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원로배우 권병길 씨, “해군기지는 평화 對 반평화 문제” 일갈

스크린쿼터 사수 운동을 이끌었던 한국 영화계 주역들이 이번엔 ‘제주해군기지 저지’에 힘을 싣기 위해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찾았다. 영화 ‘우리 생애의 최고 순간(우생순)’을 만든 임순례 감독과 ‘아홉살 인생’ ‘더 게임’등을 만든 윤인호 감독, 제주출신의 영화배우 김부선(진보신당 홍보대사) 씨, 양윤모 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 등 영화인들이 대거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했다. 그중 눈에 띄는 연장자가 있었다. 원로 배우 권병길(63) 씨다.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식객> <싸움의 기술> 등에서 개성있는 조연 역할을 맡아온 그다.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 현장에서 배우 권병길 씨를 만났다. <편집자>

▲ '2008 강정 생명평화축제'장에서 만난 배우 권병길(63) 씨는 "제주 강정마을에 추진중인 해군기지건설은 미친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국영화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에 앞장서는 등 꾸준한 사회참여활동을 보여온 원로배우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권병길 씨가 “저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뒤늦게야 알았어요”라고 말문을 뗐다. 이어 “평택 미군기지 문제는 상당히 관심 가져왔지만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문제는 부끄럽지만 얼마 전에야 이렇게 심각한 갈등상황을 알게 됐습니다. 전국으로 이슈화되지 못한 것이 아쉽네요”라고 덧붙였다.

권병길 씨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단순히 제주 강정마을만의 지역문제가 결코 아닙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정마을의 문제나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자, 평화 대 반평화의 문제”라고 규정하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추진의 부당성을 분명히 했다.

원로 배우 권병길은 평생을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종횡무진 오가며 40여년을 배우의 삶을 살아왔다. 연극.영화계의 선후배들은 그를 향해 “영혼이 시들지 않는 원로 배우”라고 평한다. 평생을 연극판에 파묻혀 살면서, 영화와 드라마에서 간간이 대중에게 드러내는 그의 모습에선 쉬이 상상이 안될 만큼 그는 운동현장에선 치열한 목소리와 올곧은 색깔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 원로배우 권병길 씨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 배우분과위원장을 맡아 후배 배우들을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으로 이끌었다.  광화문 거리에서 1인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한미FTA반대활동에도 참여해 국회앞에서 역시 1인 시위의 전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난 총선에선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지원유세를 후배 영화인들과 함께 펼쳐 강 의원의 ‘재선’을 이끈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전윤수 감독의 <미인도>에 출연중인 그가 꼬박 48시간의 촬영을 마치자마자 강행군을 잠시 접고 강정마을 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 제주까지 온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권병길 씨에게 강정마을에 대한 첫 인상을 물었다. 그는 “강정마을 공동체 의식에 놀랐고, 특히 마을 어르신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에 또 한번 놀랐다”면서 “젊은 사람들은 젊은이 다운 목소리를 토해내고, 노인들 역시 시들지 않은 눈빛으로 젊은이 못지않은 목소리와 행동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에 그저 고개가 숙여질 뿐”이라고 말했다.

영화계 후배인 양윤모 영화평론가(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는 배우 권병길에 대해 “엄혹하던 시절에 연극배우로 연기자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흔들림 없는 정치적 견해와 굳건함을 지키면서 연극.영화.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원로배우”라고 평했다.

배우 권병길 씨는 오랫동안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에서 활동해왔다. 평통사의 전신인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대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했고, 그 전엔 ‘임수경 후원사업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어떻게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됐는지 물었다. 그의 사회운동 참여 모티브는 작가 박완서 등이 참여했던 ‘양서협동조합’이었다.

그는 유신시절을 떠올리면서 “지금 젊은 세대는 잘 모르겠지만 유신시대는 숨 쉬는 것 조차 힘들었다. 배우로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직업 배우로서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 그런 저항정신을 담은 작품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았었고….”라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 때문에 개인적인 활동을 통해 사회운동, 저항운동에 참여하게 됐다”며 “그 첫 출발이 ‘좋은 책 읽기’ 운동을 펴온 양서협동조합 활동이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양서협동조합은 작가 박완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윤형두 범우사 대표, 한완상 대한적십자총재 등이 활동해온 단체였다.

권병길 씨는 “영화인들은 평화의식과 반전의식, 생명의식이 없으면 영화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며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무슨 이벤트 참여하듯이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면서 전날 제주도청 기자회견장에서 보여준 도 간부공무원의 “이벤트하러 왔느냐?”는 ‘막말’에 서운한 내색을 비쳤다.

권병길 씨는 또 “그동안은 영화촬영이나 관광지로서 제주를 찾아왔지만 앞으로는 해군기지 철회운동으로 제주를 찾아오겠다”면서 “어느 지역이나 그렇겠지만 강정마을주민들의 소박하고 인정어린 모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기지 예정부지’인 강정마을 중덕 바닷가에서 그는 마지막 한마디를 건넸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 보전지역인 이 아름다운 강정 바닷가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고 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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