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63) 남이 놓은 것은 소도 못 찾는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놈 : 남, 타인
* 논 건 : 놓은 건, 놓은 것은
* 쉐 : 소(牛)

설령 그게 집에서 기르는 몸집이 큰 소라 할지라도 남(가족 중 한 사람)이 끌고 가서 야산의 어느 풀밭에 방목해 놓으면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 사진=픽사베이
설령 그게 집에서 기르는 몸집이 큰 소라 할지라도 남(가족 중 한 사람)이 끌고 가서 야산의 어느 풀밭에 방목해 놓으면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 사진=픽사베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남이 놓아둔 물건을 찾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자기 자신이 놓아두고도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이곳저곳을 뒤적이는데. 하물며 남이 놓아둔 물건이 어디 있는지 그 행방을 알 방법이 있겠는가.

바늘 같은 작은 물건은 말할 것 없고, 큰 그릇이나 행장 따위도 어디 놓아두었는지 감감할 때가 적지 않다.

설령 그게 집에서 기르는 몸집이 큰 소라 할지라도 남(가족 중 한 사람)이 끌고 가서 야산의 어느 풀밭에 방목해 놓으면 찾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하물며 소는 눈에 잘 띌 것 같지만, 느리지만 풀이 좋은 곳으로 이동하는 짐승이라 더욱 찾기가 어렵다.

아이를 여럿 키우다 보면 눈치 빠른 녀석이 있어 놀랄 때가 있다. 서너 살밖에 안된 녀석이 동전이 굴러 들어간 방구석을 가리키면서, “엄마, 여기 있어요” 하는 게 아닌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동전이 굴러들어가는 걸 보았을 것인데, 이처럼 오관(五官)이 민감하게 발달한 아이가 있기도 한다. 커가며 유난히 눈빛 형형(炯炯)한 아이.

‘놈 논 걸’ 못 찾는다고 건망증이 아닌가 해 가슴 쓸어내리다가 치매가 아닌가 하고 낙망할 것은 결코 아니다. 찾고 있는 게 ‘남이 놓은’ 것이 아닌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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