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밀항이야기(6)] 영철이 ①

▲ 산지물과 측후소(왼쪽)와 남수각 부근 모습(오른쪽). 산지물에서 물긷는 여인과 물지게를 진 사람들 모습. 뒤쪽이 현재의 기상청 건물이다. 냇가에 집이 지어져 있고 임시로 만든 줄에는 빨래가 걸려 있다. 사진출처=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제주의소리


영철이 이 녀석 또한 그 아방에 그 아들이다.
제주도에서 대학 다니다가 군대를 갔다 와서 복학을 하려고 했다.
복학해서 졸업을 해도 남보다 다른 실력이 하나쯤 있어야 취직하기가 쉽다.

일본 오사까(大阪)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어학연수 1년간만 하고 싶다고.
학비는 자기가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 공부할 것이고, 또 아버지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방을 얻어 살겠다고.그 험상스러운 일본어머니도 선뜻 승낙을 한다.

학생비자를 받고서, 누구나 타고 싶은 외국행 비행기를 탔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을 들어서니 면세점이다. 한국에서는 가지고만 있어도 잡아간다는 양담배, 이름도 모르는 양주가 즐비하다. 가지고 있는 돈이 별로 없었지만, 내가 언제 양담배 양주 사봐?

오사까에 들어와서 우선은 아버지 집에 들어갔다. 험상궂은 일본어머니도 그런대로 비위 맞출만하다. 한국말 모르는 일본 동생들도 형님, 오빠 하면서 제법 말을 부쳐온다. 생각보다는 살만하다.

오기가 무섭게 불고기(야기니꾸)집 아르바이트를 구해 들어갔다.
시간당 700엔의 아르바이트 임금이지만, 그런대로 할 만하다.
낮에는 학교엘 가고, 저녁 하학길에 야기니꾸집에 들어가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5시간은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어서, 한달 9만엔 정도는 돈을 만들 수 있다. 일본돈 9만엔을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60여만원의 돈이다. 당시로는 한국에서 대기업 과장급 월급 수준이다. 학교 다니면서 과장급 월급 돈 버니. 일본이 좋긴 좋구나, 라는 생각이다.

 

▲ 북수구 무지게 다리. 북수구 곧 지금의 용진교 남쪽 부근에 있었던 무지개 다리. 다리 사이로 보이는 집들이 있는 곳이 '졸락코지'다. 사진출처=사진으로 엮는 20세기 제주시 ⓒ제주의소리
그런데 학교 동급생들의 모습이 이상하다.
돈 쓰는 짓과, 노는 짓들이 심상치가 않다.
한국에서 돈 불러서 쓰는 것 같지는 않은데 돈 씀씀이가 좋고, 시간만 나면 빠징꼬 기계앞에 앉아 있다.

가만히 보니, 이 친구들, 야기니꾸집 같은 곳에서 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술집에서 웨이터를 한단다. 한 달에 20만엔 이상을 받는단다.
자기 아르바이트의 2배 이상의 월급을 받는 것이다.
같은 동급생에게 부탁을 해 본다. 나도 한자리 부탁한다고.
쉽게 자리가 났다. 술집 웨이터 이다.
오사까 미나미(南)에 있는 룸 살롱에서 웨이터를 하는 것이다.

한국 아가씨들이 10명이상 되는 술집에서 웨이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술이나 가져다 주고, 또 잔심부름이나 하고, 들어오는 손님, 나가는 손님에게 인사만 잘 하면 된다.
야기니꾸집보다 일은 더 편하지만, 그 술집에서 제일 밑바닥 일이며, ‘참 더럽네’ 소리가 저절로 난다.

이제 스무살쯤 되는 어리디 어린 아가씨가 자기 동생 부르듯이 불러서 오만 잔심부름 다 시킨다. 담배 사오라는 건 심부름도 아니다.
심지어는 편의점에 가서 무슨 표, 생리대 사오라는 심부름까지 시킨다.

술집에서는 아가씨가 웨이터보다 위이다. 또 아가씨 중에는 자기 손님 많이 데려와 매상 많이 올려주는 아가씨가 더 위이다. 매상 많이 올려주는 아가씨는 주인도 굽신굽신한다. 이 세계에선 연령이 필요없다.

돈 잘 쓰는 봉 하나 잡고서 자주자주 술집에 와서 매상 많이 올려주는 그 손님이 최고요, 그런 손님 확실히 잡은 아가씨는 이 세계에서 여왕이다.

그 봉 손님이 찾아와서 그 옆에 앉는 시간은 여왕마마 인 것이다. 주인도 그 아가씨에게 굽실굽실하는 판이니, 저 밑에 있는 웨이터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부르면 총알같이 달려가, 무릎을 꿇어서 명령을 받들어야 한다.
그런 아가씨가 "저 웨이터 안되겠어" 한마디에 그날로 목이 도망가고 만다.
마치 조선시대에 궁 안에 왕이 건드린 여자가 있고, 내시가 있는 것처럼.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익숙해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무엇보다도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2배 이상 더 많은 돈이 되었다. <제주의소리>

▲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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