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제주민예총지회장 허영선ⓒ제주의소리
 ‘순이삼촌’ 현기영 선생님.

한라의 품에서 흘러내린 오름들이 꼬물대는 검은 새벽입니다.

선생님은 언젠가 그러셨죠. 이젠 4·3에서 좀 벗어나고 싶다고. 이젠 젊은 작가들이 많이 쓰고 있으니 됐다고. 당신은 이제 야생의 오름을 오르면서 저 용연에서 헤엄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풋풋한 성장소설 하나를 쓰고 싶다고 말이지요. 그 후엔 연애소설도 쓸 거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태어난 작품이 <지상에 숟가락 하나>였지요. 그리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너무나 행복하다고 하셨었죠.

웃다가 울다가 눈물 콧물 흘려가면서 꼴닥 밤을 밝힌 날은 그 소설을  덮을 때였지요. 한 방송사의 추천도서로 선정되고, 일약 45만부 이상이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얼마 전, 밤바다 출렁이던 제주 바닷가에서 고향의 젊은 후배작가들과 만난 자리였죠. 그날 선생님은 젊은 벗들에게 이제 4·3이 아닌, 제주도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죠. 그 말씀은 꼭 증언채록할 때 들었던 어느 할머니의 말씀으로 들리더군요. “제발 그 험악한 시국은 다신 오지 말고, 너희들은 행복한 세상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던.  그렇지요. 선택받은 대자연의 땅, 이 대지의 젊은 벗들은 적어도 4·3의 공간에서는 자유롭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헌신적으로 애정을 다해 4·3진실의 물줄기를 터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국가적 엠바고 30년, 침묵하라 30년의 금기를 깨지 못하던 시절, 운동가도 아닌 보통사람, 고향 떠나 학교 선생하랴 소설쓰랴던 선생님이 마침내 그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지요. 저승 가서 무슨 낯으로 보려하느냐며 유족들 얼어붙은 입들 겨우 떼게 하셨다지요. 겁나고 가슴 졸이면서도. 소설 <순이삼촌>, 내내 눈물로 쓰셨다구요? 그런 후에 붙들려 가셨다구요. 침묵을 깬 죄였나요? 온몸은 물론이고 손톱부터 자근자근 피멍이 끈끈하도록 받았던 그런 고문 말이지요. 그날 그 말씀 들으며, 가슴이 저렸습니다.

우리는 선생님께 한없는 빚을 지고 있음을 아시는지요. 우리는 순이삼촌 옷자락하나 꼭 붙잡아 가기만 해도 되었지요. 그도 모자라 이후엔 <지상에 숟가락하나>에서 감성의 빚을, 맘 편하게 마음의 정화를 얻었던, 갚을 길 없는 빚을 지기도 했습니다.

누구도 선생님이 4·3을 위해 온몸을 바쳤던 헌신성과 아낌없는 열정, 그로 인해 쌓인 신망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소설이 ‘북한찬양’을 한 불온서적이라니요. 다시 한번 선생님께 악몽처럼 날카로운 상처를 긋고 말았군요. 여덟살의 눈에 비친 이해할 수 없는 4.3의 화광이 한부분 들어갔을 뿐인데 말이지요. 웃음과 비애로 버무려진 유년과 소년기의 성장소설이 어째서 불온서적인지요. 아무리 독서취향이나 인식이 다르다 하지만요. 이 책을 읽은 수십만의 독자들에 대한 모독은 아닌지요.

2003년, 반세기만에 국가는 4·3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행위였음을 고백하고 제주도민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했는데 말이지요. 역사의 물줄기를 거스르려한다고 역으로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지요. 4·3 60주년인 올해는 4·3의 상징, <순이삼촌>탄생 30년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어쩐 일이지요. 그로인해 고문받던 당시 느꼈다던 그 말씀, 왜 자꾸만 떠오르는건가요. “4·3은 살아있고, 현재 진행형이고 나 역시 4·3의 피해자구나. 당시 피해자와 꼭같이 나도 고문을 당하는 것이지.”하시던, 그 말씀 말이지요. 정말 4·3이 진행형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어찌된 영문인지,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다른 베스트셀러들도 ‘불온서적’이라니. 온 국민을 어처구니 없게 만들고 있더군요. 이러한 ‘금서목록’이 착오였기를, 내일은 선생님과 함께 기대하겠습니다. / 시인·제주민예총지회장 허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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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6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을 얻어 <제주의소리>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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