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다라 칼럼] (2)글로컬 대학의 지산학 혁신 모델 / 김동원

지방대학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세 속에 수도권 대학 진학 집중화가 가중되면서 지방대학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역대 정부와 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방대학 육성 정책들은 계속 발표되고 있으나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거점 국립대학교인 제주대학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역 인재가 지역에서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대학과 지자체가 함께 지역상생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기도 하다. [제주의소리]는 지방 및 지방대학이 처한 현실과 위기 대응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지방대학을 살리는 길이 곧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는 인식 아래 핵심 주체인 제주대학교와 지혜를 모아보는 공간을 마련했다. 제주대학교 정책자문기구인 ‘한림원’ 소속 9명의 명사가 대학과 지역사회에 전하는 칼럼을 릴레이로 싣는다. 학령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대전환 등 급변하는 고등교육 생태계 변화에 대처하고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학 혁신 방안과 정책을 제언하게 된다. 엄숙하고 날카로운 고담준론(高談峻論)의 칼럼, 이름하여 [인다라 칼럼]이다. ‘인다라’는 제주대학교가 자리한 ‘아라동’의 옛 지명에서 따왔다. / 편집자 주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과 동독으로 양분된 독일은 1990년에 이르러서야 통일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부터 근대적인 대학을 발전시킨 독일은 자동차와 정밀기계 산업 분야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동독 지역에 속한 작센 주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항공,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은 첨단 기업을 보유한 지역으로 알려진다. 동독에 속했던 작센 주가 크게 성장한 것은 독일의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의미 있다. 필자는 지난해 독일 작센 주에 속한 드레스덴 대학(TU-Dresden)에 체류하면서 독일의 지산학 협력 체계를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공학한림원의 정책연구 지원을 받아 독일의 지자체와 대학, 연구소, 그리고 지역 기업 간 상호 협력 체계를 살펴봤다. 작센 주의 지산학협력 체계는 통일 후 독일의 지역혁신 배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EU는 국가 간 균형발전에 많은 재원을 배분하고, 자치분권이 발달한 독일 연방은 주별, 지역별 균형발전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각 주들 또한 주에 속한 여러 핵심 도시들이 특화된 균형발전을 하도록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라 주 정부와 기초 지자체들은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지역산업에 적합한 신기술을 개발하고 첨단 신산업을 육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대학과 연구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된다. 교수와 연구원은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독일 사회가 신뢰를 기반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데에 있다. 독일 공무원과 교수들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는 동료나 이웃에게는 거리낌 없이 충고를 하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둘째, 미국에서는 재원을 기반으로 교수 연구나 교육 경쟁력을 확보하는 반면, 독일은 한 분야에 축적된 지식의 결실이 경제 및 사회 발전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정부나 기초지자체는 대학 교수들의 겸직을 최대한 허용하고 있다. 참고로 드레스덴 대학 교수들은 작센 주와 드레스덴 시의 60여 곳 이상 기관에서 장이나 부서장을 겸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소는 대부분 대학 캠퍼스 안이나 바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막스 프랑크, 프라운 호퍼를 비롯한 20여개 이상 국책 연구기관에 드레스덴 대학의 교수들이 기관장으로 겸직하는 건 일상이다. 이들은 연임되는 경우도 많아 축적된 지식과 노하우를 활용해 기관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즉, 지역사회와 대학이 축적된 지식과 신뢰를 기반으로 강하게 결합되어 사회발전과 경제발전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셋째, 독일은 중소기업을 정할 때 매출액에 관계없이 고용인원 500인 이하 기업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준으로 매출액 150억원을 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중소기업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규정은 유한회사 기반의 가족기업 육성을 용이하게 한다. 독일 내 중소기업의 60% 이상이 가족기업 중심 미텔슈탄트다. 따라서 이공계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연구자들은 신기술 기반 창업을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꿈을 갖고 있다. 가족 중심 미텔슈탄트와 히든 챔피언를 창업하는 게 삶의 목표다. 따라서 창업 초기에는 신기술 개발을 통해 혁신 제품이나 공정기술을 개발하는데 집중한다. 우리보다 5년 이하 스타트업 생존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다.

넷째, 독일은 대기업 보다 혁신적인 강소기업이 훨씬 많다. 이들 강소기업은 산업 섹터별 클러스터를 형성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 이를 위해 클러스터 관리조직의 기능을 극대화 한다. 예를 들면, 드레스덴 시에서는 ‘실리콘색소니’라는 공익 조합이 역내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들이 강소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의 혁신을 유도한다. 필자가 지난해 참가한 복합소재 클러스터(CU) 회원사 미팅은 해당 분야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 교류의 장이다. 한편, 이들 산업 클러스터는 대학 졸업생 취업에도 적극적이다. 효과적인 전문인력의 매칭은 관련 산업의 발전을 획기적으로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원 전 전북대학교 총장

교육부는 올해 1월, 앞으로 5년 동안 비수도권 대학에 약 1000억원을 지원하는 2024년도 글로컬 대학 지정계획을 발표했다. 글로컬 대학은 담대한 혁신으로 지역의 산업·사회 연계 특화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지역혁신을 선도하는 대학이다. 글로컬 대학 정책이 중요한 것은 대규모 예산 지원과 함께, RISE를 중심으로 하는 지산학 협력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구조개혁을 포함해 효과적인 지산학 협력 체계 도입을 중요한 평가 요인으로 삼고 있기에, 광역 및 기초 지자체들도 큰 관심과 함께 도전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세계 대학평가에서 100위권 내 국내 대학은 극소수다. 대학 구조개혁 및 체질 개선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이다. 막대한 재원을 쏟아 붓는 글로컬 대학 정책이 성공하려면 선진 지역과 대학을 철저히 벤치마킹해 우리만의 고유한 지산학 혁신 모델을 정착시켜야 한다. 물론 글로컬 대학을 향한 대학의 자율성과 혁신의지은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더불어 지자체의 지속적인 지원과 혁신 의지는 핵심적인 성공요인이 될 것이다. / 김동원 전 전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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