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화예술재단(이사장 강영철) 문화재연구소가 마련한 '제주성 답사 프로그램'이 3차 답사를 준비한다.

제주성 답사 프로그램은 제주목관아를 아우른 제주읍성 일대의 제주사를 중심으로 답사하며 제주역사의 정체성과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오는 27일 오전 10시 관덕정을 출발하는 '제주성을 즈려밟고 노닐다' 3차 답사는 2차와 같은 코스인 옛 제주읍성의 성곽 추정지 3km를 걷는다.

본래 행정과 군사 목적을 갖췄던 읍치의 성인 제주 읍성. 제주목관아를 비롯해 관덕정, 향사당, 제주향교 등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번 답사에서는 그 시설과 역사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생활했던 제주성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들인 스토리텔링식 답사로 진행된다.

두뭇골, 칠성골, 객사골 등 성안 골목골목의 이름과 구간, 성문일대에 들어섰던 나무장수와 숯장수의 이야기, 남수각 동쪽 성곽 위에 지어진 집의 사연 등 제주인의 삶의 자취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답사 강사로는 제주특별자치도문화재위원회 김익수 위원이 참여한다.

상세코스는 제주은행서문지점-제주대학교병원-오현단-동문치안센터-제주기상청-제주북교에 이른다. 문의=748-9817, 710-3493.

[2차 제주성(城) 답사기] 끝내 지키지 못한 제주읍성이여

평소 제주도의 많은 유적지를 찾아 보면서 '사라진 제주읍성'에 대해 아쉬워하던 차에 2008년 7월 12일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제주성답사행사를 한다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였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였으나 제주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관덕정으로 찾아 들었다.

답사 해설은 제주도 문화재위원이신 김익수선생님께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어 참가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느끼게 하였다.

답사코스는 관덕정에서 제주성 서문(진서루-현재의 제주은행 서문지점 일대)을 지나 제주성내교회와 제주화교소학교를 거쳐 제주대학교병원 인근을, 그리고 남문로터리 근처 성바오로서점 아래 있었던 제주성 남문(정원루)에, 오현단에서는 복원된 성곽 위에 올라 성곽 구조에 따른 세부적인 축성법을 배웠다.

예를 들면, 성곽 외부에 돌출된 치성, 성문 보호를 위한 옹성, 성곽 상부의 여장, 성곽 밖의 해자 등.

그러나 아쉽게도 복원된 성곽 상층부의 여장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오현단을 지나 남수각 아래 오현교다리를 건넜다.

이 곳 오현교 다리 끝에는 을묘왜변 전적지라고 새겨진 표지석 하나가 외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을묘왜변 제주전투는 1555년(명종 10)에 왜구가 남해안에 대거 침입하였다가 대패하여 쫓겨 가던 중 왜적 1,000여 명이 선박 40여 척에 분승하여 이곳 제주도에 다시 침범한 사건으로,  당시 목사 김수문이 70여 명의 특공대를 조직, 적을 격퇴하고 전투에 승리한 자랑스러운 역사현장인 것이다.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현장을 돌아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답사팀은 이어 동문파출소 앞에 도착하였다. 파출소 앞 길을 건너니 이 곳이 바로 옛 동문(연상루)이 있었던 곳이다.

동문에서 조금 더 지나니 제주기상청에 다다랐다.

기상청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니 산지천 맑은 냇물이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곳 일대에는 수려한 경관으로 유서깊은 유적지가 많은 곳이었다.

공신정과 달관대, 삼천서당이 그러하다.

기상청 아래에는 옛 성곽 일부가 조금 남아 있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답사팀은 옛 홍예문이 있던 산지천 북성교를 지나 코리아극장을  거쳐 제주북초등학교에 도착하였다.

바로 제주목관아에 인접된 곳으로 객사가 있었던 장소이다.

제주성답사 코스는 성 서쪽 묵은성을 끼고 서문으로 이어졌다.

답사팀은 출발지인 관덕정에 이르렀다.

각자의 가슴에 많은 생각을 남긴 답사의 종착지였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애써주신 김익수 선생님 그리고 제주문화예술재단 관계자 등 그날 수고하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드린다.
 
찾고자 하였던 제주성은 도로와 마을 안길, 개인 주택 등으로 변하여 옛 자취를 찾기 어려웠고, 그나마 가까스로 남겨진 성터는 언제 허물어져 없어질지 모를 지경이다.

만약에 지금 제주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면, 나는 또 “제주성을 즈려밟으며 노닐 것이다”

애초에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쌓은 제주성, 을묘왜변 때 목사 김수문이 돌격대를 조직하여 왜구를 격퇴시킨 자랑스런 전적지, 왜구의 재침에 대비하여 곽흘 목사가 동쪽성을 산지천에서 동쪽으로 더 나아가 확장한 유서깊은 제주성.

그런데 그 제주성이 100년전 1910년대부터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그나마 남아있던 일부 성곽은 1925~1928년 제주항 축항공사때 바다 매립용으로 다 없어졌다니 통곡을 할 노릇이다.

백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더니 이제는 아예 중학교 교과서에 일본 영토로 표기하려 하고 있다.

비분강개도 좋지만 힘을 길러야 할 것이리라 생각하며. /유배문화해설사 양익동

<제주의소리>

<양미순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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