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청 앞 '미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청소년들에게 묻다

"촛불집회 참석하겠다는 친구들 꽤 많아"

며칠 전 학원 수업시간 도중 고3학생들이 나누는 얘기를 엿듣게 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를 화두로 한 여학생이 대화를 시작했다.

"정부가 광우병 위험성을 알면서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더라."

그러자 마치 토론을 준비나 한 듯이 다른 학생이 말을 받았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에게 독도 영유권도 양보할지도 몰라."

진지한 대화 끝에 화제는 곧바로 촛불문화제로 이어졌다.

"다음 6일에 촛불집회가 예정되었다는데, 거기 갈 거니?"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넌 어쩌려고?"
"그날이 시험이라서 우리 학교는 일찍 끝날 거야. 거기에 참석하겠다는 친구들도 꽤 많아. 난 시험공부를 많이 못해서 갈 수 없을 것 같아."

학생들 대화 속에 내가 끼어들었다.

"너희들 촛불집회 열린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니?"

학생들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비롯해서 이명박 정부의 각종 정책을 비난하는 내용들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와 인터넷을 타고 학생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내용을 주고받는 가운데 촛불집회에 관한 정보들도 당연 공유되고 있다고 했다.

▲ 촛불문화제 제주시청 앞 어울림마당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장태욱
▲ 촛불문화제 제주시청 앞 어울림마당에서 5월6일 8시부터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장태욱
▲ 촛불문화제 촛불문화제의 제목이 <미친 소는 너나 처먹어라>였다. ⓒ 장태욱
5월 6일 저녁 제주시청 앞 어울림마당에서 8시부터 '미친 소는 너나 처먹어라'라는 제목의 촛불문화제가 '이명박탄핵투쟁연대' 주최로 열리고 있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바람 한 점도 없어서 촛불을 밝히기에는 더 없이 좋은 맑은 날씨였다.

문화제가 열리는 제주시청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행사장 주변에 경찰관 몇이서 교통 흐름을 정리하고 있었다. 행사장 한 쪽에는 전교조 제주지부에서 준비한 광우병과 관련한 패널이 전시되어 있었다.

▲ 전교조 제주지부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어울림마당 주변에 설치한 패널이다. ⓒ 장태욱
▲ 한 청년이 번쩍 들고 있던 패널이다. 한 코미디물을 패러디해서 만든 내용이었다. ⓒ 장태욱
모인 시민들 중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절반에 이르는 것 같았고,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도 상당수 보였다. 삼다의 섬이라서 그런지 청소년들은 대부분 여학생들이었다. 저마다 손에 들고 있는 촛불이 행사장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최근 일부에서 집회의 합법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을 의식해서일까? 문화제 주최 측은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구호 제창도 없었고, 박수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 어린이 우리 어른들은 이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낼 수 있을까? ⓒ 장태욱
▲ 문화제에 참석한 일가족 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행사에 참여했다. 이 정부는 자녀의 건강을 걱정하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는가? ⓒ 장태욱
무대에서는 초청된 분들의 인사말과 최근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의 표정은 진지함 그 자체였다.

비좁은 행사장에서 끝까지 촛불을 들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여중생에게 문화제에 참석하게 된 계기와 소감을 물었다. 그 학생은 티없이 맑은 얼굴에 활짝 웃음을 띠면서 발랄하게 대답했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가 수입되면 그게 우리 식탁에 오를 수도 있잖아요. 그럼 그게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텐데, 어른들이 좀 나서서 막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음에 촛불 문화제가 또 열린다면 그 때도 참가할 거예요." (조연희, 중2)

▲ 문화제에 참석한 학생들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행사장을 찾았다. ⓒ 장태욱
▲ 문화제에 참석한 여학생. 매우 진지하다. ⓒ 장태욱
"민주화 이룩했다는 어른들이 지금은 왜 누가 나서주기 바라나"

근처에 있던 여고생들의 대답은 사뭇 진지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인데, 정부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우기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왔어요. 부모님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셨어요. 그리고 정부가 건강보험도 민영화 시킬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그럼 가난한 사람은 치료도 제대로 못 받는 거 아닌가요?" (홍연주, 고1)

"광우병은 10년 정도 몸에 잠복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만약 올해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내가 먹고 그 병이 잠복했다가 10년 후 27살에 발병한다면 난 공부만 하다가 삶이 좀 편해질 만하면 죽게 되는 거잖아요.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전해란, 고1)

"우리는 심각해서 여기나왔는데 정작 어른들은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실망스러워요. 대통령은 어른들이 뽑았잖아요. 대통령 잘 못 뽑은 것은 어른들인데, 우리에게 짐을 넘기는 것 같아 속상해요. 과거에는 어른들이 나서서 민주화도 이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왜 다 누가 나서서 해주기를 바라는지 모르겠어요." (허민영, 고1)

▲ 문화제에 참석한 학생들 모두 진지한 표정이었다. ⓒ 장태욱
어른들이 대통령 잘 못 뽑아놓고 왜 우리가 거리로 나오게 만드느냐는 질문을 받고나자 난 목이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지금 청소년들 사이에 불붙듯 번지는 '반 이명박' 열풍을 뭔가 '불순한 세력의 정치적 의도'탓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내 눈에 이 청소년들에게서는 무책임한 어른들의 안일함에 경종을 울리는 것 이외에 어떠한 의도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순진한 어린 학생들까지도 색안경 끼고 보려는 정부의 관성적 눈놀림이 '불순한 의도'라면 불순한 의도다.

청소년들이 사회에 무관심하고,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들은 어엿한 시민으로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이들이 책임감 있는 시민들로 자라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이 이명박 정부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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