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366) 놀다 죽은 염소나 일하다 죽은 황소나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 편집자 글 


- 놀당 죽은 : 놀다가 죽은
- 기당 죽은 : 일 잘하다가, 일만하다가
- 염송애기 : 염소
- 황밧갈쉐 : 황소

저렇게 풀이나 뜯는 염소나, 일 년 열두 달 일하는 소나 다를 게 무언가. / 사진=픽사베이
저렇게 풀이나 뜯는 염소나, 일 년 열두 달 일하는 소나 다를 게 무언가. / 사진=픽사베이

염소는 풀이 싱그럽게 돋아난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짐승이다. 농촌에서 기르는 가축 중에서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제 배만 불리며 사는 한량 같은 녀석들이라 함이다. 그에 비해 황소는 쉬지 않고 밭갈이를 한다. 

그뿐이랴. 씨 뿌릴 때는 밭으로 거름을 실어 나르고, 곡식을 거둬들일 때는 또 곡식단을 집으로 져 나르거나 곡식을 실은 마차를 끌기도 한다. 그야말로 혹사한다.

소가 쉬지 않고 일하는 걸 보다, 들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염소를 끌어들였을 법하다. 저렇게 풀이나 뜯는 염소나, 일 년 열두 달 일하는 소나 다를 게 무언가.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상념에 이른 것이리라.

죽자사자 일하는 걸 ‘긴다’고 한 표현은 두 짐승을 비교하면서 단순치 않아 사뭇 절박하게 다가온다.

애초 의인화했을 것이다. “여보시게, 염소처럼 놀다 가거나 밭 갈 소 같이 기다가(일만 하다가) 죽는 거니 다를 게 무시거우꽈? 적당히 살다가 가면 되는 인생이 아니랴”는 체념 내지 감상적인 푸념이 긴 한숨으로 새어 나오지 않는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