다가 다시 살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기시하는 오랜 풍습이 있다. 그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살던 집에 다시 들어갔다가 우연찮게 나쁜 일이 겹쳤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게 한낱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애써 믿으려 한다. 

경험칙도 한 몫 할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좋은 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노리도 본 바둑에 들민 죽나.’

결국, 사냥꾼과 노루, 둘의 지혜 다툼이다. 산등성이를 쏜살같이 뛰어오를 땐 천하무적인데, 사람에겐 목숨을 내놓고 만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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