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 제주에서 새로운 뮤지컬 창작 꿈꾸는 청년 배우 강지훈

제주 연극인 강지훈. ⓒ제주의소리
제주 연극인 강지훈. ⓒ제주의소리

제주지역 극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낯설게 다가올 테지만, 극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강지훈’이라는 세 글자 혹은 그의 얼굴은 기억할 법 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3년 동안 제주 안에서 가장 많은 극 무대에 출연한 배우로 꼽힐 만큼 의욕적인 활동을 이어온 덕분이다.

작품수로만 따지면 30편에 달하고 출연 횟수로는 훨씬 상회한다. 무엇보다 소속과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연극, 뮤지컬, 악극, 인형극, 낭독극, 오페라까지 아우르고 무대 규모도 소극장부터 대극장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본인이 대표를 맡고 있는 극단 레드(RED)의 자체 기획까지 포함하면, 강지훈(30)의 활동은 흥미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물론, 모두 빼어난 연기력을 펼쳤냐는 질문에 고민 없이 동의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배우로서 강지훈의 행보를 보면, 단순히 무대 위에 서는 것에 만족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이상 노력이 필요한 시도까지 나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연극 ‘흑백다방’,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인형극 ‘중섭, 빛깔 있는 꿈’ 등에서 그의 고민과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명성이 알려진 작품 ‘흑백다방’은 전직 경찰과 그에게 당한 폭력으로 청력을 상실한 인물이 대립한다. 강지훈은 후자를 연기했는데, 말투·표정·몸짓 등 평범함에서 살짝 벗어난 외적인 모습부터, 복수심에서 갈등 해소까지 마찬가지로 평범하지 않은 감정을 지닌 난이도 높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는 2022년과 2023년 공연에서 제작진이 바뀐 가운데, 강지훈은 유일하게 연속 출연한 배우다. 비록 주연급에서 단역 정도로 비중은 낮아졌지만, 이런 변화를 감수하면서도 창작 뮤지컬 무대에 다시 도전했다.

인형극 ‘중섭, 빛깔 있는 꿈’은 제주 유일 가족·어린이극 전문 극단 ‘두근두근시어터’가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강지훈은 젊은 이중섭을 맡아 인형으로 구현한 자녀와 교감하면서, 오브제와 함께 대사가 아닌 몸짓으로 무대를 채웠다.

하나하나 떼어 봐도 각자 다른 성격에, 다른 역량을 요구하는 작품들 속에서 강지훈은 흔적을 남겨 왔다. 

뮤지컬 '세상에서 가장 귀한' 출연진과 제작진. ⓒ제주의소리
뮤지컬 '세상에서 가장 귀한' 출연진과 제작진. ⓒ제주의소리
연극 '치마돌격대' 공연 장면. ⓒ제주의소리
연극 '치마돌격대' 공연 장면. ⓒ제주의소리
오페라 '순이삼촌' 출연진. ⓒ제주의소리
오페라 '순이삼촌' 출연진. ⓒ제주의소리

강지훈은 설을 앞두고 [제주의소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10대 시절부터 서울에서 음악을 포함해 여러 경험을 쌓았고, 고향 제주에서 연기에 입문한지는 3년 정도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다작이 이해되는 대목이면서, 제주 연극계에서 이제 서서히 얼굴을 알리는 단계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난 1년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강지훈은 현재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고 강조하며, “1990년대 말 서울에서 뮤지컬이란 장르가 막 태동하던 움직임을 제주에서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 안에서 각자 활동해온 공연 예술인들이 모인다면 무척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동시에 제주 연극계의 뿌리 깊은 내부 갈등 상황을 염두 하는 듯, 신진 제주 연극인의 한 사람으로서 갈등보다는 화합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남겼다.

강지훈은 서울 대학로, 유명 라이선스 작품 등에서 활동하면 배우로서 기초적인 역량은 쌓겠지만, 창작·기획이란 능력과 기회는 오히려 제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나름의 생각을 밝혔다. 무엇보다 제주가 가진 장점, 자원과 결합한 제주만의 뮤지컬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강조했다. 강지훈은 2024년은 무대 보다는 제주 안에서 네트워크를 통한 공부에 보다 집중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1994년생, 올해로 30세. 요즘 통념상 ‘여전히 젊은 나이’에 가깝지만, 그는 대화 곳곳에서 진지함을 숨기지 않고 생각하는 바를 전달했다. “본질”, “가치관” 등의 단어를 자주 사용한 점도 인상 깊었다. ‘만세’, ‘창심관’ 등 지금까지 주도해서 제작한 뮤지컬을 고려하면 아직은 박수를 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제주라는 공간 안에서 제법 치열하게 창작을 고민하는 젊은 예술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활력을 주기 충분하다. 강지훈이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를 차분하게 지켜보고 싶은 이유다.


다음은 질의응답 전문

Q. 강지훈에게 2023년은 바쁘게 보낸 한 해였다. 특히 연극, 인형극, 뮤지컬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배우로 무대에 섰다. 지난 한 해 전체를 돌아본다면?

A. 난 연극이나 뮤지컬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적인 접근을 함으로써의 개인적인 전문성을 조금 높일 수 있겠다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다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은 음악적인 요소, 인형극은 오브제를 활용한 살아있음, 연극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주제의식이나 의미들을 무대에서 관객에게 전달하려다 보니 내 스스로를 깊게 돌아봐야 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배우로서 예술가로서 개인적인 모습을 발견했고, 다음으로는 예술가로서 갖춰야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다. 작품마다 최선을 다하면서 ‘강지훈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답을 내려고 했다.


Q. 그 답은 찾았나?

A. 지금도 찾는 과정 중에 있다고 본다. 왜 제주에서 예술을 계속 해야 할까, 내가 제주에서 배우이자 예술가로서 관객에게 전하는 예술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조금 정리가 됐을 뿐이다. 이런 것들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1년 전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결론 정도만 내렸다. 


Q. 연극 ‘흑백다방’에서는 청력을 상실한 폭력 피해자를 연기했는데 만만치 않은 역할에 몰입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 준비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공연을 하고 나서 느낀 점이 있다면?

A. 일단 ‘흑백다방’ 작품을 제안 받았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처음 본 연극이 바로 ‘흑백다방’이다. 처음 봤을 때 “배우가 저렇게까지 무대에서 표현하려면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나는 저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단계가 되려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안겨줬다. 선망의 대상이고 동시에 너무나 하고 싶었던 작품인데, 비교적 이른 시간에 공연하게 돼 정말 부담감이 많았다. 그럼에도 연기하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돌이켜보면 과정은 사실 순탄치 않았다. 여러 이슈가 있어서 연습 시간이 굉장히 부족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만 자기 자신을 버릴 수 있고, 그 다음 다른 캐릭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고 작품에 임했다. 그래서 내 자신에 대해 본질적으로 돌아보는, 한 해 가운데 가장 많이 깨닫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작품을 읽으면서 그 캐릭터가 가진 아픔과 마음, 흑백다방에 가기 전까지 품은 다짐들, 행동과 생각하는 방식, 왜 이 사람은 청력을 잃었고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하나하나씩 생각해 내는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그것들에 몰입하는 과정이 배우로서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했다.

연극 '흑백다방' 공연 장면. ⓒ제주의소리
연극 '흑백다방' 공연 장면. ⓒ제주의소리

그리고 이번 ‘흑백다방’을 연기하면서 2인극을 처음 경험했다. 여러 명이 출연하는 연극과는 많이 달랐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그 캐릭터로 1시간 동안 쭉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분이 좋았고 행복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기 보다는 상대 배우, 연출가. 딱 세 명이 어떤 목적의 목표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창조적인 의견 안에서 더 좋은 장면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함께 했던 이창익 선배님께서 여러 경험을 말씀해 주셨고 편하게 해주셨다. 선배님께 많이 배웠고 결론적으로 2인극이라는 작품이 가진 매력, 힘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작품을 하고 나니, 2인극을 굳이 무대 위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은 장소나 제주도 안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 2인극이라는 형태가 다른 장르로 다른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할 수 없을까. ‘흑백다방’은 또 다른 형태로 기억에 남아있다.


Q. 인형극 ‘중섭, 빛깔 있는 꿈’에서는 과거의 젊은 이중섭을 연기했다. 뿐만 아니라 오브제를 활용한 신체 연기도 가졌다.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는 보통의 극 공연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대상이 오브제이기에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A. 인형극도 그것만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 ‘중섭, 빛깔 있는 꿈’은 유홍영 선생님이 연출을 맡았다. 선생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배우가 무대 위에서 살아있을 때 가장 빛난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안에서 함께 관계된 인물로서 다가가고 만났을 때 일어나는 그 순간순간을 무척 강조하셨다. 처음에는 인형과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 강렬함, 관계성이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무대에서 그 인형도 결국 하나의 생명체다. 내가 인형을 생명체로서 다가가니 일반 연극에서 느꼈던 관계성과 의미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형극 '중섭, 빛깔 있는 꿈' 공연 장면. ⓒ제주의소리
인형극 '중섭, 빛깔 있는 꿈' 공연 장면. ⓒ제주의소리

인형도 살아있는 나의 아들이고, 아들을 봤을 때 느껴지는 감정, 여기서 오는 신선함과 새로운 발견점이 많았다. 그리고 이중섭도 연기했지만 다른 장면에서는 살아있는 물고기나 오브제들을 구현하는 과정도 있었다. 오브제를 들고 연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오브제가 돼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이런 구조에서 오는 호흡들이 감명 깊게 남아있다. 그 자체가 돼서 무대에 있어야만 관객들에게 전달된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좋았다. 비언어극이기에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느낌과 사실상 동일하다고 다가왔다.


Q. 연말에는 제주시 창작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에 참여했다. 2022년 같은 공연과 비교하면 비중이 줄어들었는데, 그럼에도 재출연을 결정했다. 재출연을 결심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나?

A. 제주에서는 뮤지컬 창작 기반이 전무하다 시피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욕심 있는 장르가 바로 뮤지컬이다. 정말 잘해내고 싶은 공연이 뮤지컬인데,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는 뮤지컬을 다시 만들고 경험할 수 있다는 가치가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첫 해에 어떤 상황이 있었더라도 결국에는 내가 더 발전하는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특히 연출을 맡은 김수연 선생님은 멈추지 않고 더 나은 공연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그런 가치도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과 함께 했을 때 달성하는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런 부분들이 내가 믿고 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양한 전문가들이 ‘부종유와 꼬마탐험대-날개’에 함께 했다. 그래서 배울 점이 분명히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선배님들께 배웠고, 이제는 저의 가치이기도 하지만 ‘작은 역할은 없고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라는 말을 이 작품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내가 이 작품을 얼마나 비중 있는 역할로 대하는지 여부가 아닌, 스스로를 더 알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공연을 계속 할 수 있다는 부분에만 집중했다. 결과로 보면 내가 예상한 부분이 잘 맞아 떨어졌고, 배운 것들이 정말 많다. 제주에서 창작하기 위해서 부족한 것들은 서울에서 분명 가져오는 정도의 노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에 있어 많이 보고 느꼈다. ‘부종휴’라는 콘텐츠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하게 남겨졌다는 점도 기분이 좋다. 앞으로 제주에 있는 예술가들이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제주에서 공연 예술인으로 활동하다보니 조금 더 화합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각 분야 많은 예술인들이 함께 하다보니 결국 소통의 문제는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느냐가 작품 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는 것 같다.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는 적은 예산임에도 화합과 화목이 있었기에 관객에게도 주제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고 본다.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모습. ⓒ제주의소리
뮤지컬 '부종휴와 꼬마탐험대-날개' 공연 모습. ⓒ제주의소리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1990년대 말에 아직 한국에 뮤지컬이란 장르 개념이 없었을 때 이야기다. 그때는 경험도 인식도 부족하다보니 삼삼오오 모여서 뮤지컬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출발을 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어느 연출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그래서 라이선스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무엇이 정답이다 정하기보다는 서로 아이디어를 통해서 같이 의논하고 토론하면서 더 나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가족처럼 되는 과정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네트워킹이 점차 넓어지면서 관객들도 ‘뮤지컬 재미있네’라는 입소문이 퍼지고 팬덤이 생기고 계속 이어지다보니 홍수처럼 뮤지컬이 밀려들었다. 다양한 전문가가 생기고 종사자도 많아지면서 인프라가 커지고 관객도 계속 늘어나니 비로소 각자 도생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근데 개인적으로 지금 제주 뮤지컬도 1990년대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걸어온 길은 더 짧겠지만, ‘제주에서 뮤지컬을 하고 싶다’는 예술가들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신념, 신뢰를 바탕으로 삼삼오오 작업을 하다보면 제주 역시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제주가 줄 수 있는 자연적 환경과 특징도 가미하다보면 제주만의 뮤지컬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Q. 본인이 대표로 있는 극단 ‘레드’도 연말에 창작 뮤지컬 ‘창심관’을 공연했다. 이번 ‘창심관’은 이전 활동(2021년 뮤지컬 ‘만세’)과 비교할 때 규모나 구성이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을 보인다. ‘창심관’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는지, 뮤지컬 장르에 대해 느낀 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뮤지컬 장르는 작곡가, 음악감독, 안무감독, 연출까지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소통과 협업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제가 상상하는 장면은 제 머리 안에만 있지 협업하는 예술가들한테 제 상상이 들어가려면 전반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이 아예 없다면 애초에 협업이라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뮤지컬 제작을 위해서는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뮤지컬 '창심관' 공연 장면. ⓒ제주의소리
뮤지컬 '창심관' 공연 장면. ⓒ제주의소리

창심관은 제주 최초의 영화관인데, 그 안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극적으로 많이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수 이난영, 변사 김성택, 유랑극단 등 여러 이야기가 창심관에 있었다.‘우리가 생각하는 뮤지컬은 이런 것’이라는 기초를 갖추고 나서, 창심관 이야기를 더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더 좋은 작품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장르적인 완성도, 지속 가능성, 관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등 여러 부분을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Q. 극단 ‘레드’는 지금까지 주로 ‘라이어’,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 같은 이미 발표한 유명 작품을 재공연하며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구성원들이 여러 팀과 협업도 가졌다. 그러나 ‘레드’만의 존재감은 인상 깊게 다가오지 않는 느낌이다. 창작 뮤지컬 ‘창심관’은 그런 인식에서 등장한 도전으로 읽힌다. ‘레드’의 현재 운영 상황과 협업·재공연 이상으로 극단 ‘레드’만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구상이 있다면?

A. 현재 레드에는 혈기 넘치는 20대가 많다보니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고 있다. 군 입대한 동생도 있고, 연극이나 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육지 대학에 입학한 경우도 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서울에서 계속 활동하다보면 일종의 부품처럼 공연에서 쓰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뮤지컬 배우 선배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작품에 출연하는 앙상블 가운데는 마치 의욕 없이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공연에 오고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배우로서 계속 살아가려면 ‘창작 욕구’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친구들이 공연 기초를 서울에서 배우고 다시 제주로 온다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몇 명이 더 모이면 인원이 더 커지고 협업도 계속하면서, 좋은 팀으로 계속 제주에서 공연 예술을 하고 싶다는 기대감이 크다. 일단 당분간 레드는 적은 규모로 활동할 것 같다.

극단 레드 단원들. ⓒ제주의소리
극단 레드 단원들. ⓒ제주의소리

Q. 공연 예술을 접하고 그 길을 걸어온 계기, 과정이 궁금하다. 

강지훈. ⓒ제주의소리
강지훈. ⓒ제주의소리

A. 예전에는 스스로 대단한 예술가가 될 거라고 생각해 서울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중학교 때부터 오디션을 봤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홍대에서 지냈다. 중요한 날에만 제주에 와서 학교를 가고 계속 서울에서 지내면서 록 밴드 멤버로 활동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3세가 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너무 잘 알게 됐다.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제주에 와서 대학 생활도 하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가졌다. 예술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27세 때 처음으로 연극 공연을 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라는 옴니버스 작품이었는데, 너무 좋았다. 과거의 내가, 예술을 하고 싶었던 열정적인 내가 보였다. 구성원들도 열정적으로 참여했었다. 그 분위기에 있다 보니 살아있음을 다시 느낀 것 같았다. 도전하고 싶은 열망도 생겼다. 그전까지는 직장 생활을 어떻게 할지, 일을 어떻게 할지 생각했었는데, 긴 고민의 과정 끝에 ‘진짜 마지막 도전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연극을 통해 품었다. 실력이 빨리 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래서 공연에 많이 출연했던 것 같다. 동시에 함께 공연했던 친구들과 시도에 가치를 두고 추억을 쌓으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마음으로 만든 게 극단 레드다. 이렇게 진행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연출도, 조명 디자인도, 무대도 맡아야 하니 나름 공부를 하고 감독님들께도 조언을 얻었다. 그리고 창작을 해야 지속성이 있다고 생각해, 창작을 하려고 시도했다. 도전하면서 지내다보니 지금까지 왔는데, 돌이켜보니 제가 살아온 30년 인생 중에 지금이 가장 저 답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자연스럽게 노력하게 되는 그런 느낌.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성취감도 생기고, 목표를 정확하게 정해놓으니 다가가는 과정도 재미있다. 물론 다 재미있진 않고 무척 어렵기도 하지만, 지금이 가장 잘 살고 있는 시기를 보내는 것 같다.


Q. 고향 제주에서 어떤 점을 지향하면서 공연 예술인으로 활동한다고 볼 수 있을까?

A. 20대는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경험하고 도전하고 깨지고 상처받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고 자기 가치관이 정립된다. 그럼 30대는 가치관이 정립된 상태에서 그것을 어떻게 더 개선할지, 나란 사람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서울에서 뮤지컬 예술에 뛰어들었다면 심리적으로 누군가가 먼저 가는 방향을 무조건 따라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의 10~20대 서울 생활을 돌이켜보면 방향을 벗어날 때 더 많이 불안해지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오히려 벗어나야만 내 것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물론 불안하기도 하고 늘 긍정적일 순 없다. 그러나 제주에서 뮤지컬 장르는 1990년대 말 서울처럼 출발하는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신념과 유대감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창작·기획하며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싶다. 특히 제주 안에서는 많은 공연 창작자들이 연출, 음악, 심지어 배우까지 혼자 고민하고 시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분들이 모인다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청년들이 공연 예술 때문에 떠나지 않고 제주에 남아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대학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그것이 어렵다면 제주도 차원에서 과정을 만들어 공연 예술을 꿈꾸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기획하고 조금씩 기반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면, 그들이 제주 안에서 장점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 같다.


Q. 극단 레드, 그리고 예술인 개인 강지훈은 2024년은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가. 장기적인 목표나 방향도 듣고 싶다.  

A. 제가 지금까지 오면서 많은 분들에게 큰 은혜를 받았다. 기꺼이 도와줬던 분들이 계시다. 저도 그런 모습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굉장히 크다.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다. 지난해는 공연 활동을 하면서 어린 친구들을 많이 만났던 한 해였다. 그 친구들에게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며 도움을 주고 싶다. 동시에 내가 부족했던 것들도 계속 공부해 나갈 것이다. 뮤지컬에 집중하기로 마음 먹은 만큼, 다른 장르보다 뮤지컬 출연 기회가 된다면 참여하려 한다. 올해는 2023년보다 더 좋은 예술가로서 배우로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예술가, 배우, 뮤지컬 배우, 제작자로서 배움이 부족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 부분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해결해서 더 좋은 더 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제주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본질적으로 고민할 것 같다. 그래서 뮤지컬 스터디 모임도 운영 중이다. ‘내가 얻는 보상은 제가 제공한 가치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이 실현돼야 계속 예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했던 문제인 것 같다.

강지훈. ⓒ제주의소리
강지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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