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제주 무릉외갓집, 마을기업의 새 지평을 열다

제주의 작은 마을 농부들이 만들어 낸 기적

제주올레 11코스의 종점이자 12코스가 시작되는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2리. 이 중산간 마을에서는 15년째 놀라운 혁신이 이어지고 있다. 이 마을의 ‘농산물 꾸러미’ 회원제 정기배송 서비스는 마을을 대표하는 상품이 됐다. 주민들이 출자해 만든 마을기업인 무릉외갓집이 그 중심에 있다.

2009년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지역사회공헌사업으로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과 기업을 이어주는 ‘1사 1올레 마을협약’을 추진했고 독일계 공기청정기 전문회사인 (주)벤타코리아와 무릉2리를 연결했다. 이 기업은 마을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싱싱한 제철농산물을 타 지역 고객에게 보내주는 꾸러미 서비스를 제안했다. 마을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농산물 꾸러미 정기배송 서비스가 시작됐다. 2011년에는 주민들이 출자한 무릉외갓집이라는 마을기업이 세워지며 기반을 다졌다.

다품종소량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제주의 여러 제철 농산물을 한 상자 안에서 맛볼 수 있는 아이템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예쁘고 화려한 외향이 아닌 진정성’을 담는 브랜딩은 서서히 소비자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무릉외갓집이 선보인 제철 농산물 꾸러미 정기 배송 서비스는 마을의 소중한 유통 모델이 됐다. 농민들은 때에 맞춰 생산한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을 받고 팔 수 있게 됐고, 소비자들은 제주의 싱싱함을 담은 다양한 제철 농산물들을 집 안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제주의소리
무릉외갓집이 선보인 제철 농산물 꾸러미 정기 배송 서비스는 마을의 소중한 유통 모델이 됐다. 농민들은 때에 맞춰 생산한 농산물을 합리적인 가격을 받고 팔 수 있게 됐고, 소비자들은 제주의 싱싱함을 담은 다양한 제철 농산물들을 집 안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제주의소리

꾸러미를 보낼 때마다 각각의 작물을 누가 생산했고 어떻게 생산했는지를 표기하는 레터도 함께 넣었다. 소비자는 자연스레 무릉외갓집을 신뢰하는 팬이 되었고, 농부들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걸고 더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릉외갓집이 농산물을 매입하는 비용은 시세보다 평균 10% 가량 높다. 무릉외갓집이 보기엔 이것이 지역의 농부에게 지불해야 할 합당하고 ‘합리적인 가격’이다. 

차근차근 이름을 알린 무릉외갓집은 2022년 기준 연매출 14억원을 달성했다. 이중 농산물을 매입하는 데 사용하는 비용이 9억원이다. 전체 매출의 90%가 마을주민들과 농부들에게 생산과 인건비로 지급된다. 수익 대부분이 마을에 환원된다는 것은 그들의 지속가능성에 믿음을 준다. “수익을 많이 내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농부들의 농산물을 매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무릉외갓집의 철학이다. 

무릉외갓집은 과일만 받아보길 원하는 고객들을 위한 과일꾸러미를 추가로 런칭하고,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소량의 재료를 담은 족은꾸러미까지 도입하는 등 변화하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현재 월 평균 825개의 꾸러미가 전국 각지로 배송되고 있다.

무릉외갓집의 꾸러미는 한 상자 안에 한 달에 한 번씩 제철의 제주도의 농산물을 적게는 5~6가지 많게는 7~8가지를 한 번에 배송해준다. 소규모 가족들이 한 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서비스로 입소문이 났다. 무릉2리를 넘어 제주에서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있다면 꾸러미 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판로를 만드는 것이 무릉외갓집의 목표다. ⓒ제주의소리
무릉외갓집의 꾸러미는 한 상자 안에 한 달에 한 번씩 제철의 제주도의 농산물을 적게는 5~6가지 많게는 7~8가지를 한 번에 배송해준다. 소규모 가족들이 한 번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서비스로 입소문이 났다. 무릉2리를 넘어 제주에서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있다면 꾸러미 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판로를 만드는 것이 무릉외갓집의 목표다. ⓒ제주의소리

점점 확장되는 가치, 대를 잇는 마을기업을 꿈꾸다

“꾸러미 회원들이 자꾸 늘어나고, 이 분들이 제주도에 여행을 오시면 무릉외갓집에 한 외할머니 집에 가는 마음으로 한 번씩 놀러오시는 거예요. 그 분들을 그냥 보내드릴 순 없고, 감귤따기 체험, 찹살떡 만들기 체험도 하고, 꾸러미에 들어갔던 품목들을 별도로 구매하실 원하시는 분들이 있어 자그맣게 로컬푸드 매장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6월 폐교한 무릉동분교 자리로 이전한 뒤 무릉외갓집은 복합문화농장을 통한 체험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감귤 등 농산물로 잼, 청, 피클, 피자, 쿠키를 만드는데 이 역시 체험을 넘어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김순일 무릉외갓집 실장은 설명한다.

“농부들이 농산물을 어떻게 키우는지, 이 농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들을 교육하게 됩니다. 방문객들이 무릉리에 대해서 배우고, 제주 농산물을 이해하고 가치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체험프로그램의 가장 큰 목표에요.”

지역의 있는 농부들이 제 값을 받고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다 ‘농산물 온라인 유통학교’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무릉외갓집이 주민들의 모든 농산물을 유통할 수는 없었기에 ‘어떻게 하면 조금 지역의 농부들이 제 값을 받고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교육을 거친 지역 농부들은 직접 온라인 스토어를 만들고 매출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게 됐다. 

무릉외갓집은 지역농민들을 위한 농산물 온라인 유통학교(위쪽)와 소비자들이 농산물의 생산과정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무릉외갓집은 지역농민들을 위한 농산물 온라인 유통학교(위쪽)와 소비자들이 농산물의 생산과정과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제 무릉외갓집은 농촌이 상생하며 성장하는 다양한 길을 보여주며 전국적인 벤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 행안부 우수마을기업으로 선정되고, 대통령이 직접 방문한 뒤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들이 여기까지 온 비결은 무엇일까? 김 실장은 협업과 연대의 정신, 리더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무릉외갓집이 14년 동안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건 주민들과 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조합의 구성원들이 협업을 하면서 채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제주도 안에서 상생하기 위해서는 마을주민들과 소속된 조합원들과의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협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안목들을 키워갈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또 저희가 처음 무릉외갓집을 설립하신 고완유 전 이장님의 강력한 리더십이 많은 역할을 했고, 리더십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하려는 분을 지원해주신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성과가 나오고 체계가 잡혔습니다. 사회적경제 기업이 마을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리더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무릉외갓집의 고희철 대표(사진 왼쪽)와 김순일 실장. 무릉2리 출신인 고 대표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있다. 서울 출신인 김 실장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2015년 제주로 이주했고 햇수로 10년째 무릉외갓집과 함께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무릉외갓집의 고희철 대표(사진 왼쪽)와 김순일 실장. 무릉2리 출신인 고 대표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농사를 짓고 있다. 서울 출신인 김 실장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2015년 제주로 이주했고 햇수로 10년째 무릉외갓집과 함께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제 이들의 꿈은 100년 가는 마을기업이다. 17명으로 시작한 조합원은 이제 55명까지 불어났다. 무릉2리에 태어난 뒤 직장생활을 하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고희철(54)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지금 5년째 대표를 맡고 있는 그와 조합원들이 꿈꾸는 비전은 ‘대를 이어가는 마을기업’이다.

“무릉2리에 마을기업이 생겨나면서 마을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아지고, 무릉외갓집에 대해 물어보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주민들은 무릉외갓집을 자랑거리로 얘기합니다.

저희 목표는 무릉리에서 나간 자란 아이들이 다시 돌아와서 무릉외갓집에서 근무하면서 기업을 키워나갈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돌아와서 부모님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고 그걸로 자부심을 느끼면서 무릉외갓집을 이끌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