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탈패 제주두루나눔 고문)

제주도는 지난 2월 22일부터 3월 3일까지 아랍에미리트 도시 ‘샤르자’에서 열린 ‘제21회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 행사에 주빈으로 초청받았다. 제주에서는 제주도립무용단, 북촌리 어촌계 해녀, 놀이패 한라산, 제주 두루나눔 등이 참석해 제주 예술과 문화를 알렸다. [제주의소리]는 샤르자 일정에 동행한 제주두루나눔 심규호 고문의 방문기를 싣는다. 제주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지역에서 보고 느낀 문화의 차이, 다양성에 대한 고찰을 공유해본다. / 편집자 주


낯설음의 연유

그곳은 그리 먼 곳이 아닐뿐더러 낯선 지역 또한 아니다. 다만 가보지 못했을 따름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벌어온 달러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냈고, 여전히 그들의 땅에서 나온 기름으로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신문지상이나 텔레비전에서 지금도 여전히 뽀얀 포연 속의 그곳 사진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들 대부분은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종교에 관심이 없으며, 그들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에 무심하다. 세계사는 동양사와 서양사로 나뉘지만,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는 제외되어 있다. 그냥 방계로만 등장할 따름이다. 사실 우리는 세계화를 목청껏 외쳐대지만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참으로 빈약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사는 주요 과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샤르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냐고 탓할 일이 아니다. 사실 그들도 우리를 만나면 첫 번째 인사가 ‘니하오(你好)’이다. 정색하고 ‘한국인이야’라고 외칠 일일까? 우리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곳을 우리는 중동(中東), 즉 미들 이스트(Middle East)라고 부른다. 하지만 아랍계, 이란계, 튀르키예계, 유대계 등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곳이니 아랍과 등치되지 않는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천주교 등 온갖 종교도 공존하고 있으니 이슬람교만 상기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가 사는 곳이 극동(Far East)이란 사실을 가끔 까먹는다. 지금은 근동이나 원동이란 말도 모두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중동이라고 부른다. 왜? 무관심의 소치이다. 사실 중동은 아시아 서남부, 아라비아 반도 주변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동북부까지 모두 포함한다. 아마도 중동이 그들이나 우리나 모두 누군가(영국인)에 의해 동과 서로 나눠지면서, 다만 다른 이들의 관점에서 조금 가깝고, 먼 차이만 있는 같은 아시아의 나라들이 되고 말았지만, 세계지도는 언제나 자국이 중앙에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시아는 지구에서 가장 크며, 인구도 가장 많지만 오랜 세월 변방이었으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제국주의의 희생犧牲이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부터 시작하자는 뜻이 아니다. 함께 굴기崛起하자는 다짐도 아니다. 다만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행히 아랍, 이슬람, 중동에 관한 책들이 적지 않게 나와 있다. ‘우리가 모르는’, ‘한눈에 꿰뚫는’, ‘우리가 오해하는’, ‘한국인이 궁금해 하는’ 등 한정어가 붙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번 글을 통해서도 천천히 ‘꿰뚫어’, ‘오해’를 불식하고, ‘알게’ 될 것이다.

샤르자를 포함한 아랍에미리트 주요 도시 지도. / 사진=구글 지도
샤르자를 포함한 아랍에미리트 주요 도시 지도. / 사진=구글 지도

아랍에미리트(UAE) 연합

인천에서 출발하여 두바이 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곧 바로 버스를 타고 샤르자로 갔다. 가까운 거리라는데,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듣자하니 물가 비싼 두바이 대신 샤르자에 살며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에미리트(emirate)는 에미르(emir, 또는 아미르), 즉 사령관이나 총독, 제후가 다스리는 땅이란 뜻이다. 우리는 일정한 지역의 제후라는 뜻에서 토후국土侯國이라고 부르는데, 군장국君長國이나 아미르국과 같은 말이다. 7~800년 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아라비아반도, 이베리아반도, 중앙아시아와 인도, 오스만제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토후국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랍에미리트 연합과 쿠웨이트, 카타르, 아프카니스탄에만 존속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연합은 수도이자 정치 중심지로 대통령이 살고 있으며 토지가 가장 넓은 아부다비, 경제 중심지이자 대대로 부통령을 맡고 있는 두바이, 문화도시 샤르자, 라스 알카이마, 푸자이라, 움 알쿠와인, 아지만 등 7개 토후국의 연합국이다. 

아랍에미리트 연합의 국기에서 우리는 그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홍색, 녹색, 백색, 흑색의 직사각형이 조합된 국기는 7개 연합 토호국의 색깔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흑색의 과거의 압정, 적색은 성전에서 흘린 피, 백색은 청정함, 그리고 녹색은 풍요로운 국토를 의미한다. 흑색과 홍색이 과거라면 백색과 녹색은 현재이자 미래인 셈이다. 사막과 낙타의 나라에서 원유와 세계무역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는 곳이다. 제주와 어떤 관련을 맺을 것인가? 관계를 맺으려면 서로 알아야 한다. 아마도 이번 공연과 전시는 그 첫걸음이 아닐까?

아랍에미리트 모스크를 찾은 제주 두루나눔 회원들. / 사진=심규호
아랍에미리트 모스크를 찾은 제주 두루나눔 회원들. / 사진=심규호
샤르자 국립박물관에 설치된 별자리 전시물. / 사진=심규호
샤르자 국립박물관에 설치된 별자리 전시물. / 사진=심규호

해녀와 진주

사우디아라비아, 예맨, 오만 등이 자리한 아라비아반도의 왼쪽은 홍해, 오른쪽은 페르시아만이다. 홍해는 세계 해상 무역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수많은 선박이 오가는 해상무역로이자, 현재는 예맨 반군에 의해 걸핏하면 선박 나포가 자행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반면에 페르시아 만의 바다는 아라비아 제국의 국민들이 즐겨 찾는 해안 휴양지이자 한 때 진주 조개잡이로 유명했던 화평한 바다이다. 

조개가 체내에 들어온 이물질을 견뎌내기 위해 탄산칼슘으로 감싸면서 만들어낸 무기물 결정체가 바로 진주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인들은 병든 조개가 진주를 낳는다고 여겼다. 방병성주蚌病成珠란 사자성어는 여기에서 나왔다. 성분은 조개와 다를 바 없지만, 다양한 색깔(주로 흰색)로 부드럽고 광택이 아름다워 광물질이 아님에도 오랜 세월 보석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페르시아 만의 진주는 오랜 세월 유럽 각국으로 팔려나가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포르투갈, 영국을 비롯한 해양 제국이 눈독을 들였다. 이른바 대항해 시대에 그곳은 첫 번째 공격을 받은 곳이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열강제국의 먹잇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와보니 진주는 가뭄에 콩 나듯한 귀한 물건이고, 이외에 있는 것이라곤 사막과 군데군데 관목, 대추야자, 그리고 낙타가 전부였다. 뭔가를 빼앗으려 해도 가져갈 것이 없으니 김이 샌 꼴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미키모토 코우키치(御木本幸吉)가 양식 진주 개발에 성공하면서 명성 자자하던 페르시아만의 오리엔탈 진주도 상업성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제주 북촌 해녀 삼촌들이 샤르자에서 ‘뒷개 할망 춤추다’를 공연한 것은 바다가 삶의 터인 이들의 애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제주 두루나눔이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 초청 공연을 가지고 있다. / 사진=심규호
제주 두루나눔이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 초청 공연을 가지고 있다. / 사진=심규호

히잡과 베일

샤르자에서 공연하면서 관객석이 남성과 여성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심지어 샤르자의 또 다른 도시 알 하이드와 칼바에서 순회공연을 할 때는 같은 장소에서 한 번은 남성을 위해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시간차를 두고 연희해야만 했다. 샤르자는 아랍에미리트 연합 7개국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곳이다. 그래서 내심 걱정이 없지 않았다. 

탈춤은 본시 해학과 풍자가 근간인데, 그 중에서도 처첩간의 갈등과 풍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이곳은 ‘첩’에 대한 관념이 없을뿐더러 일부다처제가 허용(무바흐Mubah)되는 곳이다. 더군다나 입춘굿 탈놀이에는 ‘백장동티’라고 하여 대낮에 겁탈하는 대목도 나오는 데 어찌할 것인가? 그냥 부딪쳐 볼까? 예술은 예술대로, 관습은 관습대로! 

그러나 오산이었다. 풍물이 울리면서 관중들도 들썩거리는 모습에 지켜보는 필자 또한 흐뭇했는데, 하르방이 각시를 범하고, 임신한 각시가 할망의 도움으로 길가에서 아이를 낳는 장면에 이르자, 왠지 ‘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할미가 태어난 아이를 들고 관객들에게 보여주면 하르방과 같은 탈을 쓴 갓난아이를 보며 웃음이 터져야 하는데. 공연이 끝나고 때마침 자리한 아랍에미리트 연합 주재 한국 총영사를 만나 물어보았다. 자기는 재미가 있지만, 이곳 분들은 아무래도 어색할 것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최 측에서 약간 수정이 가능하냐는 전갈이 있었다. “아이를 길거리에 낳는다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과 더불어. 이유가 예상 밖이었다. 이후 영감, 할미 과장을 아예 빼버리고 농사 과정에 보리뿌리점 대목을 보강하고, 대금 산조와 풍물, 그리고 제주민요로 대체했다.

제주 두루나눔이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 초청 공연을 가지고 있다. / 사진=심규호
제주 두루나눔이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 초청 공연을 가지고 있다. / 사진=심규호
현지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 / 사진=심규호
현지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 / 사진=심규호

이슬람교를 생각하면 몇 가지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여성들이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기 위해 쓰는 히잡이다. ‘꾸란’에 따르면,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남성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쓴다. 물론 남성 역시 여성에게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아야 한다. 전신을 감싸는 의상은 아랍어로 아바야, 영어로는 차도르라고 한다. 이외에도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눈만 빼고 얼굴까지 가리는 것은 ‘니깝’, 그리고 아예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가리는 것은 ‘부르카’라고 한다. 샤르자의 경우 히잡부터 부르카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차도르에 히잡을 쓰고 마치 안경이나 눈 주위만 가리는 가면을 쓰기도 했다.

혹자는 이러한 형태의 의복이 여성들의 자의식과 별도로 대외적인 통제 기제로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문화상대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경우는 그것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 이슬람을 신봉하는 여성들의 대다수 의견을 반영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부의 시선을 막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내부의 본질을 지킨다는 의미이니 더욱 그러하다. 사실 우리도 여전히 베일을 쓴다. 신부의 면사포, 천주교의 미사포가 그러하다. 여성의 지위가 여전히 낮은 우리나라에 비해 그들의 국회의원의 절반은 여성이라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현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여성 리포터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녀는 정중히 사양했다. 순간 부끄러웠다. 내 무지가. 

앗살라무 알라이쿰, 그리고 인살라

안녕(安寧), 굿모닝, 콘니치와(今日は), 니하오(你好) 등은 모두 오늘도 좋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무슬림의 인사는 일반적으로 ‘앗살라무 알라이쿰’이다. 당신에게 알라의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상대를 위한 기도의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라무’는 히브리어 ‘샬롬’과 같은 뜻이니, 여기서도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모두 동일한 신을 믿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대인에겐 민족의 신인 야훼이자 엘로하(여호와)이고, 무슬림에겐 알라인데, 모두 아브라함 계통에서 숭배하는 유일신이자 창조주이다. 

탈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무대에서 짧은 인사와 소개의 말을 했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그러면 관객석에서 예외 없이 화답 소리가 들린다. “와 알라이쿰 살람.” 당신에게도 신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바란다. 괜히 기분이 좋았다. 이슬람이란 말은 아랍어로 신에게 복종한다는 뜻이다. 알라에게 복종함으로써 얻는 마음의 안식과 평온함이 바로 무슬림의 인사말인 ‘앗살라무 알라이쿰’이 아니겠는가? 언어가 때로 존재를 지배한다면, 무슬림에게 알라가 절대적인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신의 뜻이라면 무엇인들 하지 못할 것인가?

제주 두루나눔이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 초청 공연을 가지고 있다. / 사진=심규호
제주 두루나눔이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 초청 공연을 가지고 있다. / 사진=심규호
현지 학생이 꿩 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사진=심규호
현지 학생이 꿩 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사진=심규호

인샬라는 바로 ‘신의 뜻대로’라는 뜻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긍정과 낙관, 여유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핑계, 체념, 심지어 무관심과 방관을 의미할 수도 있다. 만약 신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신의 뜻대로’가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마지막 날 두바이에서 이른바 ‘아인 두바이(두바이의 눈)’이란 대관람차를 구경했다. 그곳에 가면 혹시 페르시아 만의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주메이라를 볼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관람차는 운행 정지, 우리 일행은 바다의 물결을 가르며 달려가는 모터보트와 러시아의 부호들 소유라는 요트만 구경했다. 우리나라 건설회사에서 만들었다는데 완공한 후 지반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해 운행을 정지했다고 한다. 지금 소송 중이라는데, 이것도 ‘인샬라’일까?    

풍물과 알 아얄라 

샤르자는 아랍지역의 문화수도라고 칭해질 정도로 오래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제21회 샤르자 문화유산의 날 기념 공연장이 바로 샤르자 문화유산 지구였다. 모스크와 박물관, 샤르자의 옛 건축물, 그리고 시장과 상점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저녁 무렵이면 특히 아이들을 대동하고 적지 않은 이들이 방문했다.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적지 않았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유네스코가 세계의 교육, 과학, 문화 보급과 교류를 위해 설립된 유엔의 전문 기구임을 새삼 상기했다. 

그곳 거리 공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추는 춤이었다. 양옆으로 20여 명이 늘어서서 허리를 굴신하거나 앞뒤로 오가면서 추는 춤, ‘알 아얄라(Al Ayala)’였다. 

춤을 추는 남자들은 비교적 격식을 갖춘 흰색 의상 칸두라(평복은 함다니야)를 입고 머리에 터번처럼 생긴 ‘구트라’를 두르고 ‘아갈’이라는 검은 링으로 장식했다. 일정한 리듬의 북소리와 용맹과 기사도를 주제로 한 고대 베두인의 시(나바티) 구절을 읊는 창자의 노래에 맞춰 얇고 긴 대나무 지팡이를 든 이들이 한 손든 지팡이를 상하로 흔들고 다른 한 손은 옆 사람의 어깨를 붙잡은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아랍 전통 춤 '알 아얄라'를 추는 남자들. / 사진=심규호
아랍 전통 춤 '알 아얄라'를 추는 남자들. / 사진=심규호
아랍 전통 춤 '나샤트'를 공연한 여자아이들. / 사진=심규호
아랍 전통 춤 '나샤트'를 공연한 여자아이들. / 사진=심규호

일정한 리듬감과 내용은 알 수 없으되 왠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아랍어의 노랫가락에 절로 어깨가 들썩이며 몸이 움직였다. 그 옛날 베두인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 하니 지팡이는 화살이나 칼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때로 두 세 명이 총을 들고 나와 의장대처럼 돌리고 던지고 묘기를 부렸다. 근처 아이들도 이를 따라했다. 우리의 농악도 전투의 형식을 따른다는 설이 있다. 샤르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칼리나 알 하이드의 공연장에서도 똑같은 춤을 추고 있었다. 아랍에미리트 연합 전역의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연희하고 전수하면서 2014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남성의 춤에 알 아알랴가 있다면 여성의 춤으로 나샤트(naashat)가 있다. 칼리지(Khaleegy) 헤어 댄스라고도 하는데, 칼리지는 걸프(만灣의 뜻)의 뜻이다. 바다와 물, 물결, 그리고 풍요를 상징한다. 4명 이상의 여성이 화려한 자수 의상을 입고 전통 북과 탬버린처럼 생긴 악기의 리듬에 맞춰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좌우, 앞뒤로 흔들며 마치 바다의 물결처럼 흐르고 넘치고 휘돌았다. 그네들의 손은 무언가 바다의 생물을 표현하는 듯했다. 특히 아이들의 나샤트는 마치 어린 천사들이 강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샤르자에서 제주 두루나눔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심규호
샤르자에서 제주 두루나눔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심규호

샤르자에서 춤추기

제주는 여러 나라, 도시들과 우호교류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한 우호이고 교류인지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른다. 처음부터 관방의 것으로 정해졌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류의 목적이 마치 우호가 아니라 상호 이익에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교류는 잦으면 잦을수록 좋다. 교류는 보다 많은 이들이 서로 오갈수록 좋다. 다만 이해의 폭이 그만큼 따라서 넓어져야만 한다. 당연히 이해의 시작은 앎이다. 

샤르자는 낯선 곳이다. 하지만 세상에 낯설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우호관계는 바로 이런 낯섦을 해결해주는 방책이 되어야 한다. 언어도 풍습도 낯선 샤르자에서 돌아와 자꾸만 그곳이 떠올랐다. 그래서 보다 많은 책을 읽고 알고 싶었다. 샤르자에서 춤추기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낼 모레 그곳에 함께 갔다 온 이들과 만난다. 샤르자를 그곳 사람들을, 그곳 춤을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움과 보고픔을 함께 나누며. 이번 행사를 위해 애쓴 이들을 다시 기억한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한 제주도청 대외협력비서관의 말이 인상적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많이 배웠다.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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