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문제연구소, 4.3활동 무조건 덧칠…제주경찰청 광범위한 ‘사상검증’ 드러나

4.3에 논의에 대한 금기를 깰 것을 주장했던 현기영 한국문예진흥원장의 97년 한국일보 칼럼을 ‘반정부’로 규정했던 공안문제연구소가 언론사 칼럼뿐만 아니라 각종 서적과 강연, 노래, 시민사회단체 활동보고서 등에 이르기 까지 사회전만에 걸쳐 사상검증을 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전통적으로 사찰과 감시, 사상검증을 해 왔던 국정원과, 기무사. 경찰청 보안국 뿐만 아니라 제주지방경찰청도 도내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해서 광범위한 ‘사상검증’을 해 왔던 사실이 드러나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 경찰대 부설기관인 공안문제연구소가 열린우리당 최규식 의원에게 제출한 8만여건의 사상검증 목록을 입수, 10월 26일자로 단독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공안문제연구소는 기무사와 경찰청 본청, 각 지방경찰청으로부터 의뢰받은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 사상 검증을 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시사저널이 8만여건의 사상검증 목록 중 공개한 210여건의 목록에는 제주와 관련된 목록들이 일부 포함돼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공안문제연구소가 사상검증을 한 제주관련 목록은 4건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4건 중 3건은 4.3관련 목록이었으며 나머지 한 것은 전교조 제주지부의 사업계획으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같은 문건을 사상검증 의뢰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공안기관들의 사상 검증이 깊숙한 부분까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같은 사상 검증은 과거 독재정권 또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뿐만 아니라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에도 이뤄졌던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을 상대로 한 공안당국의 사상 검증은 사회의 민주화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사저널이 단독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미 ‘제주의 소리’가 보도(2004년 9월 19일)했던 현기영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이 지난 97년 12월 한국일보에 쓴 칼럼(아침을 열며) ‘‘4·3… 아직도 금기인가'가 반정부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경찰청, 4.3연구소 ‘4.3 53주년 학술대회’ 사상검증 도와 위에 올려놓고 재단
 
또 지난 2001년 제주4.3 53주년을 맞아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제주4.3 제53주년 기념 학술대회’도 사상검증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제주경찰청 보안과가 의뢰한 이 학술대회는 이제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인 강창일 의원이 4.3연구소장을 맡아 ‘폭력의 역사는 청산될 수 있는가'를 주제로 세계 각국의 과거청산 사례와 4.3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과정을 고찰한 명실상부한 학술대회였다.

이 행사는 제주대 유철인 교수(사회학과)가 사회를 맡아 제주출신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씩가 ‘재일동포와 4.3’을 주제로 초청강연을 했으며, 김창록 교수(부산대), 이한규 정치학 박사(숭실대 강사), 김현숙 교수(미국 매릴랜드주 위튼 컬리지), 정근식 교수(전남대), 서중석 교수(4.3중앙위원·성균관대), 고호성 교수(제주대 법대), 그리고 현재는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인 임종인 변호사 등이 참석해 주제발표와 토론을 벌인 학술대회였다.

그러나 제주지방경찰청 보안과는 4.3의 진상규명과 도민의 명예회복을 위해 4.3 위령제 행사로  마련된 이 학술대회조차 사상검증의 ‘칼 날’을 들이댔다.  이 목록에는 공안문제연구소가 이 학술대회에 대해 ‘기타’로 분류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판정을 내렸는지는 불명확하다.

한국사회 대표적 지식인 등이 참여한 ‘4.3 범국민위’는 ‘좌익’으로 분류

또 이보다 앞서 4.3 50주년을 맞은 지난 97년 민족사 바로 세우기와 민족의 화해, 통일을 위해서는 4.3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제주4.3 50주년 기념사업추진 범국민위’도 사상검증을 시도해 ‘좌익’의 딱지를 붙였다.

4.3 범국민위원회에는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이세중 전 대한변협 회장이 고문으로 참가했으며, 리영희 한양대 석좌교수, 백낙청 서울대 교수, 고은·신경림 시인, 김창국 전 서울변협 회장, 한승헌 감사원장 등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수십명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또 상임대표로는 김찬국 상지대학 총장, 김중배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공동대표, 강만길 전 고려대 학교 명예교수, 정윤형 전 홍익대 법정대학장 등이 함께한 명실상부 한국의 지식인 사회를 대표한 범국민적 조직이었다.

그러나 공안문제연구소는 이 같은 4.3 범국민위에 대해서도 여지없이 ‘좌익’ 판정을 내렸다.

즉 기무사나 경찰은 4.3문제에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마녀사냥에 들어갔으며, 그 때마다 공안문제연구소는 ‘반정부’와 ‘좌익’으로 매도해 왔음이 드러났다.

이 보다 더 어이가 없는 사례는 지난해 3월 제주경찰청 보안수사대가 전교조 제주지부의 2003년 사업계획안에 대해서도 사상검증을 의뢰했다는 점이다.

참교육 활동 펼친 전교조 제주지부 2003년 사업계획서는 ‘찬양동조’로 덧칠

전교조 제주지부가 대의원 대회에서 확정한 2003년 사업계획은 상반기 사업으로 ▲외국인학교 등 교육시장 개방저지 ▲학생생활기록부 전산화(NIES) 반대 ▲참교육실천 활동강화 ▲조합원이 참여하는 단체교섭이 포함됐으며, 그리고 하반기에는 ▲단체교섭 이행투쟁 ▲친환경급식조례 제정 ▲반전평화통일 운동 전개 ▲(제주에서 열릴) 남북평화통일축전 참석 ▲이라크파병 반대투쟁 등이 사업계획으로 확정됐다.

그러나 제주경찰청 보안수사대로부터 ‘사상검증’을 의뢰 받는 공안문제 연구소는 전교조의 이 같은 일상활동에 대해서도 ‘찬양동조’ 판정을 내렸다.

공안문제연구소는 공산주의 사상이나 이념·이론 및 전략·전술 내용과 맥락을 같이하면 ‘선전·선동(좌익)’이고, 이를 수용·용인하면 찬양동조(용공)‘으로 분류했다.

제주지방경찰청, 시민사회단체·연구소 등 광범위하게 '사찰·사상 검증' 시도

이에 따라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한국사회의 대표적 인사들이 구성한 4.3범국민위원회는 어느 날 갑자기 공산주의 사상과 이념, 전략 전술과 맥을 같이하는 좌익단체로 분류됐고, 교육공무원들로 참교육 활동을 전개해 온 전교조 제주지부는 공산주의 사상과 이념을 찬양하고 동조한 단체로 자신들도 모른 채 낙인이 찍혀 있었다.

문제는 제주지방경찰청이 그 동안 은밀하게 도내 시민사회단체와 연구소, 학계 등에 대해 사찰을 통해 사상검증을 시도해 왔다는 점에서 이들 단체들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4건은 공안문제연구소가 제출한 8만여건 중 210여건에서만 확인된 것으로 실제로는 제주지방경찰청에서 이들 시민단체와 연구소뿐만 아니라 나머지 단체들과 학술활동, 그리고 지역언론에 대해서도 사상검증을 해왔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제주지방경찰청은 국회에서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4.3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4.3 진상규명 활동에 대해 사상 검증의 칼날을 대 왔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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