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51) 돌봄과 교육 사이에서 사라진 마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잘 알려진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한 아이가 자라는 데 학교만이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늘봄학교’는 아이들을 학교로 고립시키고 있는 것으로 비쳐 우려스럽다. 

어제 오전 경기 하남시 신우초등학교에서 ‘따뜻한 돌봄과 교육이 있는 늘봄학교’를 주제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늘봄학교를 올해부터 전국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해 누구나 이런 기쁨과 기회를 다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육의 중심은 공교육이 돼야 하고, 공교육의 중심은 결국 학교여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힘주어 말하는 늘봄학교 추진과정에는 마을도 아이들도 교육도 보이지 않는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을 다닐 때 수업시간이 끝나도 5시까지는 아이들을 보살펴줬다.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면 마지막까지 남겨지는 아이는 불안해보였다. 부모님이 오길 기다리며 창문에 매달려있다시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유치원의 돌봄이 부모 입장에서는 안심이 되면서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떤 낙인처럼 보여 마음이 아팠다. 정부가 추진하는 늘봄학교에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말처럼 부모는 어쩌면 안심이 될지도 모른다.(단언컨대 어떤 부모도 6살 아이를 13시간 동안 학교에 두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깜깜한 밤까지 학교에 남겨진 6살 아이를 생각하면 그 아이는 기쁨과 기회를 다 누리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럼, 이렇게 물을 것이다. 학원 차로 뺑뺑이 돌리거나 맞벌이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느냐고. 6살 아이 입장에서 학원 차로 뺑뺑이를 도는 것과 학교 교실에 두어 명이 남아있는 것이 그렇게 큰 차이가 날까? 경제적 부담이 없다면 부모 입장에서 학원과 학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공공이 주는 신뢰가 가장 큰 차이겠지만, 교육에서만은 질 좋은 교육을 찾아 사교육 현장을 헤매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공교육의 강점은 희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공교육 정상화의 귀착점이 돌봄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대통령의 말마따나 교육이 중심인 학교가 아니라 보육(돌봄)기관으로만 학교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의 소통이 교육감에게만 머무르고, 중요한 정책에 대해 자체 입장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다. 늘봄학교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제주도 교육청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교육감의 소통이 교육감에게만 머무르고, 중요한 정책에 대해 자체 입장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다. 늘봄학교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제주도 교육청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아이에게 ‘행복한’ 돌봄이라는 질문을 학교에서 마을로 가져와 보면 좀 더 분명해 보이는 지점들이 있다. 늘봄학교 정책을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라보면, 문제가 더 분명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온 마을 교육은 공동체 회복을 통한 공교육 정상화 방안의 하나로 주목받아왔다. 닫힌 학교에서 이뤄지는 책 속의 교육을 삶의 현장으로 가져오고 단절된 공동체를 이어주는 고리로 마을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늘봄학교는 오히려 학교를 마을과 분리시키고, 학교의 울타리를 더 높이 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늘봄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 마을을 부활시키는 것은 다른 말이 아니다. 마을교육공동체의 회복을 통한 돌봄의 사례들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학교로 모든 것을 우겨넣으려 하지 말고 사회적 논의를 통해 지금까지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며 다양한 학교별 마을별 돌봄의 모델을 충분히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경우 지자체와 교육청이 협력해서 진행해온 돌봄 사업들이 폐기 수순을 밟는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학교에서 돌봄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면서 지자체나 보건복지부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어느 선생님의 말마따나 “교육 예산을 처음에는 대학교에 떼 주더니 이제는 보건복지부로 떼 주는 격”이다. 그나마 협력하던 지자체 예산마저 끊어버리고 오롯이 교육예산을 돌봄예산으로 전용해야 하는 형편이다. 

정부는 늘봄학교를 추진하면 교육부가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예산 집행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적이 없다. 가뜩이나 올해는 세수 부족으로 모든 분야의 예산이 줄어들었는데 교육부는 도대체 어디서 예산을 가져온다는 말일까? 정책이 설익고 성급하면 그 비용 부담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부디 일각의 우려처럼 총선용 ‘땜빵’ 정책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면, 이러한 과정에서 제주도교육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추진과정을 살펴보면, 제주도교육청은 자체 입장 없이 교육부를 대리하는 역할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통을 강조하는 김광수 교육감이 왜 정부의 대리인 역할만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최근 전교조 제주지부가 지적한 “꼼수 늘봄 시범학교 선정 반대한다!”는 성명서의 내용을 살펴봐도 제주도교육청은 소통보다는 강압적인 분위기로 읽힌다. 

제주도교육청은 제주교사노조와 단체협약을 통해 시범학교 신청 시 해당 학교 교사 과반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약속했다. 늘봄학교 신청과정에서 학교 구성원들이 충분히 논의했는지도 의문이다. 어제 보도된 제주 모 고등학교 불법 촬영과 관련된 소식도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감을 통해 전달된 피해자의 추가 의혹이 담당 부서 안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은 교육청의 행정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김광수 교육감은 불통이 아닌 소통을 강조하며 당선될 수 있었다. 본인의 말처럼 도내 모든 학교를 방문하고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교육감의 소통이 교육감에게만 머무르고, 중요한 정책에 대해 자체 입장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건 소통이 아니다. 늘봄학교 추진과정에서 드러난 제주도교육청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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