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년 기념인터뷰] 실상사 도법스님…“참된 말(語)의 신문 기대”
“주민이 주인 돼야 진짜 특별한 자치도” 제주도에도 쓴소리 남겨

▲ 탁발순례를 통해 생명평화운동을 이끌고 있는 도법 스님(지리산 전 실상사 주지)은 창간 5주년을 맞은 <제주의소리>에 '초심(初心)', 즉 첫마음으로 처음처럼 임할 것을 당부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 소리 창간, 다섯 해째를 축하합니다!”

생명평화운동의 순례자, 제주출신 도법스님(前 지리산 실상사주지,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을 만났다. 지난해 연말까지 꼬박 5년을 걸어서 대한민국의 땅을 ‘탁발순례’한 스님은 길위의 걸사(乞士)다. 지난 2004년 봄, 지리산을 출발해 제주에서 40여일간 순례하고 부산.경남.울산을 거쳐갔다. 이어 2005년 전남.광주.경북.대구, 2006년 전북.대전.충남, 2007년 충북.강원, 그리고 지난해엔 경기.인천.서울을 순례했다.

그 여정은 무려 3만리에 달했고 8만여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만났다. 지역주민과 농민.어민, 종교인, 정치인, 언론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 누구든 만났고, 생활.문화.생태.역사.사회현안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됐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며 머무르는 곳이 사랑방이었다.

그곳이 마을회관일 때도 있었고 절이나 교회일 때도 있었다. 스님은 성당이든 학교든 잠자리와 밥과 사람만 있으면 얻어 먹고 자며 이야기를 나눴다. 가장 구걸하고 싶어 했던 생명평화의 ‘싹’을 곳곳에서 찾아내는 성과도 있었다. 

# "맑이 맑으면 삶도 맑어져…참된 말(語) 다루길"

▲ 도법스님은 제주 한림 출신이다. 다양한 사회현안에 대해 건강한 대안생산에 주력하는 불교계 대표인사다.  ⓒ제주의소리
지난 2007년 11월, 해군기지 건설반대운동을 펼치는 제주 강정마을이 주최한 ‘2007 제주평화축제-강정을 생명평화의 마을로’ 행사에도 참석했던 스님을 다시 만난 건 지난 18일 늦은 오후였다. 강연차 제주를 방문한 도법스님을 만나 찻잔을 기울여 잠시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도법스님은 우선 창간 다섯 해를 맞은 <제주의소리>에 축하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창간 직후인 지난 2004년 봄 약40여일간 제주에서의 생명평화순례 일정을 동행 취재했던 <제주의소리>와의 인연이 깊어졌을까. 창간 후 <제주의소리> 자문위원을 덥석 맡아왔던 스님은 여전히 애정 어린 격려를 보냈다.

“우리의 삶을 가만히 짚어볼 때 말이 참되면 삶이 참되고, 말이 맑으면 삶도 맑아집니다. 말이 따뜻하고 밝아지면 삶도 따뜻하고 밝아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의소리>도 창간 때의 첫 마음을 그대로 이어가서 우리들의 삶이 참될 수 있도록 참된 말(語)의 신문, 맑고 밝고 참된 ‘언어’를 다루는 신문으로 힘차게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잘 해나가리라 믿습니다. 많은 기대를 합니다. 늘 처음처럼 가세요”

스님은 제주출신이다. 한림이 고향인 스님은 4.3사건 때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다. 오랜만에 고향 제주에 온 소감을 물었다. 사실 소감이라기 보단 밖에서 바라본 제주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스님은 그 속내를 읽었는지 명쾌한 답변을 내놓는다.

“제주도는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제주에 오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5년 전 ‘생명평화’라는 화두를 들고 순례 왔을 땐 ‘생명평화’라는 추상적 언어가 제주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제 삶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 위해서, 또는 생명평화의 삶을 제주 사람들과 얘기하고 모색하기 위해 왔었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어 왔다. 강연요청이 있어 왔는데 과거 인연들이 많은 <제주의소리>를 만나게 돼 반갑다. 요번 와서 느낌도 다른 때와 크게 다르진 않는데, 다만 현재 사회가 더 걷잡을 수 없는 모순과 위험으로 가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가 자기 색깔과 모양과 자기 향기를 가지고 자기다운 모습을 가져갈 수 있을지는 여전이 걱정스러움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주도는 좋다는 느낌이다” 며 애정과 우려를 함께 보냈다.

# 제주의 현재와 미래, 4.3이 교훈돼야

제주사회의 현안에 대해서도 도법스님은 일갈했다.

“제주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제주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두 가지 잣대를 가져야 한다. 우선 하나는 근본적으로 제주가 갖고 있는 천혜의 자연생태자원, 그 생명의 자원들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하는 거다. 거기에 맞춰서 제주도의 현재와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제주가 경험한 비극 ‘4.3’을 통해서 교훈을 새겨야 한다.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고, 짓밟고 짓밟힘을 당하고,  그렇게 짓밟히고 죽임을 당한 그들이 지금 우리에게 목놓아 들려주고자 하는 목소리와 염원이 어떤 것인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한 맺힘과 절규가 무엇인지, 그들의 절규에 어떻게 응답하고 치유할 것인지에 제주도민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제주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카지노, 해군기지, 영리병원, 케이블카 문제 등은 과연 4.3 영혼들의 절규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낸 결과인지 제주도정과 도민들이 스스로 물어야 한다. 도정의 책임자들이나 제주도민 모두가 스스로 자신에게 그런 물음을 묻고 부끄럽지 않고 떳떳할 수 있도록 이 문제를 다뤄가야 한다. <제주의소리>도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제주의소리>에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것이다".

▲ 5년간의 탁발순례를 마친 도법 스님은 원래 자리인 지리산 실상사로 돌아가 '마을만들기'에 주력할 계획이다.  ⓒ제주의소리
2004년 3월1일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되자’는 뜻을 세워 지리산 노고단에서 순례의 길을 떠난 지 5년 만에 도법스님은 짊어졌던 바랑을 지난해 12월말 내려놨다. 5년간 끊임없이 고민했을 '우리 사회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를 물었다. 

“5년 지나고 보니까…, 생명평화로 개념화 되어진 화두, 즉 우리 삶에 있어서 근본적이면서 늘 현재적이고도 동시에 영원한 가치가 바로 생명평화라 할 수 있겠는데 개인으로 보나 시대로 보나 사회로 보나 생명평화라는 화두는 방향성이라는 측면서 옳았고 바람직했다. 순례하면서 끊임없이 물음을 던져야 했던 것은 ‘왜 생명평화가 말로만 떠돌아다니고 현실이나 역사 속에선 이뤄지지 않을까?’였다. 그건 정체성의 문제였다.

개인도 사회도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 원인인 셈이다. 옷으로 치면 첫 단추를 잘못 꿴 것과 같다. 제 길이 아닌 엉뚱한 길로 가는 것이다. 말로만 입으로만 생명평화를 외치고 정작 삶에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다. 자기존재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를 성찰해야 한다. 자각과 정체성을 온전하게 실현해나가는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며 실천적 삶이 없는 생명평화는 허상에 불과하단 점을 분명히 했다.

# "마을이 희망이야"...마을단위 주민자치 실현 없인 '특별자치도'는 껍데기일 뿐

이어 도법 스님은 지역의 정체성에도 방점을 찍었다.

"지역의 정체성도 다른 무엇보다 매우 중요하다. 작은 단위로는 마을의 정체성을 중심에 놓고 지역의 문제를 다뤄야만 우리의 미래가 건강할 수 있다. 제주도도 그런 측면서 제주의 오늘과 미래를 모색했으면 좋겠다. 늘 살다보면 큰 틀에서만 또는 추상적 틀에서만 사회를 보려는 습성이 있다. 국가나 도 단위, 시단위의 틀로 사회를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순례하면서 이런 틀을 바꿔서 작은 마을단위라는 틀에서 출발해 우리의 삶과 지역의 문제를 다뤄가야 주민이 주체적으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했다. 그렇게 되어야 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들도 나라의 주인이고 사회의 주인인 진정한 주민의 심부름꾼이 된다. 말로는 주민이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면서 현실은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주인행세를 한다. 그들의 놀음에 휩쓸려서 모두 죽네 사네 한다. 정말 그들이 국민의 종이 되고 국민과 주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주민이 주체적인 입장, 자립적인 입장에서 국가나 사회정책이 세워지도록 함께 모색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제 시민운동도 ‘마을이 희망이다’ 라는 관점과 문제의식으로 생명평화운동이 전개됐으면 좋겠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는 곳이기 때문에 진짜 ‘특별한 자치도’가 현실이 되려면 마을단위에서부터 진정한 주민자치가 이루어져야 제주도 전체가 되어야 참다운 특별자치도가 된다. 그것없인 껍데기일 뿐"이라면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5년간의 탁발순례를 마친 도법스님은 이제 원래 자리인 지리산 실상사로 돌아갔다. 실상사가 소재한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서 ‘산내면 마을만들기’를 하겠단다. 탁발순례에서 찾은 대안적 삶을 실현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수행이다. 인구 2000여명의 작은 면 마을 산내에서 도법스님은 사람이 중심인 그리고 주민이 주체인 마을만들기의 꿈을 꾸겠단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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