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배의 동백꽃 지다 (1)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섬 제주, 정부가 지정한 평화의 섬 제주에 1948년에 피의 참극이 벌어졌다. 현대사 최대 비극인 제주4.3.마을은 불타 폐허가 되고, 곳곳에서 사람이 죽어갔다. 제주도는 어둠에 싸인 죽음의 섬이 됐다. 제주에 신혼여행 온 부부나 수학여행 온 학생들, 관광객 가운데 제주4.3의 비극을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동백꽃지다>는 강요배 화백이 제주4.3의 전 과정을 그림으로 그린 화집이다. 여기에 제주4.3지원단 김종민 위원이 ‘증언’을 덧붙였다. <제주의소리>는 4.3 60주년을 맞아 <동백꽃지다>를 펴낸 강요배 화백과 김종민 위원, 그리고 ‘보리출판사’의 협조를 얻어 이중 일부를 연재한다. <동백꽃지다>는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1일부터 6월 말 까지 전시되고 있다. / 편집자  

 

   
▲ 해방 39.0×55.0cm, 종이·콩테, 1990년 ⓒ 강요배

해방

“해방이 되자 그 환희는 대단했어. 일제 앞장서던 사람들은 쏙 들어가고. 대신 청년들이 나섰지.

“해방이 되자 그 환희는 대단했어. 일제 앞장서던 사람들은 쏙 들어가고. 대신 청년들이 나섰지.

그땐 먹을 것 없어도 신났어. 어느 마을 청년들이 더 싱싱하냐를 놓고 경쟁도 심했지. 심지어 농악 놀이 하는 거 있잖아. 걸궁(건립)이라고. 그 걸궁을 어느 마을 청년들이 더 잘하느냐는 경쟁까지 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축구대회와 기마 경주가 크게 유행을 했어. 경주용 말은 작은 조랑말이 아니라 일본 순사들이 타던 큰 호마였어. 학교 운동장에서 기마 경주를 하던 모습은 정말 대단했지. 자기 마을 청년이 기마 경주에서 이기면 크게 기뻐했고 그게 마을의 자랑이었어. 그때 미군들도 와서 구경했는데, 뭔가를 계속 씹는 거야. 그래서 우리끼리 ‘저놈의 종내기들은 뭘 저리 씹는 거지?’라고 말했어. 그게 껌인 줄은 나중에 알았지.

아무튼 우리 마을 청년들은 싱싱했어. 그런데 싱싱하고 요망졌던 그 청년들은 4.3사건 때 거의 다 죽었어.” (강연화. 2007년 76세. 표선면 가시리)

“혹 내생에 주어진 시안이 많지 않다면 내가 꼭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

   
▲ <동백꽃지다>의 강요배 ⓒ제주의소리
사는 동안 절망의 벼랑 한 발자욱 앞까지 이르는 수가 있다. 20년 전, 거리에는 함성과 최루가스 냄새가 가득했고, 30대 후보의 나는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심신이 극도로 쇄약해졌다.

“혹, 내 생에 주어인 시간이 많지 않다면 내가 꼭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 그때에 이르러서야 나는 ‘4.3’을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공포의 장막, 저 너머에 있는.

내 고향 제주, 그 섬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폭압적 살인 기제의 작동, 매몰 협박 감시에 의한 인멸과 봉인, 살아남은 사람들의 울분과 눈물, 그리고 침묵. 그러나 그것은 내 일천한 인생 경험, 짧은 호흡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역하는 불가해하고도 깊은 심연을 이우며 무겁게 흐르고, 나는 단지 그 표면을 보는 게 고작이었다. 곡해하고 오인하다 못해 심지어 훼손하지나 않을까 몹시 걱정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도착된 언설들이 4.3 혼령과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으니,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걷어 내는 일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나 천하에 가득할 것이다. 절망을 딛고 올라서는 곳에, 새봅의 꽃러럼 생이 있는 게 아닐까? ('그린이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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