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청년들의 잃어버린 시간...졸업-취직-결혼-출산 등 줄줄이 유예

[사진=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1964년생 김경범씨(사진 오른쪽)와 1994년생 김형석씨. [사진=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1964년생 김경범씨. 제주시에서 나고 자란 그는 30여년 간의 소임을 마치고 정년을 앞두고 있다. 학업, 취직, 결혼, 출산, 육아 등 삶의 고비를 넘는 동안 큰 걸림돌은 없었다. 네 자녀를 건사한 가장으로 삶을 되돌아본 그는 "당시만 해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60년대생, 80년대 학번으로 소위 '86세대'인 그는 군 복무와 학업을 마치자마자 24살의 나이에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1988년에 한 건설회사에 입사했고, 이듬해인 1989년에는 혼례를 치렀다. 2년 뒤인 1991년에는 첫 아이가 태어나는 기쁨을 누렸다.

네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아내는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다. 경제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이기도 했다. 첫 취직 5년 후인 1993년에는 일자리를 옮겨 지난 31년 간 한 직장에서 근무한 김경범씨는 적잖은 성과를 이뤘다.

전형적, 혹은 평범하게 시대를 살아왔다고 자신을 되돌아본 그는 "그때만 해도 취직이나 결혼에 있어 어려움은 없었다. 자격증만 잘 취득해두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됐고, 월급을 차곡차곡 모으면 내 집 마련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김경범씨는 "실례되는 표현일까 싶지만 요즘 젊은 세대를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우리네 젊었을 적에는 봉급 18만원씩 받으면서도 10년, 20년 꾸준히 모으다보면 평당 150만원 정도되는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꿈이 있지 않았나. 제주조차 서울 강남 수준의 집값으로 오른 것을 보면 꿈조차 꾸지 못하는게 현실일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전용면적 60㎡ 초과 85㎡ 이하, 제주지역(주황색) 및 전국 평균 ㎡당 분양가격. 데이터=주택정보포털. [그래픽=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실제 30년의 차이를 두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1994년생 김형석씨는 앞선 사례와는 다소 대비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과제를 성실하게 넘어서고 있지만, 보다 더딘 현실이다. 서귀포시에서 나고 자라 2013년 대학에 입학한 그는 취업에 전념하기 위해 아직 졸업장을 취득하지는 않았다.

취업 시기가 가장 어렵고 막막했다던 그는 자신만의 경쟁력을 발휘해 또래·동기들과 견줘서도 한 발 앞서 취업에 성공했지만, 다음 발걸음을 내딛기에는 버거운 것이 현실이었다. 옆을 둘러봐도 누구나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다는 것이 김형석씨의 토로다.

교제하는 이성은 있지만 구체적인 결혼 계획까지 세우지는 못했다. 집이나 혼수를 장만함에 있어 부담이 없지 않았기에 아직은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김형석씨는 "예전에는 어려워도 결혼을 하고 이겨내려 했다면 요즘 MZ세대는 결혼을 해도 힘든 것을 뻔히 알고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그는 "주변인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인 10명이라 치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사례는 2~3명 남짓에 불과하다"며 "MZ세대가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여겨서인지, 보다 신중하게 결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삶의 변곡점의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제주 청년들의 라이프사이클도 점차 늦춰지고 있다. 특정인의 사례가 아닌, 전반적인  숫자부터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1990년과 2022년 제주지역 남성(초록),&nbsp;여성 평균 초혼 연령. 데이터=통계청. [그래픽=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br>
1990년과 2022년 제주지역 남성(초록), 여성 평균 초혼 연령. 데이터=통계청. [그래픽=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제주의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4.08세, 여성 31.76세다. 전국 평균 남성 33.72세, 여성 31.26세보다 높은 수치로, 17개 시도 중 제주보다 초혼 연령대가 높은 곳은 서울시(남성 34.17세, 여성 32.15세)가 유일하다.

30여년 전인 1990년 제주의 초혼 연령은 남성 27.71세, 여성 25.07세였다. 단순 비교하면 30년 사이에 남성은 6.3세, 6.7세 만큼 인생 사이클이 늦춰진 결과다.

제주지역 모(母)의 평균 출산 연령도 통계를 산출하기 시작한 2000년 29.48세에서 2022년에는 33.46세로 4.1세 가량 늦춰졌다. 사설 취업알선 포털인 인크루트에 따르면 우리나라 첫 취업 평균 연령은 1998년 25.1세에서 2020년 31세로 역시 6년 가량의 차이를 보였다.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늦춰질수록 지역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이를 충당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청년들의 잃어버린 시간은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제주의 경우 보다 가파르다.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과 가속화되는 청년 도외 유출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실시한 제주청년통계에 따르면 제주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 부족', '열악한 근무환경' 등 노동·일자리 문제에 집중돼 있다. 인구 유출 문제나 주거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환경이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나타냈다.

지역소멸, 고령화와 더불어 한국사회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청년들이 사회 진출을 미루는 현상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여겨진다. 지역 차원의 보다 구체적이고 심도있는 청년정책 개발이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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