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한미FTA에 비하면 농가에는 대재앙"

   
▲ 한EU FTA가 타결되면 국내 양돈산업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 장태욱 
 
지난 3월 24일, 이혜민 한국측 교섭대표와 이그나시오 가르시아 베르세로  EU 무역 수석대표는 외교통상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양측은 23, 24일 이틀 동안 진행된 8차 협상을 통해 한-EU FTA협상의 거의 모든 쟁점에 대해 협상단 차원에서 잠정적 합의를 보았고, 이를 양측 통상부장관에게 보고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했다.

거의 최종합의에 이른 한EU FTA

양측은 그러나 "관세환급(수출을 목적으로 원자재를 수입할 때 부과한 관세를 완제품을 수출할 때 환급해주는 제도), 원산지 기준 등의 정치적 쟁점에 대해선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고"하면서, "4월 2일 런던에서 한·EU 통상장관회담을 열어 잔여 쟁점에 대해 논의한 후 최종 타결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날 발표된 합의안에는 따르면 공산품의 경우 EU는 향후 5년 내 관세를 모두 철폐하되 우리 측의 40여개 민감 품목에 대해선 7년 내 관세를 없애고, EU산 돼지고기에 대해서는 5년 내지 10년의 기간에 걸쳐 관세가 철폐된다.

그리고 2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영국 런던에서 최종협상을 벌였다. 그런데 최종 협상안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에도 불구하고, 이날 최대 쟁점인 관세환급 문제에 대해 합의에 도달하지는 못하였고, 양측은 추후 회담 일정을 정하지 않은 채 최종협상 타결을 뒤로 미뤄야 했다.

▲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덴마크산 삼겹살이다. 제주산에 비해 가격이 절반 수준이다. ⓒ 장태욱
 
EU는 인구 5억 명에 국내총생산(GDP)이 16조 규모로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 대국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한·EU FTA가 발효된다면 한국의 자동차와 전자 부문은 좋은 기회를 맞게 될 것이다.

피해가 우려되는 양돈분야

하지만 문제는 EU와에 경쟁에서 크게 밀리는 우리 농업은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양돈분야는 낙농과 더불어 특히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국내 양돈분야의 연간 생산액이 4조 2천억인데, 한-EU FTA가 발효되어 전체 생산액의 10%만 피해를 본다고 해도 피해 액수가 연간 4천억을 넘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3월 31일 제주특별자치도는 4월 2일에 한 EU간 FTA 협상이 최종 합의안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 아래 '한 EU FTA 협상 타결 대응'이란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날 제주자치도가 발표한 대응 방안은 한미FTA에 대비해 2007년에 수립한 축산업경쟁력 강화대책 중 양돈ㆍ낙농분야를 중점적으로 보완하되, 축산물 위생과 친환경 축산사업장 조성 등 구조개선을 적극 추진하고 경쟁력이 없는 영세농에 대해서는 폐농을 유도한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한EU간 FTA가 합의안에 도달하기도 전에 서둘러서 대책을 발표한 이유는 도내 축산농가, 그 중에서도 특히 양돈농가의 충격과 그에 따른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중문관광단지 입구에 토종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이 식당들의 메뉴에 돼지고기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 돼지고기는 제주도의 주력 상품이다.  ⓒ 장태욱
 
양돈은 제주도내 총 사육도수가 45만 두에 이르는데, 이는 제주자치도의 전체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그간 양돈은 제주가 콜레라 청정지역으로 선포되면서 국내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게 되었고, 도내 1차 산업에서도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EU FTA에 대해 돼지고기 유통을 담당하는 실무 종사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서귀포 시내에 있는 한 육가공업체를 찾았다. 이 업체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s) 인증을 받고, 도내 고급 호텔과 37개 학교에 급식용 돼지고기를 납품한다.

"한꺼번에 충격을 주지는 않을 듯"

FTA가 발효되면 국내 양돈 산업과 돼지고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지 묻자, 이 이 업체의 이승훈(40) 대표는 '도내 양돈농가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 한EU FTA가 도내 육고기의 생산과 유통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알아보기 위해 서귀포시내에 있는 한 육가공업체를 찾았다.  ⓒ 장태욱
 
이 대표는 미국산 수입소가 국내 한우 농가를 위협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국내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지금은 농수축산물에 대한 원산지 표시가 모든 식당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외국산 육고기를 재료로 사용하던 식당 주인들이 이젠 대부분 국산으로 바꾸는 추세입니다. 당분간 이 분위기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유럽산 돼지고기가 수입되는 과정에서 유통과정이 긴 것도 국내산 돼지고기의 가격경쟁력을 지켜줄 것이라고도 했다. 국내 소비자들은 냉동육보다는 냉장육을 선호하는데, 외국산 돼지고기가 수입될 때 냉동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이 자동적으로 기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신토불이' 정신도 국산 육고기의 경쟁력을 지켜주는 데 한몫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소비자들은 실제 품질에서 별 차이가 없더라도 수입산보다는 국내산이 훨씬 품질이 좋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 업체가 운영하는 매장에는 소비자들이 볼 수 있게 덴마크산 삼겹살과 국산을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100g당 가격이 덴마크산이 800원이고 국산이 1590원인데, 덴마크산을 찾는 사람들이 지금까지는 많지 않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유럽산 돼지고기의 연간 수입은 모든 농산물을 통틀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산 돼지고기 가격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냉동 삼겹살에 대해 부과되는 수입관세가 25%인데, 이게 점진적으로 폐지되더라도 제주도 양돈 산업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승훈 대표는 한EU FTA가 제주 양돈에 큰 피해를 주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다. 그럼 양돈농가들은 어떤 전망을 내리고 있을까?

3일 오후 2시에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소재한 한 '봉영농장'에서는 관계 공무원들 및 언론사 직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아주 특별한 현판식이 열리고 있었다. 모돈(어미돼지)를 포함하여 돼지 1800두를 키우는 이 농가가 2007년 HACCP인증에 이어 최근에는 농림부가 인증하는 환경친화축산농가로 지정을 받은 것이다. 양돈농가가 환경친화축산농가로 지정받은 것은 '봉영농장'이 국내 최초다.

   
▲ 봉영농장이 농림식품수산부로부터 양돈농가로는 전국최초로 환경친화축산농장 지정을 받았다.  ⓒ 장태욱
 
환경친화 축산농장은 <가축분뇨의 자원화 및 이용 촉진에 관한 규칙>에 의거해서 기존  HACCP 적용을 받는 농장 중에서 신청 농가를 대상으로 심사해서 기준을 통과하면 지정하는 인증제도다.

환경친화축산농장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가축사육의 밀도를 기준치 이하로 유지해야 하고, 가축분뇨를 자원화하여 전량 농지에 환원해야 하며, 축사를 자연 친화형으로 조성하고, 악취저감시설을 설치·가동하여 생활환경을 저해하지 않을 것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한EU FTA, 한미FTA에 비하면 농가에는 대재앙"

부인 고영미씨와 함께 이 농장을 운영하는 고봉석(40)씨는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에서 몇 달간 체류하면서 유럽의 선진 축산 기술을 체험했다고 한다.

"해썹(HACCP), 이거 우리나라에서는 뭐 대단한 건 줄 알지만 유럽에서는 보편화된 제도입니다. 유럽은 모든 양돈장에 등급이 있습니다. 양돈장의 등급별로 도축장을 따로 지정하고, 도축장별로 유통경로도 달라집니다. 당연히 가격이 차별화되기 때문에, 양돈 업체들이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 시설관리를 엄격하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봉석씨는 자신이 현재 유지하고자 하는 양돈장의 환경시설수준이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등의 유럽에서는 보통 정도의 수준일 정도로 유럽은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보다 크게 앞서가고 있다고 했다.

"유럽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돼지고기 시장 규모가 크기도 하려니와 돼지고기 생산과 유통에 대한 관리가 자신들에 비해 훨씬 허술하다는 느꼈던 겁니다. 제가 유럽 현지에서 연수를 받을 때 현지 전문가에게 들은 말입니다."

고봉석씨는 유럽의 돼지고기 생산 및 유통과정뿐만 아니라 돼지의 품종도 우리에 비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했다.

"유럽의 경우는 PSY(piglet per Sow per Year, 한 마리 어미돼지가 1년에 낳는 새끼의 수)가 28~29마리에 이르고, MSY(Marketted-pigs per Sow per Year, 한 마리 어미돼지에서 1년 동안 길러져서 시장에 출하되는 돼지의 수)가 27두에 이릅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PSY가 17~18마리이고, MSY가 14.5마리 수준입니다. 유럽의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기도 하거니와, 새끼가 출하될 때까지 거의 죽지 않고 생존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출산 두수도 유럽에 비해 턱없이 적기도 하거니와 그마저도 세 마리 이상은 출하되기 전에 죽고 마는 실정입니다."

▲ 고봉석씨, 부인 고영미씨와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 장태욱
 
지금은 제주산 돼지고기가 시장에서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봉영농장서는 1년에 돼지 3200마리 정도를 시장에 출하하는는데, 이 농장에서 출하한 돼지의 한 마리 평균 가격이 45만 원 정도다. 이중 사료 값과 관리비를 제외하고도 수입이 꽤 큰 편인데, 한EU FTA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봉석씨는 걱정이 앞선다.

"축산 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한미FTA보다는 한EU FTA가 훨씬 무서운 겁니다. 미국의 농업에 비해 유럽의 농업이 훨씬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양돈뿐만이 농업 전분야가 그렇습니다. 큰 돈 투자해서 시설을 했는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합니다."

고봉석씨는 지금까지는 고환율, 수입관세, 신토불이 정신 등이 우리 양돈 농가를 지켜줬지만 앞으로는 그런 것들마저도 의존할 수 없는 상황라는 말이다. 4월 2일 최종 합의안 도출에 실패한 한EU FTA협상이 언제 다시 재개될지 지켜보는 그의 가슴만 타게 생겼다.<제주의소리>

<장태욱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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