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제주 것’ 소재 치매 예방 컬러링북
이주민 송나희 작가 “나이 드는 건 당당한 것”

송나희 작가가 지난해 10월 발간한 시니어 제주 컬러링북의 한 장. 사진 제공=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

“엄마, 당근이 뇌랑 눈 건강에 좋대. 그리고 그림을 그리면 머리도 좋아진대. 엄마의 뇌 건강을 위해 당근 그림을 그려볼까?”

돌하르방, 동백꽃, 수선화, 당근, 고사리….

특별하면서도 평범해 정감이 가는 ‘제주의 것들’이 형형색색의 물감이 닿기를 기다린다. 그곳에서는 빨간 당근 혹은 노란 돌하르방이 존재하기도 한다. ‘시니어 제주 컬러링북’ 이야기다.

컬러링북은 색을 칠할 수 있도록 선으로 그린 그림을 모아 엮은 책이다. 쉽게 말해 어른용 색칠공부용 그림책이다.

저자 송나희 작가는 ‘딸이 엄마에게 보내는 제주 러브레터’라고 책을 소개했다.

송나희 작가. 사진 제공=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

“엄마,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 사랑이래. 엄마도 그동안 고생만 했으니, 이제는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어.”

책을 펼쳐보면 작가의 말처럼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를 읽어볼 수 있다. 송 작가가 시니어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자, 어머니에게 들려주고 싶은 진심이 담겨있다. 자전적이면서도 허구의 이야기가 함께 있다.

“치매 예방을 위한 컬러링북이라니 어머니가 치매에 걸렸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건 아니예요. 다만, 생선 장사를 하다가 지금은 목욕탕에서 일하고 계신, 평생을 고생한 엄마를 떠올리며 글을 썼어요. 딸이 사는 제주에 와도 여행 한번 못하시고 볼 일만 보고 돌아가시는 엄마였거든요. 책이 나온 걸 보고는 ‘돈도 안 되는 걸 뭐 하려고 하냐’고 타박했지만, 나중에는 눈물 흘렸다고 하더라고요. 진심이 통한 걸까요. 제가 가진 재능으로 엄마를 기쁘게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송나희 작가가 발간한 시니어 제주 컬러링북. 사진 제공=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

“엄마, 우리 5월 되면 고사리 따러 가곤 했잖아. 오늘 무슨 반찬 먹었어? 나는 고사리 반찬 먹었어.”

시니어컬러링북을 제작하게 된 계기에는 큰 뜻이 있지 않았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면서 점차 시니어 시장이 커질 거로 생각했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그림을 접목하고자 했다. 책이 발간되는 데까지는 무엇보다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의 지원이 컸다. 송 작가는 지난해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의 청년 발굴단 사업의 일환으로 컬러링북을 고안해 300부를 찍어냈다. 그리고 센터와 치매안심센터에 기부해 지역 내 치매 어르신들에게 전달했다.

11년 전 제주에 정착한 송 작가는 이웃이자 인생 선배인 어른들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 수십 년을 치열하게 일하다 은퇴 후 찾아온 외로움이 그들을 고립시켰다고 했다. 송 작가는 어른들이 젊은이들과 함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연결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시다시피 대단한 그림이 아니다 보니 책을 내놓고도 의기소침했었어요. 언제 한번은 치매안심센터에서 어르신들을 상대로 컬러링북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난생 처음 색칠이란 걸 해보는 어르신들이 ‘못한다. 못한다’고만 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수업을 재밌게 즐기시는 걸 보고 굉장히 뿌듯했어요. 자신감이 붙으셨는지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더라고요.(웃음) 단순한 선 안에 색깔을 채워 넣는 것도 어려워하던 어르신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책을 내놓길 잘했구나 생각했죠.”

그의 말에서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물씬 묻어나왔다. 

송나희 작가가 그린 액티브 시니어들. 사진=송나희 작가 SNS

“제주에 와서 만난 어른들에게 많이 의지하고 조언을 받았어요. 주변의 어른들을 보면 저의 미래가 보이기도 해요. 그래서 나이 들어가는 게 당당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1000년 인생이다 보니 저희 엄마도 그렇게 살았으면 하고 저도 그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일까. 작가의 SNS를 보면 대개 어른을 소재로 한 그림이 주를 이룬다. 비장한 얼굴로 운동을 하거나, 오토바이를 모는, 운동화를 신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그림들이다. 활발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이번 컬러링북을 계기로 송 작가는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를 주제로 한 작가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추상화 전시회도 이달 29일까지 제주시 애월읍 갤러리 꽃담(애월읍 부룡수길 51-11)에서 진행하고 있다. 23~25일 사이 찾는다면 송 작가와 직접 만나 작품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선한 마음으로 두 달을 꼬박 고안한 덕에 시니어 제주 컬러링북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어요. 어머니는 여전히 그림이 돈이 되는 건 아니지 않냐고 타박하시지만, 의도가 선량한 마음에 있었기에 호응을 얻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지구상에 선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히 우리의 어른들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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