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훈 전 취재반장이 말하는 4.3과 언론

▲ 제주도기자협회가 9일 '제주 4.3과 제주언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제주의소리
“제주4.3위원회는 과거사의 진실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어떻게 미래를 향한 밑받침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이다. 특히 지역사회의 시민운동과 언론, 지방자치단체, 국가적 진실규명활동이 유기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과거청산의 전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참여정부에서 과거사 위원회 활동에 대하여 종합 평가한 <과거사 정리 정책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이 보고서는 4‧3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활동을 성공적인 사례로 들면서 그 성공 이유로 지역 시민운동, 지역 언론, 지방자치단체, 국가적 진실규명활동 등 네 가지 축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이룩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한 축에 ‘제주언론’이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임은 지난 20여년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지역언론의 역할 중 지역현안에 대한 문제와 진실찾기에 있다고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20여년 넘도록 이어져 온 제주언론의 ‘43의 진실찾기’와 ‘명예회복운동’은 다른 과거사에 비교해 볼 때 매우 드문 케이스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제주4.3에서 제주언론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또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새롭게 펼쳐지는 4.3정국에서 제주언론에 부여된 역할은 무엇인가.

▲ 제주도기자협회가 9일 '제주 4.3과 제주언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제주의소리
제주신문과 제민일보에서 4.3취재반장을 맡아 10년 가까이 제주4.3 장기연재를 이끌며 제주4.3 진실찾기에 앞장 서 온 양조훈 제주4,3수석전문위원이 제주도기자협회(회장 김석주 기자) 주최로 9일 오후 제주시 미래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4.3과 제주언론’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10년간의 4.3취재 이야기와 4.3 60주년 이후 언론의 역할을 당부했다.

은폐된 역사 제주4.3의 진실을 우리 손으로 밝혀내자는 결의 아래 제주신문 4.3취재반이 출범한 것은 1988년 3월 10일. 신문사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4.3을 정면으로 파헤쳐 언론의 사명을 다하자는 원칙론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진통 끝에 ‘4.3취재반’을 출범했고, 1년여의 취재를 거쳐 1989년 4월 3일 제주신문에 ‘4.3의 증언’이란 제목으로 첫 연재물을 내보냈다. 이 기획물은 그해 12월까지 57회가 연재됐으나 이른바 ‘제주신문 사태’를 만나 연재는 중단됐고, 이후 1990년 6월 2일 제민일보가 창간되면서 ‘4.3은 말한다’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4.3연재는 재개됐다. 1999년 8월까지 10년 동안 모두 456회가 연재됐다. 이처럼 장기간의 특별취재반이 운영된 것은 한국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로 기록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한국어로 5권, 일본어로 6권이 출판됐다.

4.3 60주년을 맞아 4.3관련단체에서 4.3정명 논쟁이 일어났던 것처럼 양 수석전문위원은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져 버린, 그러나 성격 규명 문제에 있어서는 ‘유보’적 입장을 취한 <4.3은 말한다>란 제목의 의미부터 말했다.

그는 “출범 당시부터 취재반 기자들 사이에도 ‘폭동’, ‘사태’, ‘사건’, '봉기‘, ‘항쟁’ 등 명칭을 둘러싼 논쟁이 일었지만 결국은 고민 끝에 꼬리표를 잘라냈다”며 “제주신문에서 <4.3의 증언>, 그리고 제민일보의 <4.3은 말한다>역시 4.3이 스스로 말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다소 생소한 제목을 붙었다”면서 “신문 연재물 500회가 끝날 무렵이 되면 그 성격도 자명해 질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아직도 정명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예측은 다소 빗나간 것 같다”는 말로 4.3성격규명이 그만큼 어려운 문제임을 토로했다.

4.3보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좌와 우, 가해자와 피해자가 너무나 분명한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

양 수석전문위원은 “취재반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4.3에 관한 왜곡되고 조작된 기록들이 반복 인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면서 “그래서 4.3에 관한 어떤 자료나 증언이라 할지라도 일단 신뢰하지 않고, 새로운 자료와 증언을 입수할 때마다 속단하지 않고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정으로 교차 검증의 과정을 거쳤다”는 말로 실증적인 자료를 토대로 4.3 보도가 시작됐음을 밝혔다.

또 “1948년 4월3일부터 시작된 4.3을 이보다 훨씬 앞당긴 1945년 해방공간부터 시작(4.3전사 부분만 134회 연재) 한 것도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4.3의 역사를 제대로 떠오르게 하는 부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또 제주도 157개 법정마을을 발로 뛴 현장취재도 초토화의 실상, 마을별 피해상황, 희생자들의 실태 등 실체적 진실을 속속들이 꿰뚫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말했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은 물론, 언론사 내부에서도 견디기 힘든 적지 않은 압력이 있었음을 토로했다.

▲ 제주도기자협회가 9일 '제주4.3과 제주언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제주의소리
그는 10년에 걸친 4.3의 취재보도를 통해 ▲ 공산폭동론의 허구 ▲ 4.3 발발원인 조사 ▲집단학살에 대한 조사를 밝혀냈다고 자평했다. 양 수석전문위원은 앞으로의 과제로 ▲보수진영 행보에 대한 대응 ▲평화‧통일‧인권의 공감대 확산 ▲4.3명칭에 대한 공적영역 확보 ▲4.3의 전국화‧세계화 ▲4.3평화재단에 대한 점검을 제시했다.

그는 첫 번째 역할로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여권과 보수진영에서 제기되는 제주4.3위원회 폐지와 진상보고서 재작성 등 제주4.3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언론이 앞장서 막아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4.3이 단순한 비극적 역사가 아닌 이제는 용서와 화해, 상생의 정신을 바탕으로 비극의 역사를 평화와 인권의 역사로 승화시켜 나가는 공감대 확산도 언론의 몫이라고 말했다.

양 수석전문위원은 4.3명칭과 관련해 “4.3명칭 표기에 대한 공적 영역의 흐름에 언론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관련법의 정의와 정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하는 간행물, 국정 또는 검정 교과서의 표기에서 4.3의 명칭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또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교과서에 대한 검정 과정도 언론이 예의주시해야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4.3의 전국화와 세계화 차원에서 민간인 집단학살을 경험한 외국 등을 탐방, 그들은 과연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시행착오는 없었는지, 우리와의 장단점을 상호 비교하는 기획취재를 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앞으로 제주4.3이 어떻게 펼쳐질지 좌우될 4.3평화재단에 대한 적절한 점검, 즉 “그 역할과 기능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첫 단추를 꿰는 준비단계에서부터 지역언론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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