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자석과 돌궐 석인상] ③ 맺는말-제주의 석인상

국립제주박물관이 2월 18일까지 기획전 ‘제주 동자석’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뿐만 아니라 몽골-돌궐 시대 석인상과 비교해 동자석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국립청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을 지낸 민병훈 연구자가 ‘제주 동자석과 돌궐 석인상’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① 머리말, 몽골, 그리고 돌궐
② 돌궐, 몽골 석인상의 특징
③ 맺는말-제주의 석인상


7. 맺는말 -제주의 석인상, 童子石

필자의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제주의 석인상에 동자석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아마도 그 크기가 아담하고 형상 또한 후두부로 길게 늘어뜨린 댕기머리가 불교의 동자상과 유사한 점에서 비롯된 듯하다.

그런데 제주 동자석의 외형상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인 가슴 앞에 든 잔 모양의 용기 모습이나 뒤로 땋아 내린 변발의 모습으로 보아 이는 몽골 지배시기에 들어온 유라시아 초원의 석인상의 영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그리고 망자가 잠든 묘역의 수호신으로서 남측 방향 양측에 서 있는 것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몽골제국 시대에 있어서도 무덤을 수호하는 무사상으로서의 강건한 모습의 돌궐 석인상은 초원 석인상의 대표적인 이미지로서 계승되어 왔으며, 그러한 석인상의 개념이 제주의 석인상 조성에도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몽골의 고려침입과 일본 정벌을 추진하던 시기에 군마(軍馬)를 보급하는 지역으로서 중시되었던 제주에 몽골 관료가 파견되어 있었고, 그들의 상장의례에 있어서도 몽골의 초원지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돌궐 양식의 석인상이 지니는 강건한 무사상의 이미지가 전통으로서 유지되고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편 국립제주박물관의 정원에 상설 전시되어 있는 故 이건희 기증 석인상 가운데에는 상술한 바와 같은 돌궐풍의 입상(立像) 석인(石人) 뿐만 아니라 의자에 앉아 있는 좌상(坐像) 형태의 석인상도 확인할 수 있어 특이함을 더하고 있다. 이는 당시 제주에 도래하였던 몽골인에 의해 동(東)몽골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양식의 석인상 문화도 아울러 소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몽골 석인상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둥근 모자 형태가 제주 동자석에서도 드물게 확인되고 있으며, 이어서 돌하르방에도 나타나는 것 역시 이러한 시대적 정황을 말해주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의 정원에 상설전시되어 있는 故 이건희 회장 기증 제주 坐像 동자석(2023.11.05) / 이하 사진=민병훈<br>
국립제주박물관의 정원에 상설전시되어 있는 故 이건희 회장 기증 제주 坐像 동자석(2023.11.05) / 이하 사진=민병훈
제주 동자석과 돌하르방의 접점에 해당하는 독특한 형상의 석인상(동화마을, 2024.02.02)<br>
제주 동자석과 돌하르방의 접점에 해당하는 독특한 형상의 석인상(동화마을, 2024.02.02)

그리고 제주 동자석에 돌궐제국 이래 몽골지방에 전래되어 토착화 한 묘역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다면, 묘역의 주위에 사각의 형태로 나지막하게 돌담을 쌓아 놓은 소위 산담의 기원 역시 돌궐의 묘제가 몽골을 통해 전래되어 제주 지방 특유의 석재와 자연환경에 어울리게 토착화한 것으로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즉 제주의 산담은 말(馬) 등의 동물이 묘역을 어지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라기보다 망자가 잠든 묘역의 성역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 제주 분묘의 산담(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br>
조선시대 제주 분묘의 산담(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
산담의 구조(가장 가까운 위로 제주 동자석, 그리고 영월 나한상. 국립제주박물관, 2023)<br>
산담의 구조(가장 가까운 위로 제주 동자석, 그리고 영월 나한상. 국립제주박물관, 2023)

그렇지만 제주의 석인상은 국립제주박물관의 특별전시실이나 정원의 이건희 기증 석인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특히 재질의 차이에 의해 무사상으로서의 위용보다는 망자를 따뜻하게 보살피는 동자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표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실내 공간에 전시되어 있는 동자석은 초원지대에서 주위를 노려보고 있는 용맹한 형상의 무사상으로서의 이미지와 좀처럼 연결되지 않는다.

제주 동자석에는 문화의 전파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역적 변용의 현상 또한 매우 뚜렷하게 표출되어 있다. 특히 가슴 앞에 쥐고 있는 용기(容器)와 창, 새 그리고 두발 양식 등은 돌궐 석인상의 본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지만, 홀이나 연화(蓮花)를 들고 있는 듯한 모습,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모습 그리고 달과 해를 묘사하여 망자의 영생과 풍요를 기원하는 듯한 형상은 몽골이나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는 확인할 수 없는 제주 지역 특유의 지역문화라고 할 수 있다. 

가슴 앞에 잔을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2.15)<br>
가슴 앞에 잔을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2.15)
가슴 앞에 창을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2.15)<br>
가슴 앞에 창을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2.15)
가슴 앞에 새를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2023.11.03)<br>
가슴 앞에 새를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2023.11.03)
가슴 앞에 홀을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1.03)<br>
가슴 앞에 홀을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1.03)
가슴 앞에 연화를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1.03)<br>
가슴 앞에 연화를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1.03)
국립제주박물관의 특별전에 전시중인 특이한 형태의 제주 동자석(2023.11.03)<br>
국립제주박물관의 특별전에 전시중인 특이한 형태의 제주 동자석(2023.11.03)
가슴 앞에 아이를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2.15)<br>
가슴 앞에 아이를 들고 있는 제주 동자석(국립제주박물관, 2023.12.15)

이들 제주의 동자석에서만 확인되는 도상 가운데 특히 가장 많은 사례가 알려져 있는 꽃을 들고 있는 모습은 재래의 정토신앙과의 관련성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서 매우 흥미롭다. 이 도상은 동자석에 따라 꽃모양이 확실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돌궐 석인상이 잔을 들고 있는 모습처럼,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꽃을 들고 있는 형상이며, 꽃줄기와 꽃봉오리가 마치 주걱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는 망자가 극락에서 연화화생(蓮花化生)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제주 동자석의 토착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지역적 문화변용의 사례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러한 도상의 동자석은 상술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의 동자석과 더불어 그 눈매가 마치 망자를 위로하거나 영생을 기원하는 간절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즉 동자석의 기원을 돌궐에서 비롯된 초원의 석인상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제주에 전래된 후 시작 단계에서는 잔이나 창을 지닌 모습으로서 망자를 수호하는 모습으로 표출되었겠지만, 점차 토착문화와의 습합(習合)을 통해 정토신앙이나 도교의 기자신앙 등과 접목됨으로써, 지역적 특색이 가미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양식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주의 돌하르방과 동자석은 제주를 상징하는 문화적 상징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그 조사 연구성과는 아직 영세한 단계에 머물러 있다. 

중국이나 한국에는 근대 이전의 상장(喪葬) 문화에 망자의 상(像)을 조각으로 형상화하는 전통이나 풍습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외래 문화가 언제 어떻게 유입되어 형성되었는지 그 편년의 문제를 비롯하여 가장 기초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주문화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나타나는 외래문화의 수용과 변용의 과정을 보다 면밀하게 범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그 문화가 어떻게 토착화하여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로 뿌리를 내렸는지 비교 연구해야 할 시점이다. [끝]


민병훈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국립청주박물관 관장,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 한국중앙아시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초원과 오아시스 문화, 중앙아시아』 (통천문화사, 2005), 『실크로드와 경주』 (통천문화사, 2014), 『유라시아의 십이지 문화』 (진인진, 2019), 공저 『실크로드와 한국문화』 (소나무, 2000), 번역서로는 長澤和俊著 『東西文化의 交流』(1991), 나가사와 가즈토시著 『돈황의 역사와 문화』(2010), V.I. 사리아니디著 『박트리아의 黃金秘寶』(2016) 등 중앙아시아사와 실크로드 문화 교류사에 관한 논고 50여 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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