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경력 20년 풀밭에서 먹는 점심 꿀맛

벌초 ⓒ 김강임

해마다 백로 지난 휴일은 가족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올해는 추석 1주일 전 9월 7일이 백로더군요. 이날은 선산에 벌초를 하는 날입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마음이 어수선 합니다. 벌초를 하러 오는 친척들이 들이닥치기 때문이지요.

동서 우리 함께 벌초 가자

이제는 시대가 변했으니 벌초도 간소화 했으면 싶은데, 어찌된 일인지 시댁 어르신들께서는 예전 조상들이 해 왔던 풍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선산에 차례를 지내야할 음식 준비하랴, 타지에서 내려오는 분들 운동화 준비하랴, 모자에서 신발까지, 벌초 때만 되면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더욱이 종가집 형님께서는 시집와서 지금까지 조상벌초 한번 빠지지 않았으니 형님 그림자를 쫓아야 하니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닙니다. 

내가 처음 벌초를 따라갔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 되었을 것입니다. 시집살이 경력 채 5년도 안된 내게 종가 집 형님은 이렇게 말했다. 

“ 동서, 우리 함께 벌초 가자. 동서는 낫질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양산 받고 산담에 만 서 있어도 돼. 따라갈래?” 

이 달콤한 유혹은 어느새 나를 벌초 경력 20년 아줌마로 만들었습니다.   
  

봉분 벌초 봉분 벌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 김강임 
무릇 야생화가 지천을 이루고 있더군요  ⓒ 김강임 
   
메뚜기 쫓고 야생화 꺾으며...풀 날라 주는 척

사실 첫해 내가 벌초를 따라갔을 때는 아이 둘을 데리고 갔었습니다. 대여섯살된 우리 아이들은 산에서 메뚜기를 잡기도 하고, 들꽃을 꺾어 할머니 할아버지 묘소 앞에 꽂기도 하더군요. 아이들이야 간만에  나들이 갔으니 얼마나 흥겨웠겠습니까.

그런데 아이들은 재미로 집안 어르신들이 깎아 놓은 풀을 나르는 것이었어요. 원숭이도 낯이 있다고 가족들이 모두 쪼그리고 앉아 낫질을 하고 , 아이들은 즐겁게 풀을 나르는 데 그저 가만히 서 있기가 미안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풀을 날라주는 척 했지요.

벌초한 자리는 올록볼록 들쭉날쭉

그때, 웃어르신들께서 주신 칭찬은 이만저만이 아니셨습니다. 풀을 나르는 일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데, 육지에서 시집온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철부지로 생각하셨던 게지요.

그리고 그 이듬해 벌초부터는 한 단계 높아져 낫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내가 낫을 잡았을 때 종가 집 아주머님께서는 낫질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더군요. 처음 낫질이야 풀을 베는 것보다 손이 다칠까봐 한 웅큼도 안 되는 풀을 잡아 뽑는 수준이었지요. 그때 어르신들께서는 벌초하기 가장 좋은 자리를 내게 내어주시곤 하셨습니다. 물론 내가 벌초한 자리는 올록볼록 들쭉날쭉 해서 다시 손질을 해야 할 처지였지요. 하지만 가족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형님 벌초 형님따라 간 벌초길이 벌써 20년 되었습니다,  ⓒ 김강임 

벌초...자신의 태생 알게 되는 근본

그렇게 20년, 이제는 낫질을 제법 잘 합니다. 낫질을 제일 잘 하신다는 종가집 형님을 따라 갈순 없지만, 이젠 의무처럼 인식됐습니다.

9월 7일 아침 7시, 제주시 구좌읍에 높은 오름 기슭에 비가 내립니다. 6천여 평의 선산에는 무슨 야생화가 그렇게도 많이 피었던지요. 쑥부쟁이, 무릇이 여름내 자란 잔디와  함께 나풀댑니다. 심심하던 메뚜기와 여치도 신이 나서  저리 뛰고 난리가 났습니다.

모둠벌초는 평소에 자주 보지 못하는 친척들을 볼 수 있으니 집안의 가족 모임 같습니다. 나이어린 삼촌부터 뿔뿔이 흩어져 자주 보지 못하는 괸당(제주도 사투리로 친척)들까지. 어찌 보면 벌초는 자신의 태생을 알게 하는 근본인 것 같습니다. 
  

모둠벌초   ⓒ 김강임

모둠벌초로 친척들 더 가까워져

선산에서 가장 웃어르신 묘소를 벌초하는 시간에는 모든 벌초객들이 다 모여듭니다. 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순간이지요. 너무 많은 가족들이 모이다 보면 그저 풀 한줌 베어내는 수준입니다. 그래도 자신의 뿌리를 준 조상의 묘소를 참배하는 의미는 가족들에게 특별하지요. 특히 잠시 잊고 살았던 친척들의 얼굴을 선산에서나마 만날 수 있음이 가장 큰 감동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뿌리의 서열에 따라 벌초 객들이 집안별로 나눠집니다. 결국 마지막 부모님 선산에는 우리 가족만 남게 되지요. 백로의 아침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성묘 벌초를 끝내고 준비한 음식을 올리며 차례를 지냅니다.  ⓒ 김강임  
깨끗해진 묘소   ⓒ 김강임 

  
풀밭에서 먹는 점심 소풍 온 기분

드디어 점심시간입니다. 내리던 비가 그치고 안개에 묻혀 있던 선산 앞 다랑쉬오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풀밭에 빙 둘러앉은 가족들의 표정은 소풍 온 기분입니다. 초등학교 소풍이 이만큼 즐거웠을까요? 중학교 현장학습이 이만큼 의미 있었을까요?

해마다 선산 풀밭에서 먹는 점심은 꿀맛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끼리 막걸리 잔을 돌리다보면 종가집 어르신은 돌아가신 조상들의 일생일대기에 열변을 토로합니다. 자신의 자서전 같기도 한 조상의 일대기라야, 어렵게 살아온 보릿고개 이야기지요.

물이 귀중해서 물 긷던 이야기, 반직이 밥(반은 쌀 반은 보리로 지은 밥)과 고구마 밥 이야기이지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구수하기만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의미있게 와 닿는 이야기는 계란 1개로 계란 전을 대여섯 개 지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계란 한 개로 계란 전을 대여섯 개가 나올 수 있다니요?  거짓말 같은 진실, 그분들의 조냥정신(절약정신) 덕분에 이렇게 우리 삶이 윤택해졌지요. 깨끗해진 조상들의 묘소에 가을바람이 붑니다. 아마 나는 내년 이맘때 또 종가집 형님의 그림자를 밟겠지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이번 한가위는 풍성할 것 같습니다. 

<제주의소리>

<김강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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