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라톤에서 만난 전주시의회 송경태 의원
시각장애인이면서 세계 4대 극한마라톤 도전하는 '열성'

며칠 새 겨울이 됐는지, 날씨가 춥다. 두꺼운 니트에 외투까지 있는 대로 껴입고 걷노라면 몸이 둔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여기저기 깨져나가 고르지 못한 인도를 총총대고 걷다 보면 꼭 넘어질 것만 같은 순간도 몇 차례나 있다. 한참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체력이 떨어지게 마련. 근처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보자. 팔랑팔랑 책을 넘기는 사람이 있고, 도안을 연구하듯 들여다보면서 뜨개질에 한창인 여고생이 있다. 시험기간인지 전공서적을 뚫고 들어갈 기세로 공부하는 대학생이 있고, 한편으로는 소개팅이라도 하는 지 서로를 살피느라 바쁜 커플이 한 쌍 있다.

누군가는 안경을 썼고, 누군가는 쓰지 않았고, 누군가는 알이 없는 안경테만을 걸치고 있다. 어쨌거나 그들 모두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숨 쉬는 일보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세상을 내다본다. 그들에게 세상은, 때때로 어둡기도 하지만, 기다리면 반드시 밝아오는 곳이다. 그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세상을 산다.

여기에 늘,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다보았던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아버렸다. 사실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을 놓고 보자면 특별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그가 특별한 이유는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그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온 몸으로 보고 있다. 그것이 그가 특별한 이유다.

겨울 곰처럼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중 <제주의소리>로부터 갑자기 걸려온 전화로, 너무나 특별한 송경태의원을 만났다. 제1회 아름다운제주국제마라톤대회 홍보대사로 대회 참석차 내려온 송 의원을 26일 구좌 생활체육공원 마라톤대회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를 만나고서야 송 의원이 왜 ‘기부와 나눔’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대회의 홍보대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유가 분명해졌다.

▲ 시각장애1급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극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여러차례 완주기록을 갖고 있는 송경태 전주시의원. 송경태 의원은 '제1회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대회'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안녕하세요, 오늘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부네요. 춥지는 않으세요”
“아니, 춥지는 않아요. 추워요?”

솔직히 말해서, 기사 몇 꼭지를 뽑아 읽은 것 말고는 송경태의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다. 전주시의원이시라는 것, 장애인신문사의 사장으로 계시다는 것, 4대 극한마라톤 중, 세 곳을 이미 완주하고 마지막 남극만을 남겨두고 있는 마라토너라는 것, ‘3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내셨다는 것, 그리고 1급 시각장애인이라는 것.

기사를 프린트한 A4용지 8페이지로 알 수 있는 것들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송경태의원이 얼마나 경쾌하게 말하는지, 대화하는 상대를 얼마나 편안하게 해 주는지에 대한 것들을 알 수 없었다는 말이다.

송경태의원은 제주도와의 인연이 무척이나 깊다. 93년 중복장애인을 위한 자선콘서트가 제주도에서 열렸던 것이 인연이 되어 제주도를 처음 찾았고, 그 이후로도 제주도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2000년에는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캠페인에 참가하며 안내견 찬미를 데리고 한라산 성판악 코스를 등반하기도 했다.

“성판악 코스요? 굉장히 힘드셨을 것 같은데…….”
“한라산을 오르기 전에 백두산 천지에 올랐는데, 그 때에 비하면 천국이었죠.”

백두산을 오르며 찬미의 발은 만신창이가 되었던 모양이다. 양말을 신겼는데 그 양말이 다 헤지고, 발바닥까지 온통 까져 피가 멎지를 않았다고. 언뜻 생각해도 쉬운 길은 아니었으리라. 그런 길을, 안내견 찬미와 이어진 로프 하나만을 믿고 끝까지 오른 송경태의원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백두산 말고도, 참 많은 곳을 달리셨다고 알고 있어요. 사막에서 극한 마라톤도 하셨다고…….”
“고비사막에서는 앞에 가던 안내인이 갑자기, ‘조심해서 잘 따라오세요.’ 하더니 아무 말 않고 걷기만 하는 거예요. 나중에 왜 그랬나 했더니, 길 양쪽으로 몇 백 미터씩 되는 절벽이 있는데, 그 길 폭이 30센티미터에 불과해 그랬던 거죠.”

30센티미터 폭의 칼날 같은 길, 송경태의원은 눈을 감은 채 그 길을 건넜다. 위원장이 ‘어떻게 살아 돌아왔느냐’고 물을 정도로 놀랐지만, 송경태의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듯, 그 무시무시한 길을 완주해 냈다.

“사하라사막이 첫 도전이셨죠?”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달릴 수 있을지 몰랐다고. 1km 걷기 연습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다 개랑 같이 5km를 몇 번 뛰고, 10km를 뛰고, 그러다 풀코스 뛰고.”

▲ 출전에 앞서 결연한 표정으로 배번을 달고 있는 송 의원 ⓒ제주의소리
1킬로미터씩 연습했던 시작했던 걸음으로 송경태의원은 캐나다 로키산맥을 등반했다. 안내견 찬미의 도움을 받아 백두에서 한라까지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마친 다음해였다. 송경태의원은 사하라사막을 건넜고, 고비사막을 지났다. 극한마라톤을 주최하는 Racing the Planet은 악랄하다. 매 해 극한마라톤을 개최할 때마다 첫 날 30% 이상의 참가자를 탈락시킨다. 만약 탈락시키지 못하였을 경우, 다음날 가야하는 코스는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한다. 장애가 없는 사람도 완주하기가 쉽지 않다. 제한시간 안에 정해진 코스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하루 한 시간 새우잠을 자는 것도 아쉽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도 인간이 소화해내기 힘든 일정을, 잘게 부수어 부피를 줄인 컵라면과, 하루 10L로 제한된 물만으로 버텨내야만 한다. 식사는 그렇다 치고, 물은 아끼면 수분부족이 오고, 그렇다고 마음껏 마시기에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9시간을 주면서, 40km을 통과하라는 거죠. 경사가 70도 이렇게 되는데, 20km는 올라가야 하고, 20km는 내려와야 해요.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무섭다고.”

▲ 출발전 몸을 풀고 있는 송경태 의원. 이날 송 의원의 레이스도우미로는 송 의원과 절친한 사이인 마라톤 전문사회자 방형덕 씨(왼쪽)가 함께 했다.  ⓒ제주의소리
사하라사막에서 발을 잡아끄는 모래와 사투를 벌였다면, 고비사막은 날카롭게 벼르는 돌들과의 싸움이었다. 돌이 얼마나 날카로운 지, 일반 운동화는 신어도 의미가 없을 정도다. 등산화마저도 크게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특수소재로 만든 전용 운동화가 아니고서는 도전 자체가 무리다.

고비사막을 건너고 나서는, 아타카마 사막을 누볐다. 특히 아타카마 사막은 처녀출전이었던 막내아들 ‘원’과 함께여서 더 의미가 깊었다고.

아타카마 사막은 분지다. 그것도 7천 년 전에는 바다였던. 뜨거운 열기에 수분이 천천히 증발해 없어지고, 개흙과 소금이 범벅이 되어 칼날처럼 솟은 사막이다. 소금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날카롭게 솟은 소금덩어리는 신발도 뚫고, 살도 우습게 뚫어버린다. 소금층 위를 밟을 때는 바각바각 소리가 난다. 가끔가다 발이 푹 꺼지곤 하는데, 그것은 소금층이 얇게 덮고 있는 아래, 바다의 흔적인 양 농도 짙은 소금물이 남아있는 탓이다. 허벅지까지 푹 빠졌을 때에는 생채기마다 진한 소금물이 들어차 이만저만 아픈 게 아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과,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다. 발과, 머리와, 손이 같이 놀아서는 견디기 힘들다. 손과 발을 계속 움직이면서도, 머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한다.

“우리는 책 한권을 읽으려면 하루가 꼬박 넘게 걸린다고요. 그런데 사막에서, 생각을 해야 하니까. 다른 생각을. 그러니까 읽은 책 내용을 기억하고 하는데, 읽을 땐 하루가 넘게 걸리던 게, 머릿속에서는 5분도 안 되어 다 끝나버린다고. 줄거리를 외우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시간을 끌어 보려고…….”

책만이 아니다. 스쳐 지나듯 들은 노래 한 자락까지도 사막을 건널 때에는 너무나 절실하다. 사막과 시간을 견뎌내지 못해 공포에 시달리다 포기하고 만 사람을, 송경태의원은 수도 없이 만났다. 걷는 것 자체보다 어려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정말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자꾸 도전을 할 수밖에 없으신가 봐요?”
“힘든 게 아니지.”

송경태의원은 반쯤 웃음 섞인 목소리로 부인했다. 힘들다고 말하면, 그것은 일이 된다. 대학생 시절, 등산을 참 좋아했는데, 같은 범주에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사색하고,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고, 그러다 정상에 도착하는 것처럼, 마라톤도 그런 것이라고.

송경태의원은 내달 있을 남극 마라톤을 준비 중이다. 이번 남극 마라톤까지 완주하고 나면, 장애인으로써는 최초로 극한마라톤 그랜드슬럼을 달성하는 셈이다. ‘죽으려고 해도 잘 죽어지지 않던’ 세 번의 사막 마라톤처럼, 이번 남극 마라톤 역시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주해 내리라 믿는다.

▲ 제1회 아름다운 제주국제마라톤대회 홍보대사로 참가한 송경태 의원이 개회식에서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오늘 제주도, 아름다운 마라톤 코스는 어떠셨어요?”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일단 달릴 때 완만하고, 오른쪽으로는 칡넝쿨이 있었다더라고. 거기다 멀리서 바다향기가 나는 거지. 나다가, 나지 않다가. 조금만 더 가면 다시 바다향기가 나겠구나 싶은 거. 그렇게 유혹을 하는 거지.(웃음) 정말 구름 위를 달리는 것처럼, 오늘 코스 참 좋았어요.”

진심으로 감탄하는 송경태의원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자, 그림 같은 김녕 해수욕장의 모습이 눈을 사로잡았다. 바로 옆의 구좌체육관으로 어느 초등학교에선가 소풍을 나왔던 모양이다. 어릴 때 참 많이 좋아했던, 솜사탕이 보였다. 솜사탕을 하나 사들고 먹는데, 문득 송경태의원 생각이 난다. 솜사탕에서 구름이 연상된 탓이었다.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고. 제주도 코스 참 좋다고.

내달 남극을 달릴 때에는 솜사탕이 잔뜩 쌓인 길을 달리시는 것처럼, 폭신폭신하고 달콤한 마라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야 ‘극한마라톤’이라 이름 붙은 의미가 없겠지만, 뭐 어떤가.

송경태의원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아름다운 제주 마라톤’의 취지와, 참가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마라톤 코스처럼.

도시락을 열자마자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물밥’을 먹어도, 잘게 부순 라면에, 지열로 절절 끓는 물을 타서 먹어도,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남극마라톤에서도 포기하지 않을, 송경태의원의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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