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의 상비약은 칭찬과 격려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현대사회 가정은 전통적 대가족의 틀을 벗어나 핵가족화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기러기 아빠, 맞벌이 별거부부들이 늘어나면서 가정이란 장소의 의미는 급속도로 상실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되새겨 보는 의미에서 3대에 걸쳐 19명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는 가정이 있다고 해서 들여다봤다. 
    

▲ 3대 19명 가족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한림읍 동명리 유철수(43세 장남)가족, 온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회의를 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한림읍 동명리에 주소를 둔 유철수(43)씨 가족은 2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4대 가족 20명이 한울타리에서 사는 대가족이었다. 출가한 딸을 제외하고 3형제 가족이 부모님을 모시고 19명이 한 집에 사는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살게 된 것은 이 가족의 숙명처럼 느껴진다. 아버지(유용수․66세)의 “애초부터 딸자식을 제외하고는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없다”고 하는 말 속에서 짐작이 된다.

축산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아버지에게 자식들은 어릴 적부터 노동력을 제공해온 협업자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힘을 보태고 각자 맡은 바 역할과 책임을 다하다보니 떨어져 사는 것이 불편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자식들이 성장하여 각자 직업을 갖고 결혼하게 되자 아버지는 40년 동안 이어 온 축산업을 포기했다. 장남인 유철수씨는 물류유통업에, 둘째는 축협중매인으로, 셋째는 양돈가공업을 하게 되면서 분가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자식들이 저마다 각기 새로운 직업을 선택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일생을 바쳐 온 축산을 중단하면서 가족이 뭉쳐 사는 것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의 뜻에 자식들이 동의하고 서로 어울려 함께 살 수 있었던 것은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사회에 준비된 사람이 되라”며 ‘새벽형 인간’을 강조해 온 지엄한 아버지의 가르침과 부자지간에 말 못할 골이 생길 때마다 늘 중재자의 역할을 하며 협동심을 강조해 온 어머니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대가족이 함께 어울려 생활하다보니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란 쉽지 않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동갑내기 조카가 수학여행을 떠나 있었다. 2명이 빠지고 남은 가족들이 모여 앉은 상황에서도 부모님의 거실은 풍성했다.

3대 4세대 19명 가족이 모여 사는 유씨 가족의 가옥의 구조는 자식과 부모가 한 울타리 안에 살면서도 주거공간이 나뉘어져 각각 독립생활을 하던 제주의 전통가옥을 수평에서 수직으로 바꾼 형식이었다. 1층에 부모님과 마주하여 장남세대가 있고, 윗층에는 둘째와 셋째 동생네가 살고 있다. 밤에는 각 세대의 문을 닫지만 주간에는 4세대가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고 지낸다.

이처럼 대가족이 함께 생활하다보니 불편한 점도 없지 않다. 그래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이라 할지라도 며느리와 딸들은 반바지 차림을 가급적 피하고 성인 남자들은 러닝차림을 하지 않도록 규칙을 만들어냈다. 이밖에도 서로 불편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스스로 절제하고 참아낸다. 개인의 편함을 추구해 온 핵가족들이 생각하기엔 번거롭고 거추장스런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유씨 가족들은 모두가 편해질 수 있는 길을 찾아 서로 배려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제 막 커오는 아이들은 투덜대기도 하지만 이 또한 대인관계, 리더십, 단체생활 등 사회성과 인성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장남 유씨는 말하며, 학교에 앞선 교육의 장(場)으로써 가정의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함께 살아서 좋은 점을 질문하자 유씨 가족은 사업에 필요한 의견과 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조언함으로써 사업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 4촌간의 의류교환은 물론 필요한 생필품 등을 공동구매하여 경비를 절약하는 점 등 대가족 생활 예찬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이런 공동생활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학교 등 단체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고, 끈끈한 가족애로 뭉쳐진 유씨 집안을 마을 주민들은 부러워한다.

이들 가족이 한 끼 식사를 하려면 적어도 닭 7마리는 있어야 하고, 라면은 25개를 동시에 끊여야 공평한 식사가 가능하다. 형제들 중 어느 부모든지 장기 출장이나 여행을 가게 되더라도 아이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한가족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뿐이오
오~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뿐이리

노래가 절로 날만하다.

가부장적 사고를 가지고 집안을 엄하게 조율하시는 아버지, 부자지간에 치어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면서도 호랑이 같은 남편의 지엄함이 자식들의 가슴에 비수로 박힐까봐 늘 방패막이가 되어 엇갈린 이견의 실타래를 술술 풀어내시는 화합과 조율의 명수인 어머니.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유씨 가정은 리차드 에반스가 말한 ‘가정이란 상호간에 책임과 존경, 격려와 협조 그리고 칭찬, 정직과 일에 대한 자발성, 유사시에는 훈계, 사랑과 소속감 등 대화할 어떤 이가 있는’ 매우 행복한 가정이란 생각이 든다. 가정의 상비약으로 칭찬과 격려를 준비해 놓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가족이 함께하는 날 운영을 통해 가정의 화목을 다져나가고 있다.

건강한 가족관계란 아무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니라, 문제를 슬기롭게 이겨내는 가정을 말한다. 쉬는 일요일 아침, 아버지는 당신께서 자청해 맡은 일이지만 일찍 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마당 청소를 혼자하기가 적적하신지 소리소리 기상나팔을 불어대신다. 유씨 가족의 아침은 이렇게 늘 시끌벅적하지만 건강하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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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수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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