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물에 담긴 제주 역사와 삶의 스토리를 만들자

3월 22일은 UN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1992년 제47차 유엔총회에서 세계가 다 같이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자는 취지에서 재정되었다고 한다.  

대학원 시절 동남아 해외 연수차 말레이시아에 있는 한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세미나 장소에 갔더니 그곳 학생들 책상위엔 주스가 놓여 있었고 우리 책상에는 물 한잔씩이 놓여 있었다. 순간 푸대접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세미나 내내 다들 기분이 안 좋았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그 사람들은 탄산음료보다 훨씬 비싼 수입산 생수를 우리에게만 대접했던 것이다. 우린 그것도 모르고 “고작 물이 뭐야. 그 흔한 주스나 탄산음료도 아니고” 하며 투덜거렸던 것이다. 벌써 24년 전 일이다. 예전에 누가 물을 돈 주고 사먹을 거라고 생각했겠는가.

물은 인간 생명의 근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의 소중함을 잠시 잊고 살아온 것 같다. 게다가 물이 돈이 되는 산업이 될 줄은 더더욱 몰랐었다. 오죽했으면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을 희대의 사기꾼으로 인식해 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봉이 김선달이 요즘 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물산업의 선두주자로 인정받고 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물의 소중함을 재인식하고 물의 자원적 가치를 이용하여 부가가치를 높이는 물산업 개발과 성장에 세계 각국의 열정을 쏟고 있다. 특히 우리도는 물산업을 제주지역 전략산업,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삼아 중점적인 지원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가 물을 자원으로만 한정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10대 물부족 국가이고 2045년 대한민국은 물고갈이 예견되고 있다. 물론 미래에는 물 자체만으로도 국가의 경쟁력이 좌우되는 물 산업이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물자원을 자원경제학적 차원에서만 거론하며, 물 부족 문제를 시장의 원리로만 다루려고만 한다면 자원의 희소성 차원에서 물은 한계가 있다. 

물은 단순한 자원 이상으로 유사 이래 지금까지 세계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고 문화를 창달시키는 원류이다. 세계사를 보더라도 강의 범람과 혹독한 가뭄이라는 자연의 도전조건에 대응하여 인류는 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는 응전의 과정을 통하여 문화 발달시켜 왔다. 오랫동안 제주사람들을 괴롭혔던 3재(災), 즉 풍재(風災), 수재(水災), 한재(旱災)도 모두 물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과 물의 관계는 인류문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 물은 가장 필수적인 요소였다. 우리도도 마찬가지이다. 해안용천수를 중심으로 해안마을이 형성, 발달되었고 중산간 마을 역시 식수공급원을 바탕으로 생활권이 형성되었다. 농업이나 축산에서도 물은 결정적 요소였다. 이처럼 물과 문화는 상생의 원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물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물산업을 단순히 수자원 개발이라는 자원경제학 측면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제주의 고유한 문화와 청정이미지를 접목시킨 문화산업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 즉 제주의 청정이미지, 고유한 문화, 수려한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한 제주지역만의 블루오션 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화산업의 대세다. 관광도 문화관광이 각광을 받고 있다. 지역의 자연경관이나 역사유적을 구경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지역의 문화를 체험하려 한다.

▲ 진관훈 박사 ⓒ제주의소리
이런 차원에서 우리 지역의 자연경관, 고유한 역사와 문화,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며 문화 원형 창작 소재를 개발하고, 과거 현재 미래 제주의 역사와 제주인들의 삶의 스토리가 넘쳐나는 ‘물문화(Water Culture) 콘텐츠’를 만들어 물산업, 문화산업, 관광산업이 융합된 ‘물문화관광의 메카 제주’ 건설에 우리도의 총력을 집중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관훈(경제학박사, 제주하이테크산업연구원 전략산업기획단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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