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국의 시와 시작 노트] (58) 밤이면 작은 불 켜고

 

밤이면 작은 불 켜고

바다를 향해 앉으면
이름 없는

있었네

수평선 가물가물
물새 한 마리 날려 보내고

밤이면 작은 불 켜고
홀로 참는

있었네

/ 고정국 詩

#시작노트

봄눈 오는 날, 방파제 등대 꼭대기에 빨간 눈 ‘조나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년 전 밤, 항구야경을 찍기 위해 방파제공사장 입구에 들어섰을 때, 발밑에서 파닥거리던 괭이갈매기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낚시꾼이 버리고 간 낚싯바늘이 부리 안에 박혔던 것이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심조심 그 갈매기를 붙잡고 낚싯바늘을 빼려는 순간, 녀석은 목쉰 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머리 위를 맴돌던 열 마리나 됨직한 주변 갈매기들이, 갑자기 나를 향해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머리와 등 쪽에선 피가 흘렀습니다.

낚싯바늘을 가까스로 뽑아내고 녀석을 놓아주었습니다. 인사도 없이 밤 항구 불빛 밖으로 사라져갔던 녀석. 그 후 녀석은, 그곳에 가면 나를 호위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무리지어 살면서도 혼자이고 싶을 때가 많다.”는 녀석에게 ‘조나단’이라는 이름을 달아주었습니다. 

“다른 갈매기는 먹기 위해서 날지만, 나를 만난 후부터는 자기도 날기 위해 산다고…” 그러자 나는 “그 말은  『갈매기의 꿈』의 작가 리처드 버크가, 그의 소설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이 했던 내용이잖아.”라 했습니다. 내 말에는 아랑곳없이, “남들은 밥을 위해 살지만, 당신은 평생 돈도 안 되는 시를 쓰고 있잖느냐, 내가 ‘나’는 목적과, 당신이 ‘시’ 쓰는 목적이 뭐가 다르냐?”라면서 “외로운 자의 눈길은 밖으로 향해 있지만, 고독한 자의 눈길은 안으로 향해 있다”는 내 일기장에 썼던 내용까지 인용해 써먹는 걸 보면, 녀석은 참으로 말이 고팠던 모양이었습니다. “순수한 자의 모습엔 이미 바다의 언어가 담겨있다.”라는 녀석은, “정치인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하지만, 시인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이 한 마디의 바다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한 달 넘게 한 곳에서 나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말을 마친 ‘조나단’은 눈발 흩날리는 노을 바다 쪽으로 인사 없이 사라져갔습니다, 녀석은 아직도 혼자였던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밤이면 작은 불 켜고 홀로 참는 섬”의 의미를 녀석도 눈치 챈 것만 같았습니다. 

홀로 나는 새에게는 필시 남다른 생각이 있을지니…


#고정국

▲ 1947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 출생
▲ 1972~1974년 일본 시즈오카 과수전문대학 본과 연구과 졸업
▲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 저서: 시집 『서울은 가짜다』 외 8권, 시조선집 『그리운 나주평야』.  고향사투리 서사시조집 『지만울단 장쿨레기』, 시조로 노래하는 스토리텔링 『난쟁이 휘파람소리』, 관찰 산문집 『고개 숙인 날들의 기록』, 체험적 창작론 『助詞에게 길을 묻다』, 전원에세이 『손!』 외 감귤기술전문서적 『온주밀감』, 『고품질 시대의 전정기술』 등
▲ 수상: 제1회 남제주군 으뜸군민상(산업, 문화부문),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유심작품상, 이호우 문학상, 현대불교 문학상, 한국동서 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등
▲ 활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회장 역임. 월간 《감귤과 농업정보》발행인(2001~2006), 월간 《시조갤러리》(2008~2018) 발행인. 한국작가회의 회원(현).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