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교육春秋] (53) 성범죄, 드러내고 공유해야

3월이다. 학교에도 진정한 새해가 시작되었다. 어제(4일) 제주도내 대부분 학교에서는 입학식이 열렸다. 초등학교의 경우 120곳 중 116곳에서 입학식이 열렸다. 제주지역 초등학교 신입생은 2023년에 비해 12% 가까이 줄어들면서 가파초등학교는 입학식이 열리지 못했고 신례초등학교는 단 2명만 입학했다. 전국의 초등학교 1학년 학생 수가 지난해 대비 약 8%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제주지역 감소세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가파른 셈이다. 

전체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학급당 학생 수도 줄어들었다. 제주의 경우 동 지역과 읍면 지역의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대략 20여명의 아이들이 한 반에서 배운다. 학급당 50~60명이 공부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학생 수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만나는 긴장감은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새 학기의 긴장감은 다르지 않다. 입학식 자리에서 교장 선생님들은 대개 학교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라고 하지만 새로 만난 이들과 친하게 지내기란 교사도 학생도 쉽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관계 맺기는 짧게는 일 년에서 길게는 평생을 갈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친해질 수 있는지 그러한 관계 맺음 속에서 행여 다른 친구를 따돌리지 않고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한 섬세한 교육은 쉽지 않다. 차이는 늘 디테일에서 온다고 하지 않던가. 새 학기에 서로를 알아가는 프로그램이 학생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필요해 보인다. 서로를 안다는 것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말일 것이다. 차별이 없는 교실은 서로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바탕이 될 때 가능할 것이다. 성별, 성적지향, 피부색, 장애여부, 성별정체성, 나이, 국적, 출신지역, 혼인여부, 가족관계 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은 동등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관계를 통해 배워나갈 수 있다. 우리가 모두 동등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상식을 온몸으로 배우기란 쉽지 않다. 서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상품이나 대상으로 여기는 일들은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2023년 한 해 동안 고등학교 여자 화장실 3곳에서 불법촬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학교와 교육청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2차 피해를 만들고 사실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들이 드러났다. 2024년 제주의 학교들은 불법촬영으로부터 안전할까. 학교현장에서는 성폭력 예방교육이 매년 의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왜 이런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났을까. 

우선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부터 점검해보자. 지난 달 문을 연 남다른성교육연구소( https://www.namdareunboys.com )는 생애주기별(11~19세) 남성 청(소)년 특화 맞춤형 성교육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이들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이 학생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여성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학생들은 기성세대보다 성평등 수준이 평균적으로 높고, 온라인을 통해 성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접하고 있지만 기존 성교육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공교육현장의 성평등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안고 2016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입장도 비슷하다. 이 모임의 대표로 있는 서한솔교사는 “한국의 성교육은 내 몸에 대한 의사표현보다는 일단 ‘섹스를 하지 않는다’를 기본 전제로 하고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가해자 되지 않기’를 가르치는 것도 핵심적인 교육 중 하나라고 말한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공교육에서 꼭 해야된다는 그의 말처럼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장도 교육대상의 예외가 아니다.

그러면 ‘제대로’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실효성있는 교육에서 화장실 불법촬영은 어떻게 다뤄질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을 통해 대응 매뉴얼이 부재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이번 사건은 도내 학생들과 교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 가해자가 누구인지를 알리자는 것이 아니라 성범죄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 불법촬영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피해자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그러한 행동의 무게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직접 범죄를 저지른 사람뿐만 아니라 방관하며 동조한 사람들도 얼마나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배워야 한다. 가해를 저지른 학생을 영원히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제주에서 지난해 발생한 고교 화장실 불법촬영은 학교 성평등교육을 변화시킬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덮고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주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사실은 ‘제대로’된 일상의 성평등교육이 얼나마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안재홍

안재홍은 간디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제주에서 탈학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잠시 운영하기도 했다.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을 학교 밖에서 학교 내로 옮겨와 다양성이 존중받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교육이 자리잡길 바라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라도 시작해보자는 고민으로 2016년 10월 애월교육협동조합 이음을 설립해 애월지역 마을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다. 기후위기가 두 딸의 삶을 앗아가지 않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하며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부터 애월중학교에서 기후위기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다 지금은 귤 농사지으며 휴학 중이다. 제주의소리 '교육春秋' 칼럼을 통해 독자들과 격주로 만난다. KBS제주 TV 시사프로 '집중진단' 진행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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