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오름, 한라산의 경관미학

인간성의 회복을 의미하는 르네상스 이후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서구사회 전반의 기본전제로 대두된 합리성(rationality)의 영향력은 현 시점에서도 유효하다. 이러한 합리성을 토대로 태동한 자본주의 및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진보된 과학기술의 영향력은 예술영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완성된 투시기법이 도입된 이래 현 상태를 모사(模寫)하고자 하는 사실주의적 미술경향은 과학기술에 의존한 반면, 후일 인상주의(impressionism)로 명명된 새로운 미술사조의 전기는 만연한 과학합리주의에 대한 회의적 시선에 기인한 것이다.
 
자연경관과 인물의 사실적 묘사를 가능케 하는 과학적인 투시기법의 영향력은 19세기 초반 새로운 과학기술의 산물인 사진이 발명되면서부터 점증적으로 상실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새로운 차원의 과학적 이기인 사진의 등장으로 르네상스 이후 지속된 회화원리의 기본전제인 과학기술에 대한 회의적 인식을 공유한 일군의 화가들에게 일본으로부터 건너 온 목판화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하였다. 애초 유럽에 수출되는 일본 도자기 포장재로 사용되었던 저질의 종이에 인쇄된 목판화는 원근법을 무시한 비과학적인 구도이지만 이로 인해 과감한 시점 처리가 가능해지면서 인상파 화가로 알려진 모네(Monet)와 고흐(Gough), 드가(De Gas) 등의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인상주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력을 제공한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의 주제는 대부분 자연경관을 묘사한 것이다. 유럽에 유입되어 인상주의 화가뿐만 아니라 당대 서구 지식인의 경탄을 불러일으킨 우키요에의 최고 걸작은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를 위시한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이다. 원경(遠景)에 후지산이 놓인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에 영감을 얻어 교향곡 <바다>를 완성한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의 사례처럼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호쿠사이의 연작시리즈 후카구36경(후카구는 후지산의 별칭)이 소개된 이후 후지산은 일본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림 1>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그림 2> 도카이도 에지리의 해안

후카구36경으로 대변되는 일본의 우키요에가 소개된 이래 후지산이 일본의 상징으로 각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관미의 인식에도 변화를 초래하였다. 서구사회에서 16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풍경화의 원경(遠景)에 산 능선이 묘사된 사례가 많지 않은 점은 유럽의 전형적인 평탄한 지세(地勢)가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원경(遠景)의 배경으로 후지산이 놓인 일본의 우키요에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산수화로 대변되는 동양적인 자연경관의 미적측면이 서구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경관미학과 관련된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면 현대인이 선호하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전형적인 구도는 호쿠사이의 <후카구36경 중 도카이도 에지리의 해안>과 흡사하다. 즉, 근경(foreground)으로는 평탄한 초지이거나 강 또는 해안의 풍경, 중경(middle ground)으로는 녹음이 우거진 식생지대, 원경(background)으로는 산 능선이 소재한 자연경관의 미(scenic beauty)가 최고의 가치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면 2007년 7월 7일 발표된 새로운 7대 불가사의 목록과 별개로 7대 자연경관 목록선정의 준비과정으로 인터넷 투표를 진행 중인 新재7대불가사의 재단 홈페이지(http://www.new7wonders.com)의 경관이미지이다. 신7대불가사의 재단 홈페이지의 초기화면에서 인터넷 투표참여를 홍보하는 이미지(그림 4)를 분석해 보면 근경은 강/호수, 중경으로는 숲, 그리고 눈 덮인 산 능선이 원경에 놓인 자연경관은 후지산이 배경인 후카구36경<그림 2>과 동일한 구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 신7대불가사의 재단 홈페이지 초기화면
   
<그림 4> 불가사의 재단 자연경관 확대이미지

바다와 오름, 한라산으로 구성된 제주도의 경관이미지는 보편적인 경관미의 구도와 동일하다. 즉, 근경으로는 에메랄드 색의 바다, 중경으로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오름의 풍경, 그리고 원경으로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한라산이 놓인 경관구도는 전 세계인이 경탄한 호쿠사이의 후카구36경보다 우월한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천혜의 해안절경이 구비된 서귀포시 예래 일대에 조성될 휴양주거단지에 당초 15m의 건축고도를 240m로 완화하는 방안이 실현된다면 가치환산이 불가능한 제주경관의 잠재력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후지산을 배경으로 한 자연경관이 일본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바다와 오름, 한라산으로 구성된 경관이미지가 제주의 상징으로 성장할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제주의소리>

<문성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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