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진 ⓒ제주의소리
연초 새로운 다짐을 세우며 벽에 걸어놓았던 두툼했던 열두 장의 달력이 이제 달랑 한 장만 남아 마치 앙상한 나뭇가지위에 마지막 잎새처럼 보이는 12월.

마치 도착지만을 향하여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고속버스처럼 무엇인가에 쫒기 듯이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앞만 보면서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연초부터 고유가와 고물가로 시작된 경제가 7월 들어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하여 지금까지도 지역경제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처해있다.

며칠 전 관내 문화행사에서 어느 노(老) 시인의 말씀 중에 정치와 경제는 직선로이지만 문화와 예술은 오솔길 즉 곡선로라고 하시면서 서둘지 말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한국인들은 속도 집착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매우 심하다고 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생활에 밀착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오는데도 선진국은 150여년이 걸렸는데 우리는 불과 4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는 우리생활에 이미 빨리 빨리라는 문화가 몸에 베겨 있어 그런 것이라 한다. 빨리 빨리라는 문화가 경제성장과 발전 그리고 개인의 성취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의 부작용도 많았다.

대형붕괴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끝이 없는 경쟁에서 개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높은 음주와 흡연비율을 가져왔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과로사도 이러한 영향의 산물이라 한다.

느리다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고 빠른 것에 반대개념으로 즉 여유로움이라 생각된다. 또한 느림은 환경, 자연, 시간을 존중하고 우리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무한 속도 경쟁의 디지털 시대보다 여유로운 아날로그적 삶을 추구하는 슬로우시티(Slow City)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슬로우시티는 1986년 패스트푸드에 반대해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확대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으로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문화를 공유하며, 자유로운 농경시대로 돌아가자는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국제운동이다.

서귀포시는 여느 지역보다 느림의 미학을 살릴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제주 올래걷기 코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가벼운 등정이 가능한 오름, 고유한 전통문화와 향토색이 짙은 재래음식,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생태공원과 휴양림, 농어촌 체험마을, 뷰티테라피 자원 등 여타도시보다 슬로우시티를 조성할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하다.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느림은 이제 더 이상 게으름이나 도태를 나타내는 표현어가 아닌 여유와 풍요로운 삶을 대표하는 상징어로서 새로운 가치를 발하고 있다. 그런 만큼 서귀포시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면서도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여 느림의 미학을 함께 살릴 수 있는 보다 다양한 시책을 개발한다면 충분히 매력 있는 관광자원이 될 뿐만 아니라 유무형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

이제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의 마음이 자꾸만 커지지만 끝이라기보다는 다시 시작이다라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마무리를 하는 점검의 시간으로 삼아 새해에는 보다 희망찬 첫걸음을 내디뎌 봐야겠다. / 서귀포시 기획담당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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