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52) 수능 준비 없고 상대평가 없는 학교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대학병원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부족한 의료인력 충원을 위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에선 정부가 제시한 2000명 증원의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며 증원의 근거가 없다면 증원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 증원으로 ‘응급실 뻉뺑이’나 ‘소아과 오픈런’ 그리고 ‘지역 의료 붕괴’가 해결될 수 있다는 정부의 주장이 근거가 없고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짚지 못했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지만, 사회적 토론보다는 파업과 법적 대응이라는 힘의 대결로만 흐르고 있다. 

의대 증원 필요성에 대한 찬반 논란과 별개로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이 발표된 후 소위 SKY라 불리는 상위권 대학 재학생은 물론이고 지방의대 학생부터 대기업 직원까지 수능에 도전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발표된 여론조사결과들을 살펴보면, 늘어난 증원은 수능을 통해 선발해야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수능은 과연 공정할까?

최근 표선고등학교 입시 결과가 발표되면서 IB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표선고등학교는 수시 전형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표선고등학교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입시결과로 학교가 평가되는 현실이 씁쓸하긴 하지만, 표선고등학교가 진짜 성공한 것은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모두가 만족하는 교육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표선고등학교의 아이들은 서로를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서로 존중하고 교사와 아이들이 배려하고 협력하는 표선고등학교에는 다른 학교에 있는 수능준비와 상대평가가 없다. 수능을 준비하지 않으니 학교 교육에 충실해질 수밖에 없다. 절대평가는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으므로 친구를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객관식 시험이 없기에 교사들도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 논술 답안지는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힘들기에 교사 상호 간에 토론이 일어나게 되고 교사 간에도 협업의 문화가 만들어진다. 

“처음에는 IB교육에 대해 의심도 많이 들고, 이렇게 해서 대학이나 가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점점 생각이 깊어지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대학을 못가도 사회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해도 자기중심을 잡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표선고등학교에 아이들 보낸 한 부모의 인터뷰는 제주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를 보여주고 있다. 표선고등학교는 IB교육 때문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IB교육 때문에 사라진 수능준비와 절대평가 그리고 논술을 통한 평가가 주요한 성공요인이다. 수능준비에 매달리며 친구를 경쟁상대로 여기게 만드는 상대평가와 정답을 강요하는 객관식 문항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IB 월드스쿨 인증을 받은 표선고 수업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IB 월드스쿨 인증을 받은 표선고 수업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교육은 아이들의 행복을 전제로 한다. IB교육을 통해 확인된 수능에 집중된 교육과 객관식의 상대평가를 없앤다면 아이들의 자기중심 교육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학부모의 인터뷰처럼 표선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이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는 것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오히려 공정하게 보이는 수능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교육 격차를 확대하고 있다. 짧은 지면에 다루기엔 의대 증원 논란에는 빠져있는 논의가 너무 많다. 3000명에서 5000명으로 갑자기 늘어난 의대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지금도 회피하는 응급의학과나 소아과와 같은 필수의료 인력이 의대 증원으로 늘어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구체적인 사회적 논의나 로드맵 없이 의대 증원을 발표하면서 혼란을 가중시킨 책임이 있다.

의대 증원 논란이 힘의 대결에서 사회적 논의로 전환되길 바라며 그동안 치료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분들이 무탈하길 바란다. 제주지역에서 표선고등학교의 사례를 통해 공교육의 변화 방향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일어나길 또한 기대해본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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