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⑨ 제주굿 기메의 가치와 활용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은 제주만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제주 무속’ 역시 마찬가지다. 제주 무속에서 사용하는 ‘기메’는 종이 장식이나 신체 등 굿에서 쓰이는 종이 무구를 지칭한다. 종이 무구를 많이 사용하는 건 제주굿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의소리]는 권태효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민속학자 강소전이 집필한 국립민속박물관 조사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 전문을 순차적으로 연재한다. 종이 예술작품 기메의 매력을 재발견하면서, 제주굿의 가치도 널리 공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① 기메 조사의 필요성
② 기메의 명칭과 성격
③ 기메의 형태와 전승
④ 기메의 종류
⑤ 김영철 심방의 기메 제작 세계
⑥ 주요 기메의 제작 방법 및 과정
⑦ 제주굿과 기메의 활용과 실제
⑧ 기메와 신화(본풀이)의 연계 양상과 의미
⑨ 제주굿 기메의 가치와 활용


제주굿에서 활용되는 기메의 가치는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굿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물질문화이면서 본풀이와 같은 구비전승과의 연계성 또한 뚜렷하고, 아울러 그 나름으로 독자적인 예술성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서는 제주굿 기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치를 지니는지, 그리고 향후 그것을 활용한다면 어떤 방안이 있을지에 대해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제주굿 기메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기메는 물질문화로 제주굿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무구이다. 기메는 신체의 상징이면서 굿의 장식이기도 하고, 굿판의 준비에서 굿의 시작과 진행, 마무리까지 전 과정이 이들 기메와 긴밀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메를 이해해야만 제주굿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철수는 민속의 전승을 언어 전승, 행위 전승, 물질 전승으로 구분하여 연구가 필요함을 피력한 바 있다.(장철수, 「한국민속학과 민속지의 체계」, 『역사민속학』 제1집, 역사민속학회, 1991. 217~218쪽.) 제주 무속에 있어서는 본풀이로 대표되는 언어 전승에 대한 연구는 다수 축적된 반면, 행위 전승 및 물질 전승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일천한 형편이다. 이 글에서 다루는 기메를 비롯해 멩두나 연물, 무복 등 여러 물질 전승의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물질문화 연구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거나 다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최진아는 「무속의 물질문화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전국에 분포하는 굿이나 굿판에서 소요되는 물질들을 구체적으로 연구한 바 있는데, 여기에 제주도 무속 관련 물질들은 빠져 있다.(최진아, 「무속의 물질문화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논문, 2008)

기메는 굿의 준비나 진행을 하기 위해 제작되는 건수가 여타 무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지닌 종교적 상징성, 전승 양상, 제작 방식 등 제주굿 물질문화의 전승에 있어 중심에 놓일 수 있는 대상임이 분명하다. 특히 다른 물질 전승과 달리 지속성을 가지기보다는 굿 현장에서 일회성으로 소모되는 성격을 갖기에 여타 무구에 비해 조사 및 보존의 시급성을 갖기도 한다. 따라서 각각의 기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기능, 의미를 찾는 것은 물론 제작 방식, 현장 활용 모습, 전승 양상 등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접근하여 정리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둘째, 기메는 물질문화와 신화[본풀이]와의 관계성을 검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대상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기메는 굿에서 제작되는 종류 및 그 가짓수가 아주 많고, 형태도 다양하다. 아울러 이런 기메의 유래는 본풀이에 기대어 설명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때문에 제주신화와 물질문화가 만나는 접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도 특히 그 의의가 크다. 물질 전승의 생성이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그 근원이 신화에 근거하고 있으며, 신화를 통해 그것의 기능과 신화적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예컨대 신들의 공간을 상징하는 기메인 살장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신의 거처인 당클을 가리는 형태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까지도 본풀이에서는 어느 정도 설명을 해주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기메가 물질 전승의 영역이라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존재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라 굿 전반과 맞물리면서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대상이라 하겠다. 곧 종합예술적 성격을 갖는 굿에서 언어전승과 물질전승이 만나 서로 조화를 이루는 적절한 표본이 된다고 하겠다.

성주꼿(고순안 심방댁 성주풀이, 2011).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성주꼿(고순안 심방댁 성주풀이, 2011).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셋째, 기메 자체가 지닌 예술적 가치를 꼽을 수 있다. 기메는 굿에서는 종교적 의례의 산물로서 그 쓰임새를 갖지만 그것 자체가 지니는 독자적인 예술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종이나 천을 활용해 접고 정교하게 오려내 문양을 만드는가 하면 사람의 형상을 본떠 상징성을 부여하는 양상까지 기메를 만들어가는 형상은 종교적 기능이나 목적성 때문에 제작되는 것을 배제한다면 예술작품의 창작활동에 다름 아니다.

나름의 다양한 기메 제작기법들과 그 성격 및 기능에 알맞도록 완성도를 갖춰 나가는 기메의 형상화 양상은 미적 기능까지 아울러 갖추고 있으며, 때문에 그런 기메에 대해 아름다움을 찾고자 하는 시도가 실제로 없지 않았다. 김영철 심방의 전언에 따르면 종이공예를 전공하는 작가들이 그를 찾아 제작 방식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은 바 있으며, 또 부분적으로 전수를 해주기도 했다고 한다.(2022년 12월 3일 김영철 심방과 면담 조사 시 구술한 내용이다.[김영철 심방 댁 조사]) 그런가 하면 김영철 심방의 기메는 다양한 문양과 잘 접어서 빚어낸 형상 그 자체로 예술성을 갖기에 충분하고, 보는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실제 2019년에는 종이를 활용하여 작품을 하는 전시회에 초청되어 관람객들에게 작품으로서의 감동을 제공하기도 했다. 우란문화재단에서 한지를 소재로 현대 미술작가의 작품과 공예성을 갖춘 신앙적 성격의 작품들로 구성하여 <신물지神物紙>라는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에 김영철 심방의 기메가 초대되어 이미 작품으로 관람객들을 맞은 바가 있다. 이처럼 기메는 종교적 기능 외에도 그 나름의 독자적인 미적 예술품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더한다. 한편 활용도 측면은 세 가지 각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먼저 기메의 제작방식에 대한 기록화 작업을 통해 전승방식을 보존하고 그것을 아카이브나 전시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메는 굿하는 현장에서 만들어지고, 굿이 끝나면 태워 없앤다. 때문에 그것을 의도적으로 보존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일회성으로 소멸되고 만다. 그렇기에 역사가 오래된 기메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제주대박물관에서 2014년 제주의 무구를 전시하는 과정에서 김영철 심방이 다양한 기메를 만들어 선보였는데, 그때 일습을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런데 제주굿의 전승도 예전만 못하다. 모든 신앙민들에게 깊이 자리 잡았던 무속에 대한 믿음이나 환경이 약화되는 모습이 뚜렷하다. 더구나 근래 이중춘, 김윤수 심방 등 큰심방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굿을 제대로 하는 심방들의 수도 급격히 줄었다. 기메선생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김영철 심방 외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는 심방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일회성 용도로 활용되는, 하지만 제주 무속의 전승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물질문화인 기메 제작법은 반드시 기록화시켜 전달할 필요가 있다. 기메의 성격이나 기능을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의 제작 방식을 단계별로 기록해두어야 한다. 설사 향후 기메 제작 방식의 전승이 용이하지 못한 때가 오더라도 이런 기록을 보면서 그 방식을 재구성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기메 제작이 일회성을 지니기에 실제 굿 현장에서 제작 활용된 기메의 일습을 수습해 보존시킬 필요가 있다. 제주대 박물관 소장의 기메 일습은 굿보다는 전시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기에, 공예품 성격에 가깝다. 기메의 본래 목적 곧 굿이라는 종교의례에서 제작되어 실제로 활용되었던 것을 수습해 소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김영철 심방과의 합의 하에 굿판에서 활용된 기메 일습을 잘 모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고, 향후 제주 무속 전시 등에 활용하고자 유물로 보존할 계획이다. 이런 작업에 대해 제주 기메를 박물관에 박제화시켜 놓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적 흐름 및 전승 환경 등을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해두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김영철 심방의 굿하는 모습.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김영철 심방의 굿하는 모습. / 사진=국립민속박물관

두 번째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으로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의 활용도이다. 굿에서는 종교적 의식의 산물로서 주로 쓰임새를 갖지만, 그 자체가 갖는 예술성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큰 가치가 있고 활용 또한 가능한 측면이라고 본다. 근래 떡살 문양을 비롯해 우리의 다양한 전통 문양에 대해서 관심들이 많다. 제주굿 기메 제작에서 활용되는 여러 문양들은 아주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그 형태도 다양하고 상징성도 아주 풍부하다. 때문에 전통문양의 계승이라는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하며, 기메 그 자체가 지닌 완성도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가 하면, 이런 방식을 적절히 활용하여 전통에 입각한 새로운 종이공예를 창조해낸다면 전통을 활용한 예술작품의 창작에도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

세 번째는 기메 전승 기술의 계승 측면이다. 기메 제작법은 전승 기술의 하나이다. 기메 제작은 전승되면서 부분적으로 변화하기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 지금의 굿법을 잘 보여주면서 전승되고 있다. 사회 변화에 따라 후대에 이런 제작법이 크게 변하거나 소멸된다고 하더라도 주요 기메의 제작과정을 사진 자료와 함께 제작기법 등을 설명과 함께 남겨둔다면 언젠가는 재현되고 전승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제주 큰굿의 과정을 담아 그 속에서 쓰임새도 제시한다면 제주 기메에 대한 주변을 비롯한 전승 전반이 유산으로 잘 남겨질 수 있다. 때문에 그 과정을 잘 정리하고 기록화하는 작업을 해두어 전승 기술적 측면을 유지하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 [끝]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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