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연도ㆍ장소ㆍ존명 확인할 수 있는 불상으로 문화재적 가치 높아

   
지난해 10월 서귀포시 정방사에서 발견된 석조여래좌상은 1702년에 만들어진 과거칠불(過去七佛)중 3번째 부처인 비사부불(琵舍不佛)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방사 석조여래좌상은 청소을 위해 불상을 옮기면서 복장에서 우연히 조성기와 발원문, 각종 진언 등이 발견됐고, 주지인 혜일스님은 청주박물관장인 곽동석 박사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곽동석 관장은 정방사 석조여래좌상에서 발견된 조성기와 발원문 등을 분석한 결과 조선 숙종 28년인 1702년 5월20일에 조성된 불상인 것으로 판명됐다.

석조여래좌상은 과거칠불 불상 중 제3 비사부불로 인도내 티벳, 중국 등지에서는 한 장소에 모셔진 예는 있으나, 국내에서는  불상을 조각해 봉안된 예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발원문에는 석조여래좌상이 전라남도 순천의 대흥사에서 제작된 불상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현재 대흥사는 없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정방사 석조여래좌상의 양식은 얼굴은 사각형에 길고 날카로운 눈과 꽉 다문 작고 얇은 입의 형태에서 조선 후반기 불상양식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곽동석 관장은 "이 불상은 복장물 중의 발원문을 통해 제작연대와 제작장소, 존명(비사부불)을 확인할 수 있는 조선 후기의 귀중한 기년명 불상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며 "불상의 조형도 조선 후기의 민예풍으로 정형화된 소박한 작풍을 따르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유연하고 자신감 넘치는 윤곽선 등에서 조각가의 뛰어난 조형감각을 엿볼 수 있다"고 밝혔다.

곽 관장은 "더욱이 사상적인 측면에서도 불화(佛畵)로서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과거칠불이 조각으로도 조성돼 신앙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며 "불상의 석질, 발원문에 등장하는 인명 등은 향후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정방사는 일제시대인 1930년대에 창건된 절로서 석조여래좌상이 어떤 연유로 안치됐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흥사에서 과거칠불이 모두 제작됐지만 대흥사가 폐찰이 되면서 칠불이 뿔뿔이 흩어졌고, 석조여래좌상이 1930년대 후반에 정방사로 이전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귀포시는 제주도에 정방사 석조여래좌상을 제주도지정 유형문화재로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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