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포기'가 필요할 때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말이다.' 한 동안 유행했던 값싼 유머이다. 포기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사람들에게 생각 좀 하고 살라는 뜻에서 누군가 만들어 낸 말일게다. 한편으로는 스트레스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한 번 쯤 웃어보라고 가볍게 던진 말일 수도 있다. 누가, 우리 스스로에게 어루만지는 의미에서.

그럴 만도 한게 요즈음 사람들은 포기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힘들어서 꿈을 포기하고 싶어. 맘에 안들어서 그 사람을 포기할래. 또는 어차피 안될 일이니까 미리 포기할래 등.' 또 더 적극적으로 사는 것, 사람다워자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사회악이다. 이런 말들 뒤에는 처름부터 희망이나 간절함이 부족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어떤 난관이나 장애물이 있어도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었다면 포기라는 말이 쉽게 나올까. 아마도 이런 상황에 부딪혀 본 사람이라면 조금 더 천천히 나아가 보겠다고 자신의 의지를 밝혀야 옳다. 시시하게 혹은 싱겁게 자신이 하던 일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에 세상에는 포기해야 되는 일들이 많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 자살하고 싶은 마음, 사기치고 싶은 마음, 죽도록 미운 마음, 더 나아가서 나 혼자만 잘 살고 싶은 마음까지도 포기해야 행복에 가까워진다. 특히 과거의 나를 포기 할 때 현재의 자신이 소중함은 말 할 나위없다.

세상의 중심은 나이다. 하나 내가 전부인 것하고는 다르다. 그러므로 때로는 나의 장점을 포기해야 한다. 아무리 나를 이루는 모든 여건들이 중요할지라도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삶도 인정하는 너그러움을 발휘해야 한다. 비빔밥처럼 알맞게 섞여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려면 비슷한 성질이 모여야 가능한게 인간 삶이다. 매운맛을 내세워서도 고소한 맛만을 우겨서도 최고의 맛을 내기 어렵다. 이 말은 적절한 포기의 미덕은 사회생활에서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 역시도 나이 들어가니 포기하고 싶은 일들이 늘어간다. 일단은 포기라는 말을 빨리 포기해야겠다. 또 나이가 들어서, 혹은 돈이 없어서, 여자라서, 건강을 잃어서, 몸매가 자신 없어서, 엄마라서 등 따지고 보면 사소한 자존심들은 쫓아버려야 할 것 같다. 화장실 변기물을 내리면서 구질구질한 체면까지 시원하게 보내버리겠다.

그리고 역으로 생각해서 지금이라도, 여자니까, 책을 많이 읽으니까, 잘 웃으니까, 뛰지는 못해도 잘 걸으니까 로 이유를 몰아가며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볼 참이다. 부정적인 요인들을 포기하고 긍정적인 요인들로 희망을 만들 수 있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길은 아니지 않는가.

누구든 무엇이든 잘하는 모습을 포기하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일 것이고, 큰 돈을 포기하면 작은 돈이 귀하게 쓰일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면 웃는 아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남의 일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포기하면 관계가 원만해짐을 모르는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를 가두고 있는 포기에 완벽한 성형을 하는 방법은 칼을 내려 놓은 것이다. 잘드는 메스대신 부드럽게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타협하는 마음을 만드는 일이다. 이런 과정 끝에 포기는 희망을 상징하는 말로 다시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글을 더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포기하고 펜을 내려 놓아야겠다. / 고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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