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누리는 행복과 평화의 길을 걷는 강정주민들

평화가 무엇일까를 물었다. 이런 종류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때론 매우 쉬운 일이다. 어떤 이에게 평화는, 인공의 아스팔트에서 벗어나 자연 속의 휴식을 즐기는 순간이다. 그리고 또 어떤 이에게는 사회적 부조리와 시민적 분노가 없는 상태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평화라 말하기도 한다. 백 명의 사람에게 백 가지의 평화가 있는 것이다.

평화라는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것’이다. 평평할 평(平), 벼 화(和). 나에게 있어 굶주림이 없는 상태임과 동시에, 내 이웃 중에 굶주리는 이가 없는 상태다. 우리가 공평하게 나누어야 할 어떤 것들은 배를 불리고 살과 피가 되어 주는 밥일 수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행복일 수도 있다. 백 사람에게 백 가지 평화가 있기에 평화로 가는 길이 한 갈래만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평화로운 삶이 무엇인지 모색하고 고민하는 그 순간은 평화를 완성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과정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 지난 19일 밤 강정마을 의례회관에서 '제1회 토요문화제-강정마을, 평화에 물들다' 가 개최됐다. ⓒ제주의소리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처음부터 평화라는 화두를 꺼내 든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주민들은 아름다운 바다를 지키고 싶었고, 공동체에 가해지는 외부적 충격을 우려했을 뿐이었다. 또, 잘못된 절차에 의한 행정행위가 마을 공동체에 불러들인 갈등을 미워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1년여에 걸친 해군기지 반대투쟁의 과정에서 주민들은 조금씩 변화했다.

“그동안 나와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다른 지역, 다른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과 이웃의 아픔을 외면해 왔던 지난 삶을 반성하고 있다.”

폭염, 한 낮의 땡 볕 속에 일인 시위를 하던 강정마을 주민의 말이었다. 폭염 속에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주민들을 지지방문 했던 고유기 집행위원장은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심신이 고단한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느샌가 주민들은 길 위의 철학자가 되어 있었다.

▲ ⓒ제주의소리

투쟁의 성과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1년여의 투쟁은 마을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 만 했다. 절차적 합리성에 기반한 비폭력 평화투쟁만을 고수해 왔던 그간의 반대운동에 회의도 들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한 번 더 평화에 물들 것을 결심했다. 1년 간의 활동을 기록한 영상물을 함께 보며 이웃을 위로하고, “삼춘들 잘도 속암수다예(어르신들 고생 많으십니다)”라며 기타를 튕기는 노래에 손뼉 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강정, 평화에 물들다”를 타이틀로 시작한 토요문화제는, 고통을 토로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투쟁의 방법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 형형색색의 풍선과 현수막이 나타나면서 축제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더위를 피해 산으로 들로 떠나도 좋을 토요일, 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을위한범도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강정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경. 마을 주민들은 의례회관에서 열리게 될 토요문화제 준비에 한창이었다. 작게 자른 광목천과 형형색색의 풍선 위에 해군기지 저지와 강정마을의 승리를 염원하는 문구를 적어 넣고 생명평화의 마을 강정에 온 것을 환영하는 현수막을 달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게 될 무대와 음향장비를 세팅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 "마을 어른들이 싸우는 게 싫어요" 강정마을 아이들은 평화를 원한다. ⓒ제주의소리

인상적인 것은 강정마을 아이들.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모여 앉아 풍선에 문구를 새겨 넣고 있는 아이들에게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이 왜 싫은지 물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강정마을에서 앞으로도 엄마랑 아빠랑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요.”
“해군기지 때문에요, 마을 어른들이 싸우는 게 싫어요.”

사랑하는 엄마가, 존경하는 아빠가, 생업도 접어둔 채 군사기지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도청으로,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것을 일 년 동안 보아온 아이들이었다. 어른들에게는 좌절과 희망이 교차했던 시간, 그 교차가 지루하게 반복됨으로써 지쳐가게 만들었던 그 시간동안 아이들은 보다 더 깊어지고 맑아져 있었다. 풍선 위에 고사리 손으로 써 내려간 글자들 위에도 평화가 묻어 있었다. 깊고 맑은 아이들의 평화 말이다.

▲ 거센 바람에도 끄덕없게 고안된 강정마을의 촛불 ⓒ제주의소리

해가 저물어 갈 무렵 강정마을 의례회관으로 모여든 주민들의 손에 들려진 촛불도 역시 남달랐다. 촛불문화제를 위해 특수제작 했다는 이 촛불은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쉬 꺼지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또, 촛농이 바닥에 흘러내리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마을 공동체를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강정 사람들의 결연한 의지가 이 초 하나에 모두 담겨있다.

집회와 투쟁이 있는 현장이라면 늘 볼 수 있는 가수가 바로 최상돈이다. 그는 이 날 역사 속에 고통 받아온 민초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직접 만든 노래를 선사했다. 때론 거칠고 갈라지는 목소리는 피 맺힌 절규와도 같았다. 듣는 귀와 마음이 순식간에 촉촉해진다.

▲ 지난 19일 강정마을은 평화의 노래가 퍼졌다. ⓒ제주의소리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전사’ 허 설은, 주민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에 시(詩)만한 것이 없다며 시에 가락을 붙였다. 김준태의 1970년작 [감꽃]이다.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발라 돈을 세지
 그러면 먼 훗날엔 무얼 셀까 몰라”

다시 한 번 주민들의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그랬다. 떨어지는 감꽃을 세던 시절이 있었다. 이웃집 숟가락 젓가락이 몇 벌인지 훤했던 시절, 지나치는 눈인사만으로도 내 이웃의 희노애락이 눈에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엄지에 침 발라 셀 돈이 더욱 더 많이 필요해진 세상은 그런 이웃들로 하여금 서로 등을 돌리고 가슴을 후벼파게 만들었지만, 우리에게도 한 때나마 떨어지는 감꽃을 세던 시절이 있었다.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먼훗날 무얼 세게 될지, 무얼 세는 삶이 옳은 삶인지를 고민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천주교평화의섬특별위원회가 이번 토요문화제에 함께했다. ⓒ제주의소리

마을 주민들의 마음에 단비를 내려준 것은 공연만이 아니었다. “여러분이 걷는 고난의 길에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는 고병수 천주교평화의섬특별위원회 사목국장의 ‘말씀’에 군데군데 눈물을 찍어내는 ‘삼춘’들이 보였다. 고난의 길을 누군가 그저 곁을 지켜 걸어주는 것 만으로 힘이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연대의 마음이 곧 강정주민들에게 있어 평화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년 동안의 활동과정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첫 번째 강정토요문화제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의례회관 마당에 둘러 앉아 두부와 김치, 오이를 안주로 막걸리 순배를 돌렸다. 기름진 것, 화려한 음식이 아니지만 모두 모여 나누어 먹고 서로의 노고에 감사하는 ‘소박한 평화’가 그 자리에 있었다. / 김아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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