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93) 사랑의 노동,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반비, 2022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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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이라는 의미로 ‘활동적 삶(vita activa)’이라는 용어를 들면서, 그에 속하는 것으로 ‘노동’, ‘작업’, ‘행위’를 제시하고 있다. 노동은 인간의 생명 유지와 관련된 필수적인 것들을 생산해 내는 활동으로 일상적이고 반복적이며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하다. 작업은 건축이나 예술 작품 같은 물건이나 구조물을 통해 물리적 세계에 영구적인 형태를 만들어 내는 활동으로 필수품보다 오래 지속하는 것을 제작하면서 인공적인 세계를 산출하게 된다. 행위는 노동이나 작업과는 달리 물질적인 매개 없이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는 것으로 언어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설득함으로써 공적 세계를 구축하는 정치적 활동을 뜻한다. 시간의 차원에서 볼 때 노동은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소모되는 것을 생산하는 반면, 작업과 행위는 인간의 필멸성을 넘어서서 오랜 기간 지속하는 것을 산출하여 세계의 영속성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노동이 필연성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과 달리 작업은 유용성의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행위는 노동이나 작업과 달리 물질적 매개 없이 인간에 의해 직접 수행된다는 점에서 자유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렌트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바로 행위의 영역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폴리스에서 자유 시민들이 공적인 논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것처럼 복수적으로 세계에 거주하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참여하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의 미래를 결정하는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아렌트의 관점에서 보면 행위나 작업에 비해 노동은 인간의 더 높은 정신적, 정치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활동이다. 노동은 주로 필수적인 생존을 위한 활동이므로 인간의 창의성이나 자유, 정치적 행위와 같은 고차원의 활동을 실현하는 데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로서의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와 필요에 종속되어 있다면, 제작하는 존재 혹은 정치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이를 뛰어넘어 자유와 창의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 책 『사랑의 노동』을 통해 돌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아렌트가 이야기한 노동, 작업, 행위의 활동적 삶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 같다.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생존을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돌봄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돌봄은 매 순간 닥치는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창의적인 활동이라는 점에서 반복적인 노동과는 다른 작업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돌봄은 말과 몸짓, 접촉을 통한 상호 작용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활동이며, 돌봄을 둘러싼 각종 현실적 제약을 극복하고 좋은 돌봄을 추구하는 것은 정치적 활동이기도 하다. 돌봄에는 공감, 친절, 긍휼, 동정, 의존, 고통 등 인간 실존과 관련된 다양한 특성이 노정되어 있다. 노동, 작업, 행위는 돌봄이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을 통해서 서로 포개지고 밀접하게 연결된다. 

저자는 영국의 요양 시설, 진료소, 병원, 가정, 시민 단체, 방문 간병 회사, 호스피스 병동을 훑어가면서 돌봄의 풍경이 얼마나 스산해졌는지, 돌보고 돌봄을 받는 이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먼 나라의 풍경임에도 돌봄을 둘러싼 한국의 지형도와 그대로 포개지는 건 우리의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돌봄 위기는 점점 더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노인 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돌봄에 대한 수요가 많이 증가하였다. 길어진 수명만큼 취약해진 노인 인구가 많아지고 이들을 돌보기 위한 자원 역시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질병 양상의 변화와 함께 당뇨, 치매 같은 만성질환이 많아진 것도 돌봄의 수요를 증가시킨다. 전통적으로 이런 취약한 이들은 가족이 돌봄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었다. 하지만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다시 1인 가족으로 가족 구조가 점차 변하면서 전통 시대에서 행해졌던 가족 간 돌봄은 거의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게다가 가족 내에서 돌봄을 담당하던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일과 가정을 모두 챙겨야 하는 여성에게 돌봄의 부담은 가중되었지만, 사회적 지원은 더디기만 했고 그만큼 돌봄 위기는 심화하였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이다. 돌봄은 취약한 인간을 어엿한 주체로 설 수 있게 해주는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이자 가장 가치 있는 행위이다. 하지만 돌봄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

저자는 돌봄 노동이 지속해서 비가시화되고 가치 절하되고 있음을 통렬하게 보여준다. 영국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긴축 정책의 여파로 공공부문에 대한 예산 삭감이 진행되면서 사회적 돌봄은 직격탄을 맞았다 (2010년에서 2018년 사이에 사회적 돌봄 예산은 8퍼센트나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당국은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더욱 엄격하게 했고, 돌봄 서비스 업체에 지원하는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 결과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간병인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도 만성적인 저임금과 불안정성에 노출되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돌봄 위기로 이어졌다.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아서 주변인들에게 돌봄 노동에 종사한다고 말하면 측은해하거나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상처받는 일도 적지 않다.  

한편, 돌봄의 시장화 혹은 상품화 역시 돌봄 위기를 심화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초창기 산업 자본주의가 여성의 돌봄 노동을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국한하고 노동 시장에서 배제하여 비가시화했다면, 현재의 금융 자본주의는 돌봄을 시장 영역에 적극적으로 편입하여 상품화하고 있다. 돌봄 서비스에는 가격이 매겨지고 돌봄 업무는 표준화하고 최적화되어 갔다. 돌봄 시설인 요양원은 부동산 자산이 되어 돈을 빌리는 데 담보로 사용되고, 이것은 요양 서비스의 운영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돌봄이 상품화되면 돌봄의 질을 높이는 것에 관심을 쏟기보다는 최소한의 돌봄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뽑아내는 것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돌봄 노동의 본질에 놓여 있는 돌보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의 관계를 훼손하면서 돌봄 위기를 가속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돌봄의 기술화를 통해 돌봄 위기를 극복하려고 한다. 인공 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이 돌봄에 극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노인 돌봄을 위해 개발된 원격의료 앱이라던가 가정 내 간병에 활용되는 로봇을 예로 들 수 있다. 일부 전문가는 향후 15년 사이에 로봇이 신체적 밀착이 필요한 돌봄 활동을 대체할 것으로 예측한다(389쪽). 하지만 돌봄의 기술화가 장밋빛 전망만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돌봄에 필요한 공감이나 이해 같은 인간 고유의 속성은 인공 지능이나 로봇이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강하게 일고 있다. 돌봄 노동의 효율화는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의 돌봄 위기에 내재해 있는 관계성의 상실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극복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돌봄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환자나 노인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관계를 쌓아나갈 수 없는 돌봄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이든 한국이든 만연해 있는 돌봄의 가치 절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돌봄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끌어내려면 결국은 돌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인식 전환만이 답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간을 자율적이고 자기 충족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돌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활동임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의 본질과 의미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책에 소개된 ‘유지의 예술’이라는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 1969년, 미얼 래더먼 유켈리스라는 미술가는 「유지의 예술」이라는 선언문과 함께 「돌봄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관한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유켈리스는 청소, 빨래, 기저귀 갈기 등 날마다 하는 돌봄의 허드렛일을 ‘유지의 예술’이라고 칭하면서 이를 가시화하는 전시회를 열고자 했다. 유켈리스는 날마다 갤러리에 가서 바닥을 쓸고 벽을 닦고 먼지를 털고 요리를 하는 등 일상적으로 집에서 하는 모든 일을 전시회에서 그대로 재현하였다고 한다. 돌봄의 속성이 ‘유지’인 이유는 우선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인 인간의 생물학적 생명과 사회적 삶을 지속하기 위해 돌봄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의 돌봄은 효율성과 공감, 일상과 비일상,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과 임기응변으로 해야 하는 일처럼 서로 정반대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통합하고 그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돌봄이 ‘예술’인 이유는 그것이 반복적이고 단순한 노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성과 지혜가 있어야 하는 예술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전쟁처럼 치러지는 돌봄의 일상에는 순간적인 기지와 창의성이 요구되는 경우가 넘쳐난다. 돌봄은 결코 표준화될 수 없으며 매 순간이 도전과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창조적인 활동이다.    

또한 돌봄은 누구나 아무런 준비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삶에 대한 암묵적 지식과 지혜가 녹아들어 있는 전문적인 활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돌봄은 한 인간의 고통과 취약성, 의존성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일이다. 돌봄은 타인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귀 기울이면서 타인을 면밀히 살피는 일이다. 따라서 그것은 끝없이 반복적이고 고단한 일인 동시에 인간의 실존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성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돌보는 이로 하여금 타인의 존엄을 지키고 자신의 인간성을 고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돌보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돌봄의 의미를 깨우치고자 노력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다.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어느 젊은 의료보조사의 이야기는 돌봄의 본질과 의미를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고통을 겪고, 그 고통에 마음을 여는 것은 곧 모든 인간에게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모든 사람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말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아픈 사람에게도 말이에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많은 환자의 뒤를 닦아주었는데, 그러한 친밀함은 인간의 조건이 얼마나 바스라지기 쉽고 약한 것인지, 인간 조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등을 상기시켜줍니다. 이 일은 제게 그런 면들을 인식하게 해주는 여정이었어요.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데서 그것의 핵심에 뛰어드는 데로, 그리고 다시 제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 그 경험을 통합하는 데로 이동한 것이지요. 극히 취약한 상태의 사람을 돌보는 것은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경험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모든 사람에게서 그 취약성을 봅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20년 뒤의 그를 상상할 수 있어요. 몸을 씻고 용변을 보는 것 같은 가장 기초적인 일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지라는 것을요. 그 일은 제가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 저는 젊음과 건강을 찰나적인 것으로 봅니다.”(93쪽) 

이 책을 덮으면서 분명히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내가 몸담은 의료 역시 돌봄 체계의 하나라는 것과 내가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는 의료인문학은 결국 좋은 돌봄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것 말이다. 돌봄은 그렇게 사랑의 노동이자 작업이자 행위가 된다. 


# 황임경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교실 박사. 의철학, 의료인문학, 서사의학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의학과 인문학의 경계 넘기》, 《팬데믹, 모빌리티, 테크놀로지》(공저), 《Body Talk in the Medical Humanities: Whose Language?》(공저), 《21세기 청소년 인문학 2》(공저), 《의학의 전환과 근대병원의 탄생》(공저), 《내러티브 연구의 현황과 전망》(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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