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96) 박노자, ‘전쟁 이후의 세계’, 한겨레출판, 2024.

/ 사진=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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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날마다 마주하는 나라 밖 뉴스들 대부분은 전쟁 관련된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좀처럼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온갖 미디어에 의해 송출되고 있는 이들 전쟁의 폭력적이고 야만적 모습을 목도하면서 반전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시민은 슬픔과 안타까움과 허탈감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무엇보다 이들 전쟁이 표면적으로는 적대적 대립과 갈등에 놓여 있는 당사자들 사이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경제적 및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열강들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2.
이와 관련하여, 박노자의 ‘전쟁 이후의 세계’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전쟁, 특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지구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현실에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대화를 건넨다. ‘~습니다’체를 구사하고 있는 이 책은 전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둔감한 독자에게 친밀한 어조로 전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인문사회적 교양을 자극한다. 여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한국사회와 관련 없는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얼마나 우매한가를 성찰하도록 한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지 한국사회의 관심사 바깥으로 멀어지기 시작한 구소련과 러시아에 대한 다시 톺아보기를 제기한다. 

기실,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경험하면서 구소련의 현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됨에 따라 20세기 냉전체제가 스러지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질서로 재편된다. 구소련의 몰락과 러시아의 출현은 더는 자본주의와 길항하면서 그 대안의 세계를 창출하고자 하는 사회주의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을 웅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 세계는 신자유주의 사위에 갇힌 채 사안에 따라 국가별 혹은 지역별 협력과 연대를 도모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개별 국민국가의 각자도생을 위한 국제사회의 이합집산을 다양한 국제 협의체 기구의 이름으로 미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서, 국제정치에 문외한인 나 같은 문학평론가에게 구소련의 몰락과 러시아의 출현, 이후 현재의 러시아가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박노자의 ‘전쟁 이후의 세계’는 값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3. 
박노자가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구소련과 현재 러시아에 대한 비판적 성찰 중 개인적으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구소련 시절 스탈린의 통치를 바라보는 박노자의 시선이다. 비록 한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구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출생한 박노자에게 스탈린 집권기에 대한 탐구는 당시 소련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재 러시아를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기 위한 공붓길임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그의 시선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와 반공주의에 바탕을 둔 한국사회의 주류적 시선과 거리를 두는 바, 스탈린 체제에 대한 한국의 통념적 이해가 자칫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와 배타적 억압의 맹목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도록 한다. 

박노자는 이 책 전반을 통해 현재 러시아가 보이는 제국주의적 영토 침략과 그 정치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침공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이를 비판하면서 박노자가 주목한 시기는 스탈린 집권기인데,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출범한 소련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 프롤레타리아 계급 해방을 바탕으로 서방의 자본주의적 공업화와 다른 사회주의적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사회주의적 근대성 추구를 통해 자본주의적 근대와 다른 대안의 세계를 기획 및 실천한다. 스탈린의 ‘5개년 계획’이야말로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 실상이 드러난 유럽 근대문명의 파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근대’를 추구하는 사회경제적 및 역사문화적 방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은 그 정적을 주도면밀히 제거하면서 자신의 정치권력을 공고히 다지는 독재를 강화하였으며, 이른바 ‘대공포 시대(The Great Terror, 1936~1938)’를 통해 소련 공민을 비롯한 소수 민족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자행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와중 유럽에서의 나치 독일과 동아시아에서의 일본 제국에 대한 승리를 거둔 스탈린에게 이러한 치명적 역사의 과오는 전경화(前景化)되지 않는다고 할까. 물론, 스탈린 사후 제20차 공산당 대회(1956)에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집권기에 자행된 강제 노동수용소의 반인간적 폭력과 그 잔혹성 및 스탈린 독재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하지만 스탈린은 구소련과 현재 러시아의 국민에게 ‘독·소 조국전쟁(1941~1945)’에서 승리를 거둔 전쟁 영웅으로 각인돼 있으며, 소련식 사회주의적 근대를 추구한 지도자로서 역사적 영향력을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다. 실제로 “푸틴은 스스로를 레닌이 아닌 스탈린의 계승자로 인식하고 있”(60쪽)다.

박노자는 바로 이러한 점을 현재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에 대한 비판의 맥락으로 연결한다. 푸틴은 스탈린이 개인 독재를 강화하기 위해 국가의 비밀경찰과 지배 관료를 억압 통치하였듯이, 푸틴 자신이 구소련 KGB 요원으로서 그 비밀경찰 권력을 어떻게 하면 더욱 효과적 통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 국민이 자신의 통치에 적극 공모할 수 있도록 이른바 모스크바 중심의 러시아 민족주의를 전쟁의 형식으로 표출한다. 푸틴의 정치적 욕망은 ‘스탈린 제국’으로서 구소련의 영화를 복권시키는 데 있을 뿐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기획하고 실천했던 자본주의적 악무한의 근대와 다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적 근대를 추구하는 게 결코 아님을 박노자는 풍부한 역사 사례와 명석한 사회과학적 시선으로 비판한다. 

4.
박노자의 설득력 있는 비판적 성찰을 대하면서 문득 일제 강점기 소련으로 망명한 조명희를 비롯한 재소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이 겹쳐진다. 일본 제국주의의 파쇼적 억압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소련으로 망명한 조명희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한 중앙아시아로의 고려인 강제이주를 당하기 전 소련식 사회주의적 근대 추구가 지닌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의 세계혁명에 매진한다. 하지만 스탈린의 재소 고려인 강제이주를 통해 알 수 있듯, 1938년 소련 당국에 의해 조명희는 정치적 숙청을 당하고, 고려인 지식인들 상당수도 조명희와 같은 비극적 운명에 처해지는 등 강제이주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인들이 공포·폭압·죽음의 대참사를 겪는다. 이처럼 스탈린의 ‘대공포 시대’는 소수 민족으로서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이루기 위한 세계혁명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 해결을 동반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박노자는 ‘전쟁 이후의 세계’ 곳곳에서, 푸틴이 통치하는 러시아의 어두움에 대한 비판을 하며, 현상적으로 스러진 현실 사회주의가 갖는 ‘대안의 세계’를 향한 과제 해결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아래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기후위기를 비롯하여 첨단 인공지능 과학기술이 일상을 점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점차 악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의 여러 부문의 삶의 실재가 아무리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하더라도 세계의 진보를 향한 열심과 그 실천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책을 덮으며, 자꾸만 눈에 밟힌 대목을 읊조려본다. 

세계의 진보 세력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련 시절 경험의 명암들을 균형적으로 파악하여, 그 긍정적 측면들은 어떻게 살릴 것이고 그 과오들을 앞으로 어떻게 피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입니다. 전 세계적 연대나 사회적 임금(복지비용 등)의 최대화, 완전한 사회적 보장 등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지만, 상명하달식의 집권 정당 영구 독재는 미래 지향적인 정치적 시스템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민주성이 있는 사회주의 혁명, 민주성이 최대화된 비자본주의적 사회 건설이라는 화두는 앞으로도 계속 전 세계의 혁명가들이 고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기후 문제 해결의 차원에서는 아마도 소련을 방불케 하는 계획 경제 역시 필요하겠지만, 이는 철저하게 민주적으로 운영돼야 할 것입니다.(63-64쪽)

위 대목을 두고 갑론을박할 수 있을 터이다. 우리는 일상과 역사의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파천황 같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전횡 속에서 인간과 뭇 존재, 그것의 (비)생명을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죽음의 물신화가 엄습하는 것에 대한 창조적 저항과 응전은 결코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근대와 ‘또 다른 근대’를 향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상상력은 다차원적이면서 중층적으로 그리고 전위적으로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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