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요즘 대학생들은 MT혹은 모꼬지를 가서 무엇을 하며 노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런 것을 가는지 조차 잘 모르겠다. 허나 아무리 취업이 힘들고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입학 때부터 갖는다고 해도 그런 것이 아예 없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종종 TV광고에 MT 혹은 모꼬지를 소재로 나오는 내용도 있었으니까.

그러면 나의 대학시절 MT라 불리던 지금은 모꼬지라 부르는 자기들끼리 하루를 자고 오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하겠다. (이하 옛날 기분을 살려 MT라 하겠다.) 아니 그 행위가 아니라 그곳에서 불려 졌던 노래 하나를 추억하겠다.

난 참 노는 게 좋다.  술 마시며 즐겁게 노는 것은 더더욱...
그런 내가 1학년 MT를 갔다.
청소년 수련원인가 하는 곳... 조별로 밥을 지어 먹고 밤이 되자 강당에서 각자 얘기도 했었다. 우대해 준다고 주로 신입생인 우리 1학년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졌었고...
난 그들의 얘기를 경청하며 참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운동권이던 3학년 선배는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말 할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불의에 참지 않는 것...

난 그 짧은 시간에 그녀의 팬이 되었고 그때 비로소 예쁜 여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란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었다.

그런데 그런 환상이 깨진 것은 얼마 안 있어 발표시간이 끝나고 빙 둘러 앉아 그녀가 사회를 본 후였다. 게임을 하고, 누가 걸리고, 벌칙으로 노래를 시키고,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목당한 사람이 미적미적 거리는 사이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 바로 한 시간 전에  아름다운여자로 정의하게 만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였다.

       “노래를 못하면 장가(시집)를 못 가요.  아 미운사람.
        장가(시집)를 가더라도 애기를 못 나요 아 미운사람
        애기를 낳더라도 고자를 낳아요  아 미운사람“

좀 전의 의식 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어디로 가고 그저 사회 잘 보는 선배의 선창으로 다들 따라했고 미적미적 거리던 지목된 또 다른 선배는 이윽고 노래를 불렀었다.

“................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로 끝난 미적거리던 선배의 노래가 끝나자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후렴을 같이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나만 그런 걸까. 노래 부르기를 재촉하며 그녀가 선창한 그것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물론 많은 사람들도 그 선창에 익숙한 듯 흥겹게 박수를 치며 따라 했었다.
한 번 들으면 금방 따라 할 수 있는 리듬이라 나도 같이 박수를 치면서도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를 못한다는 단순한 가정에 차라리 “앞으로 너랑 안 놀 거야.” 내지는 “메롱”이라는 귀결이었다면... 노래를 못 하는 건 재껴두고  결혼을 못 한다. 애를 못 낳는다. 고자를 낳는다. 로 연결되는 철저하게 반동적인 비약에 경악을 금치 못 한 거였다.

결혼을 하고 안 하고의 자유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하고 싶어도 못하기도 하지만...)그럼 장가를 못 간다는 것은 노래를 못한다는 것처럼 무언가 결함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결혼적령기라고 하며 왜 안가니, 언제 가니 라고 하며 획일화된 사고나 생활을 암묵적으로 강요할 건덕지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애기를 못 낳는 다니...
꼭 애기를 낳아야만 하는 것이 결혼의 다음 수순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애기를 못 낳을 수 있다.”고 지레 겁을 주는 것에 익숙해진 근거는 무엇인지 의아한 생각이 든 것은 나 혼자만 이었을까... 나의 자식으로 꼭 대를 이어야 하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극치이다.
칠거지악이라고 해서 대를 못 잇는 것을 여인의 책임이라고 전가하던(웃기지만 지금도 있더라...)과거가 떠올랐음은 물론이다.

고자를 낳는다?
기적적으로 결혼을 하고,  애기를 낳았는데 고자를 낳았다?
야 정말 엄청나게 큰 재앙이 닥친 거다. 그렇다면 아 맞다. 핵심은 대를 잇지 못하는 성불구를 낳음으로써 크나큰 악을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불의에 참지 않는다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힘주어 말하던, 그때는 아름다웠던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배 자신도 여자이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부조리, 불평등은 애써 무시하며 오히려 즐기고 있는 듯이 보이면서 말이다.

기껏 그런 씰 데 없는 노래하나가 무슨 대수란 말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어쩌면 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니면서 운동권에 대해 막연한 존경심과 동경심을 가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나와는 달리 그들은 도덕적으로나 의식이 철저하게 중무장되었을 거라 짐작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깟 씰 데 없는 노래 하나에 아름다운 사람에서 그저 그런 사회 잘 보는 선배로 나의 머릿속에서 재단하고 격하시켰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나는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대학시절의 운동권이나 지금의 시민사회단체진영에서의 모습에서 사소하게 치부해버리는 일상에서 어쩌면 더 소중한 마음가짐을 간과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고....
철저하게 원칙을 말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부르짖다가도 금세 타협하고 어슬렁 넘어가며, 경멸해 마지않는 보수기득권과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지 않느냐고...

그래서 도덕성의 잣대로 들이 밀었을 때 “그래 너희도 별 수 없잖아.”하고 등 돌리는 결과를 낫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럴 땐 어쩌다 생긴 일부분일 뿐이라고 항변하면서...

지금이 너나 나나 모두 우리가 손을 맞잡아야 할 때다.
그 때 MT에서 미적거리던 선배가 불렀던 노래가 새삼 가슴에 와 닿을 때이기도 하다.

“................ 바람아 쳐라 물결아 일어라. 내 작은 조각배 띄워 볼란다.”

항상 겸허하고 반성하자.
씰 데 없는 노래라고, 그저 친근감의 표시라고, 장난말 이었다고 스리슬쩍 넘어가지 말고 한 번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인간애를 가져보자.

바로 지금이 그 마음가짐이 절실한 때이다.  

<제주의소리>

<강충민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제주참여환경연대 2월호 소식지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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