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아픔 온몸으로 지켜낸 33명의 ‘4.3장한 어머니상’ 수상식

제주4.3 장한어머니상

어머니!
4.3은 어머니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 모든 한을 묵묵히 인내했습니다.
한 세월은 눈물겨운 삶이었지만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습니다.
이제 흐르는 세월 따라 몸도 많이 쇠 하셨지만,
어머닌 언제나 우리의 버팀목이자 기둥입니다.
존경하는 어머니!
당신의 은혜를 우리들의 마음속 깊이 새깁니다.

2004년 12월 23일 제주도지사

 

▲ 23일 제주도청 대강당에서 4.3장한어머니상 시상식이 열렸다. 반세기 동안 가슴의 한을 인내하고 삭혀왔던 이들은 진정 제주의 장한 어머니이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4.3으로 남편을, 자녀를, 그리고 친인척을 잃은 아픔 속에서도 지난 50여년의 한을 가슴에 삭힌 채 시부모를 공양하고 자녀들을 훌륭히 키우며 고향을 위해 묵묵히 살아 온 제주의 장한 어머니 33명이 23일 ‘제주4.3 장한 어머니상’ 시상자로 선정돼 23일 제주도청 대강당에서 도민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다.

이날 낮1시30분부터 시작된 시상식은 식전행사로 민예총 민중가수 최상돈의 축하공연과 축시낭독, 그리고 ‘장한어머니’ 자녀들이 ‘어머님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을 읽고 내려가자 행사장 곳곳에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이 이어졌다.

이날 시상식은 김태환 지사가 33명의 장한 어머니 한분 한분 앞으로 다가가 ‘장한 어머니상’ 패를 전달하고 축하금과 축하 꽃을 전달 할 때마다 박수와 함께 가족들의 플래시가 계속 터졌다.

김태환 지사는 격려사를 통해 “제주4.3은 어머니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나 어머니는 꿋꿋하게 이겨내고, 모진 아픔도 ‘살암시믄 살아진다’며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내셨다”면서 “4.3의 어머니가 모두 장한 어머님이시나 모든 어머니께 장한 상을 드리지 못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지난 50년 한의 세월을 지켜온 장한 어머니께 존경의 인사를 드렸다.

김 지사는 “이제 세월이 이마의 잔주름처럼 흘러, 허리도 굽으시고 몸무게도 반밖에 안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 금할 수 없다”며 “오늘 이 자리가 어머니께서 남몰래 울어야 했던 눈물과 한숨 속에 깃든 한의 세월이 조금이나마 위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4.3발발 후 반세기 동안 고통과 침묵, 금기의 나날이었으나 어머니와 4.3유족, 온 도민의 노력에 의해 정부차원의 보고서가 확정되고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뤄냈다”며 “앞으로 국가차원의 추모일 지정 등 7개 건의사항이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장한 어머니상’ 전달식 후 장한어머니와 가족들끼리 가족촬영으로 끝을 맺었다.

어머니!

김경훈 시인

무자 기축년 그 캄캄한 하늘에 별도 없어라
한번 간 당신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올말졸망 어린것들만 세상모르고 잠들었어라
찬 기운에 온몸 소스라치는 새벽마다
비명에 간 당신 기억 이리도 선연한 건
아, 모진 목숨이여
어린것들 잘 키우라는 운명이리라

모든 게 다 어지러운 시국 탓이다
살암시믄 살아진다고
별도 없는 캄캄한 어둠에 서서 굳은 심지 돋우리라
저 팽나무처럼 단단히 뿌리내리고
저 바람에 서걱이는 대나무처럼 살아남은 사람들 벗아여
살아야 하리라
살아남아야 하리라

그렇게 살아온 지난날 이제는 꿈처럼 아련한데
검은머리 힘겨워 새하에지고 주름 깊은 얼굴엔
검버섯 저승꽃만 별처럼 박혔어라

아, 뒤돌아보면 아득하여라
볼세라 혼자만 흘렸을 그 눈물 바다가 되고
들을세라 혼자만 삭였을 그 한숨 태풍이 되어
책 몇 권 내고도 남ㅇ르 이야기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
세상 살다 좋은 날 올 줄 어디 짐작이나 했으랴
살아온 나날들 당신 생각 안한 날 없건만
오늘따라 더 미어지게 그리운 걸 당신은 알기나 할까

다음은 이날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 명단.
▲양갑생(90·제주시 용담1동)
양갑생 어머니는 4.3사건으로 남편이 1948년 9월 28일 총살당한 후 홀로 농사를 지으며 3남 2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특히 제주전통의 노동요 등 민요의 전수와 전통예복인 한복과 관복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는 등 마을에 대한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오묘생(89·제주시 오라2동)
오묘생 어머니는 4.3사건 당시인 1949년 3월 사람을 만나러 출타한 남편이 행방불명 된 후 36세의 나이로 혼자 농사를 지으면서 1남1녀를 훌륭하게 키워 낸 장한 어머니이다.

▲안정생(88·제주시 이도2동)
안정생 어머니는 4.3사건이 발발하면서 남편이 대전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6.25전쟁 이후 행방불명돼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1남 3녀를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강경생(84·제주시 용강동)
강경생 어머니는 1948년 10월 20일 남편이 토벌대에게 총살을 당한 후 28세의 나이에 홀로 농사를 지으며 1남 5녀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웠다.
또 노인실버봉사대에 적극 참여해 매월 마을회관 마당과 마을 안길을 청소하는 등 마을 일에 솔선수범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 4.3장한어머니상 시상식에 친인척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해 장한어머니들을 축하해 줬다.
▲김열(84·제주시 연동)
김열 어머니는 4.3사건으로 인해 남편이 대전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되고 시부 또한 경찰에 재검속되어 광주에서 병사하자 시모까지 홧병으로 사망해 29세의 나이에 사고무친으로 어린 1남과 시동생을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서계생(81·제주시 노형동)
서계생 어머니는 4.3사건 당시 남편이 헌병대에 잡혀 갔다가 목포형무소에 수감 중 6.25전쟁 발발 와중에 행방불명이 되었으나 어린 남매를 홀로 훌륭히 키웠다.
동별 체육대회가 열리면 전에 살던 정실마을의 집에 아들을 포함한 선수들을 합숙시키고 식사를 제공하는 등 자식이 기죽지 않고 살아가도록 온갖 배려를 다한 장한 어머니이다.

▲김징인(81·제주시 영평동)
김징인 어머니는 1948년 5월에 남편이 경찰에 잡혀간 후 행방불명이 되자 26세의 나이에 홀로 1남1녀를 훌륭하게 키우면서 시부모를 공양했다.
특히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셔 주위의 칭송을 받은 외에 마을 일에 솔선수범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오갑생(80·제주시 이도2동)
오갑생 어머니는 4.3당시 남편이 경찰에 연행돼 행방불명된 후 25세의 나이에 홀로 고난을 극복하고 1남2녀를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오효선(80·제주시 도남동)
오효선 어머니는 1949년 남편이 형무소에 수감돼 행방불명된 후 집과 재산도 불태워져 하루하루를 걱정하는 처지였지만 26세부터 홀로 독자를 훌륭하게 키웠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시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한 장한 어머니이다.

▲이기생(75·제주시 도련1동)
이기생 어머니는 1948년 12월 11일 남편이 토벌대에 의해 사망한 후 당시 18세의 나이에 유복자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다.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셔 효부로 주위에서 칭송이 자자한 장한 어머니이다.

▲ 자식들이 읽어주는 편지에 한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고 있다.
▲문순선(74·제주시 연동)
문순선 어머니는 1949년 남편이 군법회의의 사형선고로 20세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그 관계로 주정공장에 수감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낳은 유복자를 훌륭히 키웠다.
주정공장에서 받은 고문의 후유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지만 시부모님을 극진히 모셔 여산송씨 대동종문회에서 효부상을 수여했으며, 연미마을 새마을부녀회를 조직하는 등 지역발전에 적극 나서는 장한 어머니이다.

▲이춘기(95·서귀포시 대포동)
이춘기 어머니는 1948년 11월 16일 4.3사건으로 남편과 사별한 지 1개월 후 장남까지 사망해 절망에 허덕였지만 시모를 극진히 봉양하면서 3남3녀의 자녀를 훌륭히 키웠다.
마을안길 진입로 잡초제거, 해안정화활동 공공사업에도 적극 참여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오연옥(85·서귀포시 상예동)
오연옥 어머니는 1949년 1월 3일 4.3사건으로 남편과 사별한 후 1남2녀를 훌륭하게 키웠으며, 4.3유족회원으로 희생자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장한 어머니이다.

▲윤두옥(81·서귀포시 도순동)
윤두옥 어머니는 4.3사건으로 1948년 11월 24일 남편이 총살당한 후 시모를 극진히 모시면서 어린 1남 1녀를 홀로 훌륭하게 키웠다.
1996년부터 도순노인회 할머니회장을 맡아 실버자연보호봉사대를 조직하는 등 지역사회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장옥실(81·서귀포시 하예동)
장옥실 어머니는 4.3사건으로 1948년 12월 5일 집에서 남편이 총살당한 후 당시 3살난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조봉화(92·구좌읍 상도리)
조봉화 어머니는 4.3사건으로 남편과 아들, 시모가 희생당한 후 살아남은 3남1녀를 훌륭하게 키웠으며, 4.3 진상규명에 앞장서서 참여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강축생(91·한림읍 금악리)
강축생 어머니는 4.3사건으로 1949년 1월 남편과 사별한 후 장애인인 아들을 포함해 2남을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이병성(88·구좌읍 하도리)
이병성 어머니는 4.3사건으로 1949년 3월8일 남편과 사별한 후 홀몸으로 갖은 고생을 하면서 2남1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두 아들 모두 공무원으로 취직시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는데 공헌했을 뿐 아니라 항상 예의바르고 가정이 화목해 주위에서 칭송이 자자한 장한 어머니이다.

▲고순삼(87·한림읍 상명리)
고순삼 어머니는 4.3사건으로 1948년 4월 20일 남편과 사별하고 막내 유복자를 포함한 2남 2녀를 훌륭하게 키웠고, 장남이 군대 휴가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아픔을 극복해 마을 일에 앞장서는 장한 어머니이다.

▲김인숙(86·조천읍 북촌리)
김인숙 어머니는 1948년 11월 15일 북촌 나스빌레에서 남편이 주민 24명과 함께 총살당한 후 홀몸으로 1남2녀를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강우생(86·애월읍 유수암)
강우생 어머니는 1948년 11월 21일 친정아버지와 같이 남편이 희생당한 후 홀로 독자를 훌륭하게 키웠으나 독자가 34세에 3남2녀를 남기고 지병으로 사망하자 손자들을 성심껏 키워 언론에서 취재까지 할 정도의 장한 어머니이다.

▲김정효(83·애월읍 납읍리)
김정효 어머니는 1948년 12월 26일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힘으로 2남을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김만석(83·조천읍 와산리)
김만석 어머니는 4.3사건으로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 시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면서 3남매를 훌륭하게 키웠고, 마을부녀회 및 노인회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고임규(82·애월읍 광령리)
고임규 어머니는 남편이 1948년 12월 24일 정뜨르에서 총살당한 후 세 아들을 혼자 힘으로 훌륭하게 키웠다. 노인회 및 마을행사에 적극 참여해 주민화합에 노력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양희봉(78·한경면 청수리)
양희봉 어머니는 1949년 2월 6일 남편이 총살당한 후 혼자 2녀를 훌륭하게 키웠고 어려운 이웃을 연 2회 이상 방문해 위문품을 전달하는 등 위로해 지역주민의 화합에 앞장섰다. 청수리부녀회장 재직시 헌신적인 봉사로 지역주민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는 장한 어머니이다.

▲고계생(90·남원읍 의귀리)
고계생 어머니는 4.3사건으로 1949년 남편과 사별한 후 1남3녀를 혼자 힘으로 훌륭하게 키웠으며, 4.3사건 종료 후 어려운 시절에 이웃돕기에 앞장서 주민의 귀감이 된 장한 어머니이다.

▲강무출(86·안덕면 창천리)
강무출 어머니는 1948년 10월 16일 남편과 사별한 후 시부모님을 봉양하면서 2남을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김춘화(84·표선면 가시리)
김춘화 어머니는 1948년 12월 13일에 시동생이 희생당한 후 12월 21일 남편이 총살당하고 이어 12월 22일 시부가 희생당하는 등 고난이 겹쳤으나 시모를 정성으로 다하여 모시면서 2남 2녀를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고안홍(83·안덕면 동광리)
고안홍 어머니는 4.3사건으로 남편이 1948년 8월 경찰에 의해 잡혀가 광주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처형당한 후 독자를 훌륭하게 키운 장한 어머니이다.

▲고태규(82·남원읍 수망리)
고태규 어머니는 4.3사건으로 남편이 행방불명된 후 1남 1녀를 훌륭하게 키우면서 각종 봉사활동에 적극 동참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강정엽(81·대정읍 상모리)
강정엽 어머니는 1948년 10월 중순경 남편이 군인에게 연행된 후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11월 1일 군부대에서 시신을 인수해 장례를 치렀고 혼자힘으로 독자를 훌륭하게 키웠다.
희생자 신고시 대상자들을 찾아다니며 신고독려 하는 등 희생자 명예회복에 앞장섰으며, 노인회원들을 동원해 마을 안길 풀베기 등 마을 환경정비에 앞장서는 장한 어머니이다.

▲양춘영(78·남원읍 신례리)
양춘영 어머니는 4.3사건으로 1948년 12월 10일 시부와 시동생이 희생되고 이어 남편이 1949년 봄에 육지형무소로 수감된 후 행방불명되고 자신도 모진 고문에 거동이 불편할 정황이었지만 독자를 훌륭하게 키웠고 현재 유족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는 장한 어머니이다.

▲오방춘(75·성산읍 시흥리)
오방춘 어머니는 1949년 2월 1일 남편이 총살당한 후 시모를 극진하게 모시며 독자를 훌륭하게 키웠다. 재활용품 모으기 및 마을 안길 청소에 앞장서 참여하면서 주민화합 분위기 조성에 힘쓰는 장한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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